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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누구나 가면을 쓴다 어쩌면 그게 부성애일지도 …

‘나의 독재자’(30일 개봉, 이해준 감독)는 이름 없는 배우이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한 못난 아버지의 이야기다. 무명 배우 김성근(설경구)은 1972년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면서 그 리허설의 김일성 역을 맡게 된다. 회담도, 리허설도 불발되지만 성근은 역할에서 헤어나지 못해 아들과도 틀어진다. 20여 년 뒤, 빚 때문에 아버지의 옛집을 팔아야 하는 아들 태식(박해일)은 여전히 자신을 김일성이라 믿는 성근을 울며 겨자 먹기로 요양원에서 데려온다.

 설경구(46)는 물러 터진 성근의 말투도 동작도 거침없는 김일성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망상 속에 사는 성근이 아들에 대한 애틋함을 불현듯 내비치는 순간을, 특히 마지막에 성근이 오로지 아들을 위해 일생일대의 연극을 선보이는 장면을 진득하고 힘있는 연기로 소화한다. 그는 이 영화를 “물과 기름 같은 부자(父子) 이야기”라고 말했다.

‘나의 독재자’에서 김일성의 대역인 무명 배우 김성근을 연기한 설경구. [사진 전소윤(STUDIO 706)]
 -물과 기름이라니.

 “내 세대 부자관계가 다 그런 것 같다. 가끔 아버지가 전화를 하시는데 통화가 30초를 안 넘긴다. 5~6년 전인가, 전화를 해서 대뜸 미안하다고 하시기에 괜히 화가 났다. ‘갑자기 그런 말을 왜 해요?’ 하고 퉁퉁거렸다. 그럴 때 ‘아니에요, 아버지. 애쓰셨어요’ 하는 건 작가가 쓰는 대사다. 현실에선 부자 간에 속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참 힘든 것 같다.”

 -성근은 김일성 역할에 빠져들어 아들과 관계가 나빠지는데.

 “계속 고민했다. 성근이 김일성이란 역할에서 못 빠져나온 건지, 안 빠져나온 건지.”

 -안 빠져나왔다면 왜일까.

 “돌아갈 데가 없다.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가 맡을 배역도 없고. 무엇보다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뭔가 보여주려면 김일성이란 역을 계속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 아들 곁에 있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김일성을 흉내 내는 역이라니 꽤 부담됐겠다.

 “극 중에서도 ‘지상 최고의 악역’이라 하지 않나. 김일성 역이었다면 아마 안 했을 거다. 성근은 김일성의 대역이지, 김일성은 아니다. 분장할 때도 김일성이 아니라 김성근처럼 보이는 게 목표였다.”

‘나의 독재자’에서 부자(父子)관계로 나오는 설경구(오른쪽)와 박해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년의 모습을 위해 매일 5시간씩 특수분장을 했다던데.

 “박해일은 ‘은교’(2012)에서 70대 시인 역을 맡아 매일 8시간씩 했다더라. 주변에서 내 성격에는 절대 못한다기에, 내가 견딜 수 있는 건 최대 5시간이라고 했다(웃음). 촬영 때는 분장이 시선을 뺏을까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이 분장을 아예 잊고 극에 몰입하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성근이 반짝 김일성으로 보이면 정말 좋겠다.”

 -손도 퉁퉁한 살집을 잘 표현했더라.

 “그건 진짜 내 손이다. 검버섯만 그렸다. 이 손 덕에 ‘박하사탕’(1999, 이창동 감독)에 캐스팅됐다. 젊은 경찰 영호(설경구)가 처음 고문을 하고 와서 첫사랑 순임(문소리)에게 손을 보여주며 ‘제 손 참 착해요’ 하는 장면이 있다. 이창동 감독이 내 손을 보고 두툼하고 손가락이 뭉툭한 게 ‘머슴 손’이라고 했다.”

 -성근은 본래 연극 포스터나 붙이던 신세다.

 “나도 포스터 붙이던 시절이 있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극단 학전에서 포스터를 붙여 용돈벌이를 했다. 한 달쯤 했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초연을 준비하던 김민기 대표가 대뜸 그 주연을 맡겼다. 도대체 언제 나를 눈여겨봤는지. 포스터 붙이다 캐스팅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웃음).”

 -성근이 드디어 아들 앞에서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주 인상 깊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 장면을 망치면 영화가 다 무너지는데, 첫 대사를 어떻게 뱉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 장면만 4, 5일을 찍었다. 중요한 장면일수록 다 찍고 나면 찝찝하다. 관객이 어떻게 볼지 정말 궁금하다.”

장성란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부족한 아버지는 가면 뒤에 숨으려 하고,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진짜 얼굴과 마주한다. 묵직한 감정의 영화. 설경구에게 경의를!

★★★(이은선 기자):극 전체를 압도하는 설경구의 존재감. 시대의 그늘로 살았던 이 세상 모든 아버지를 위한 혼신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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