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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된 도난 문화재만 796점 … “해외 유출될까 큰 걱정”






“나흘 뒤에 불교문화재 특별경매전이 열리거든요. 거기 나오는 불상 하나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지난 5월 29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지능3팀에 조계종 총무원에서 제보 전화를 걸어왔다. 경매 관계자가 묘사한 불상 모습을 ‘불교 도난 문화재 도록’과 비교해보니 2004년 충북 제천 정방사에서 도난됐던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흡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나흘 뒤 경찰은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경매 현장을 급습했다. 불상과 불화 등 도난 문화재 다섯 점이 버젓이 경매에 부쳐지고 있었다.

 도난 문화재의 소유주는 불교 미술계에서 명망이 높았던 현직 사립박물관장 권모(73)씨였다. 건설업 등을 해왔던 권씨는 2012년부터 사채업자 10여 명에게 29억원 넘게 빌리면서 문화재들을 담보로 맡겼다. 하지만 건설 경기가 계속 나빠지면서 이자를 내기가 어려워지자 한 사채업자가 다섯 점을 경매에 내놓은 것이었다.

 경찰이 종로구에 있는 권씨의 박물관을 조사한 결과 박물관 유물 카드에 기재된 문화재 6000여 점 중 절반가량이 사라진 상태였다. 문제의 문화재들은 권씨가 사돈 친척의 명의로 계약한 경기도 성남의 한 창고에서 발견됐다. 전남 순천 송광사의 ‘지장시왕도’ 등 도난됐던 문화재 43점이 추가로 쏟아져 나왔다. 강상우 광역수사대 지능팀 경사는 “시골 폐가나 다름없는 곳에 국보급 문화재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며 “불상과 불화 위에 쌓인 먼지가 족히 1㎝는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 결과 권씨는 지난 27년간 전국 20개 사찰에서 도난된 조선시대 불교 문화재들을 사들여 이 창고에 보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광역수사대는 권씨와 문화재 매매를 알선한 경매업체 대표 이모(53·여)씨 등 13명을 검거한 뒤 권씨와 이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현재 권씨는 “개인적으로 불교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수집한 것일 뿐 도난된 것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에선 도난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장보은 광역수사대 팀장은 “문화재의 출처를 알 수 있는 화기(畵記·제작자와 봉안 장소 등을 적은 기록)가 대부분 훼손돼 있는데 이는 도난 문화재의 특징”이라며 “문화재 전문가라면 누구나 도난을 의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22~23일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도난 문화재 48점을 전시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도난 문화재가 회수된 것은 드문 사례다. 이들 문화재가 경매에 부쳐지지 않았다면 회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확인한 도난 문화재는 모두 796점.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가의 문화재가 평균 10억~30억원에 거래되는 것을 감안하면 암시장 규모는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사찰의 법당, 전각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어 불교 문화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혜일 스님은 “낮에 와서 법당 안의 문화재와 주변을 일일이 촬영하며 사전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금은 폐쇄회로TV(CCTV)와 경보기 등이 설치돼 있어 도난 건수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대일 유통’이라는 폐쇄적인 구조를 문화재 암거래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고 있다. 고가 문화재일수록 일대일로 거래되기 때문에 감시가 어렵다는 것이다. 혜일 스님은 “도난 문화재 도록이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사고팔기는 어렵지만 밀수 등을 통해 해외에 유출될까봐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또 장물 취득·알선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불법 매매업자를 적발해도 이미 시효가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매매업자들 사이에선 ‘조금만 버티면 노다지를 캔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경찰이 검거한 13명 중 6명이 공소시효 경과로 처벌을 피해갔다.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를 불법으로 양도하거나 취득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2000만원 이상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동국대 정우택(미술사학) 교수는 “문화재 도난을 막기 위해선 공소시효를 없애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백성호·조혜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사진 설명

대한불교조계종은 22~23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회수된 도난 문화재 48점을 전시한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시·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조관음보살좌상’(①)은 2004년 충북 제천 정방사에서 도난됐다. 전남 해남 대흥사에 있던 불패(②)는 조선 후기에 제작됐다. 불패는 부처님이나 스님을 모시는 위패로 법명이나 발원 내용 등을 적어 놓는다. ③ 불화는 정방사의 ‘나한도’다. 경북 청도 대비사에서 사라진 ‘영산회상도’(④)는 화기 부분에 조선 후기 유명 화가였던 의균(義均)과 스승 해웅(海雄)의 이름이 적혀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사진=김성룡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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