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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락해도 오히려 증산 … 사우디 승부수

‘펌프 전쟁.’

 토머스 프리드먼은 최근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최근의 저유가 경쟁을 이렇게 불렀다. 한쪽이 쓰러질 때까지 석유를 파내는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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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유가는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배럴당 8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22일(현지시간) 브렌트유(12월 인도분)는 배럴당 86.37달러에, 서부텍사스유(WTI)는 82.61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가격은 6월 중순 이후 25% 이상 하락했다.

 과거의 사례로 볼 때 이렇게 원유가격이 떨어지면 원유생산국은 생산량을 줄였다. 공급을 줄여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서다. 그런데 요즘 석유 시장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산량을 늘리거나 심지어 가격을 낮추기까지 한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여기에는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는 최근 원유 판매가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는 하루 산유량을 10만 배럴씩 늘렸다. 이유는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다. 사우디의 이런 결정은 ‘계산된 도박’이다. 사우디는 이번에는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이는 과거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1980년대 북해 유전이 발견된 뒤 유가가 급락하자 85년 사우디는 일일 원유 생산량을 75%나 줄이며 가격 지지에 나섰다. 하지만 가격은 더 떨어졌고 사우디는 16년간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게다가 아프리카와 남미 등으로 원유 공급시장이 다변화돼 싸게 팔더라도 시장을 지키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다 유가를 떨어뜨림으로써 잠재적 경쟁국인 미국과 현재의 경쟁국인 러시아 등을 함께 견제하는 꿩 먹고 알 먹는 전략을 쓸 수 있다. 미국의 셰일 가스는 사우디에는 신경 쓰이는 존재다. 유가가 낮아지면 미국은 셰일 가스를 개발할 필요성이 줄어든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도 저유가는 나쁘지 않은 카드다. 주요 석유수출국이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어서다. 덕분에 이라크 핵 문제를 놓고 삐걱댔던 동맹국 미국과의 관계도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데보라 고든 카네기기금 에너지·기후 이사는 “사우디는 동맹을 소원하게 하지 않으면서 경쟁자와 적을 함께 견제하는 영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80년대 중반에도 사우디가 주도한 저유가 정책은 소련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86년 사우디가 하루 산유량을 20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로 늘리자 유가는 배럴당 10~20달러까지 떨어졌고, 이는 소련의 몰락을 부채질했다.

 현재 저유가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곳은 베네수엘라다. 수출액의 95%를 차지하는 석유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62달러(브렌트유 기준)가 돼야 손해를 보지 않지만 현재 유가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우디의 입장에서는 배럴당 99.2달러가 적정 유가지만 막대한 외환보유액이 출혈 경쟁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중국과 유럽 등 세계 경제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저유가는 처음에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여겨졌다. 시티그룹은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수준으로 유지되면 미국 한 가구당 평균 600달러의 감세효과가 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유가 하락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유럽은 지금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따른 경기 침체) 위기에 처했다.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각종 부양책을 쓰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가가 떨어지면서 부양책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향후 전망도 유가 추가 하락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원유 수요가 예상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돼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애초에 올해 세계 원유 수요가 지난해보다 하루 평균 92만 배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최근 하루 70만 배럴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수정 전망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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