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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강국 스위스, 비결은 기업들 직업교육과정 8만개

지난 4월 군에서 제대한 김모(26)씨는 지방의 한 4년제 사립대(경영학과)를 자퇴했다. 취업 전망도 불투명하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씨는 군 복무 시절 군대 소식지에 만화를 연재하면서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모두 입시 공부만 얘기했기 때문에 나의 적성에 대해 진지하게 상의하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더 일찍 하고 싶은 애니메이션 공부를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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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처럼 제때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는 청년이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교육에 매몰돼 있는 교육 현실 때문에 청소년 시기에 제대로 된 진로를 정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대학 진학에 매달리면서도 정작 목적은 뚜렷하지 않다. 교육업체인 지산교육이 지난 6월 전국 고교생 1000명을 조사했더니 절반(48%)이 대학 진학 이유를 ‘취업에 도움 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남들이 가니까’(10%),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7%)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전공하고 싶은 과목이 있어서’라는 답변은 22%에 그쳤다. 전공 관련 지식은 ‘거의 모른다’(53%)가 과반수였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교 문·이과 선택도 적성이 아닌 수학 성적에 따라 결정한다”며 “ 입시만 보고 달려가는 교육 풍토에서 진로교육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도 “자기소개서나 학생부 10개 중 9개는 읽을 내용이 없다”며 “교사조차 학생의 소질과 적성이 뭔지 모르는데 학생들이 진로 선택을 제대로 할 리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직업교육과 취업을 더 중시해야 하는 특성화고교도 대학 진학을 우선시해 왔다. 실제로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포함) 졸업생의 진로를 조사해 보니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간 취업자보다 진학자가 더 많았다. 지난해 졸업생을 내기 시작한 마이스터고(90.6%)의 압도적 영향 때문에 올해 들어서야 처음 취업자가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효완 서울과학기술대 입학사정관 실장은 “대학은 수많은 진로 중 하나일 뿐”이라며 “학생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을 찾고 교사는 이를 키워주는 매니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 청소년재단 잔 오웬 대표는 지난 6월 우리 정부가 주최한 진로교육 국제포럼에 참석해 호주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호주의 직업학교 졸업생은 ‘직무에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교사 72%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기업은 42%밖에 안 됐다. 그는 “학교 교육에 기업을 연계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진로교육”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이 기업과 연계한 직업교육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도제식 교육 프로그램인 VET(Vocational Education Training)로 유명한 스위스는 16세 때 직업학교 학생들이 기업과 고용계약을 맺는다. 일주일의 절반은 학교에서 이론을 배우고 나머지 절반은 기업에서 기술을 연마한다. 5만8000개 기업이 8만여 개 직업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기업에서 꿈과 끼를 찾고 기업은 미래의 인적자원을 확보한다. 덕분에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은 29%(2009년)로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지만 청년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2013년 7%)이다. 한국의 높은 대학진학률(2014년 78.3%) 및 청년실업률(2014년 10.9%)과 비교된다.

 특히 스위스는 직업학교를 나와도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 ‘유리천장’이 없다. 세계적 금융그룹인 UBS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세르지오 에르모티, 스위스경제연합회장인 하인즈 커러 등이 직업학교 출신이다.

 독일도 어릴 때부터 진로를 선택하도록 해 취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기본이 되는 내용만 배우고 필기시험은 가급적 피한다. 대신 학생의 적성과 소질을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체험을 장려한다. 4학년이 되면 담임교사가 일반계 학교인 김나지움(Gymnasium)과 직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 중 하나를 추천하고 학생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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