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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벤저민 브래들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남자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를 지휘했던 벤저민 브래들리 전 워싱턴포스트(WP) 편집인이 21일(현지시간) 노환으로 숨졌다. 93세. WP는 부고 기사에서 “브래들리가 26년간 뉴스룸을 이끌면서 WP를 세계의 선도적인 신문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전했다. 브래들리가 편집국장과 편집인으로 있던 1965~91년 WP는 워싱턴의 지역 신문에서 탈피, 전국적 권위지로 성장했다. 발행부수는 두 배로 늘었고, 퓰리처상을 18회나 수상했다.

 그러나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신문인으로 만든 것은 외형적 성취보다 그가 신문의 역할을 질적으로 바꿔놨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71년 뉴욕타임스(NYT) 특종으로 시작된 펜타곤 문서 보도가 그중 하나다. 미 국방부가 작성한 이 문서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얘기들이 담겨 있었다. 닉슨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어 NYT의 추가 보도를 막는 데 성공했다. 뒤늦게 보고서를 입수한 WP는 고민에 빠졌다. WP는 경영상 기로에 서 있었다. 3500만 달러의 주식 공개를 앞두고 있었고, WP가 보유한 TV 방송 면허는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에 좋은 협박 카드가 될 수 있었다. 뉴스룸은 보도를 원했다. 브래들리는 발행인이자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레이엄 여사가 말했다. “갑시다. 보도합시다.” 브래들리는 자신의 회고록 『좋은 인생』에서 이때를 “WP가 독립적이고 자신감 있는 신문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닉슨 정부는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하지만 대법원은 WP와 NYT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가 국가 안보를 내세워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판례가 확립됐다.

 이때 생긴 자신감은 WP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하는 토양이 됐다. 72년 6월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둑이 들었다. WP는 이후 2년간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 기자의 끈질긴 취재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 했다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 이는 결국 현직 대통령 닉슨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미국 역사상 초유였다.

 최고 권력의 불법을 파헤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브래들리는 우드워드와 번스틴의 추적 보도를 전폭 지원하면서 동시에 엄정한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브래들리는 “매일매일 조금씩 사과를 깨물어봐야 마침내 사과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것이 워터게이트 보도의 방법이었다”고 회고했다.

 뉴스룸을 맡은 브래들리가 맨 처음 내린 결정은 좋은 기자들에게 집중하는 것이었다. 내부의 역량 있는 기자들을 키우는 것은 물론, 경쟁지인 NYT 기자까지 스카우트 했다. 그러곤 기자들에게 “독자들이 신문 포장 비닐을 찢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스토리를 쓰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쏟아지는 외압을 막아냈다.

 그늘도 있었다. 81년 젊은 기자 재닛 쿡이 퓰리처상을 받은 ‘지미의 세계’ 기사가 거짓으로 드러났다. 여덟 살짜리 꼬마 지미가 헤로인에 중독되는 과정을 그린 이 기사는 쿡이 완전히 지어낸 얘기였다. WP는 퓰리처상을 반납했고, 옴부즈맨은 기사 조작 과정 전반을 조사해 보도했다.

 젊은 시절 브래들리의 인생은 드라마틱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혹독한 재활로 이겨냈다. 하버드대를 나와 제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했다. 이런 경험이 의지와 리더십으로 연결됐다. 브래들리는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였다. 둘 사이엔 하버드대와 해군이란 공통점이 있었고, 조지타운대 인근 동네의 이웃지간이기도 했다.

 브래들리는 정부와 정치권의 진실 은폐를 극도로 혐오했다. 95년 CNN 래리 킹 쇼에 나와 “정부 안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는 분위기와 거짓말이 거대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중 누가 더 거짓말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에 “모두 다”라고 대답했다. 브래들리는 지난해 8월 일반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받았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가 언론 자유에 기초하고 있음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21일 성명에서 “브래들리에게 저널리즘은 우리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공공 선(善)을 의미했다”고 애도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벤저민 브래들리 1921~2014

● 1968~91년 워싱턴포스트 편집인 ● 편집국장·편집인 재임 26년간 WP는 퓰리처상 18회 수상 ● 지역 언론에서 세계적 언론으로 키움

● 1921년 보스턴 출생 >> 42년 하버드대 졸업 후 해군 ROTC 복무 >> 48년 WP 경력 기자 입사 >> 65년 편집국장 >> 68년 편집인

>> 71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과정 담은 ‘펜타곤 문서’ 보도, 대법원 “정부가 신문 보도 막을 권리 없다”는 판결 이끌어내

>> 74년 닉슨 대통령 측의 민주당 선거사무실 침입 사건(72년)을 다룬 워터게이트 특종. 닉슨 대통령 사임

>> 2007년 프랑스 최고훈장 레지옹 도뇌르 수상 >> 2013년 대통령자유메달 수상 >> 2014년 10월 21일 별세 (현지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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