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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연주 현씨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소월의 명시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평안북도 영변의 옛 이름은 연주.
연주 현씨는 바로 이곳 영변에서 8백여 년 전 가문을 열었다. 오늘날 남한에서만 6만 5천여명, 2백 49개 성씨 가운데 56위.
연주 단본으로 시조로부터 37대를 내려오는 동안 우뚝우뚝한 후손들을 중심으로 17개 파가 갈려 8도에 흩어져 살고 있으나 「모두 한 할아버지 자손」의 동족의식이 남다르다.
발상지가 영변인 만큼 정주·박천 등 평북과 개천·대동·평원·순천 등 평남, 그리고 함북 명천·길주·경성 등 주로 북한지역에 많이 분포했고 벼슬길이나 생계를 찾아 후대에 남한전역에도 퍼졌다. 현재 남쪽에선 경기 연천·광주·양주, 충남 천안, 전남 영암, 경북 경산·예천·달성·청송, 그리고 제주도 등에 많이 산다. 특히 제주도에는 2천 5백여 가구가 집단거주, 남한전체 현씨의 거의 20%가 몰려있는 특색을 보이고있다.
시조는 고려 명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경담공 현담윤.
영변산골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담윤은 몸집이 크고 숙성한데다 담대·총명해 일찍부터 주위의 촉망을 받았다고 한다.
서당에서 사서오경 등 유교경전을 배우고 나자 『나랏일이 어지러운 이때 사내대장부가 어찌 글만 읽을 것인가』며 책상을 밀치고 말타기·활쏘기 등 무예를 익혔다. 을지문덕·양만춘 등 고구려 무인의 전통을 이어 「장수」의 천분을 타고났던 듯 하다.
이런 일화가 전한다.
어릴적 혼자서 험준하기로 인근에서 소문난 검각산을 밤에 넘게 됐다. 어른들도 무서워 못 다니는 산길을 혼자서 태연히 넘는데 문득 도깨비들이 나타나 『현 장군이 오셨다』 외치며 수백 개 횃불을 밝혀 길을 인도했다는 것이다.
비범한 장재가 빛을 볼 기회는 왔다.
19살 나던 해 흉노가 고려를 침범했다. 관군은 매해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담윤은 분연히 고장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의 위급을 구하고 흉노를 물리치는데 앞장섰다.
그 공으로 의종은 그에게 연산부사를 제수하고 그 때까지 집안이 가난해 장가도 못 들고 있던 그를 명문의 딸과 혼인시켰다. 현씨 가문의 출발이 된다.
『물론 시조공이 현씨 성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그 이전부터 현씨가 있었겠지요. 다만 그 때까지 기록도 없이 내려오다 시조공이 입신을 하시면서 그로부터 가계를 헤아리게 된 것 아니겠읍니까.』
현씨 대종회 총무 현상정씨(56)의 말.
담윤은 여진의 위협에 시달리던 송이 원병을 청했을 때는 고려의 대장으로 송의 대 여진전에 참가, 공을 세우기도 했다.
송의 임금은 담윤의 장재를 아껴 귀국할 때는 고려 조정에 중용 하도록 특별히 천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뒤이어 명종 4년(1174년) 조위총의 난이 일어나자 담윤은 맏아들 덕수와 함께 결정적인 무훈을 세운다.
병부상서 겸 서경유수였던 조위총이 서경(평양)에서 반기를 들자 절령(현 황해도 서흥)이북의 40여성이 일시에 호응했다. 이때 담윤은 덕수와 영변성을 지켜 위총의 온갖 유혹 협박을 물리쳤다. 4만의 군사로 포위공격하자 임기응변의 전술과 계획으로 이를 잘 막아냈다. 반란군의 개경 진격을 막고 토벌군과 앞뒤에서 협공, 위총의 난을 평정한다.
담윤은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덕수 등 세 아들이 모두 벼슬길에 나아가 봉군의 영예를 누리고 현씨 가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덕수는 신종 때 병부상서(요즘의 국방부 장관)를 지내고 성산부원군으로 봉함을 받았다. 둘째아들 이후는 경상도 안렴사를 지내고 광성군의 봉함을 받았으며 3남 덕유는 대사공을 역임하고 회원군의 봉작을 받으니 현씨 가는 시조 2대에 벌써 명문의 터전을 마련한 셈이다.
시조 이래 무인의 기질이 우세해 삼별초난 당시 도원수를 지낸 문혁, 조선 세종조의 북병사 명원 등 양장을 많이 배출했다.
그러나 여대 후반 이후 현씨의 기질은 다소 변화를 나타내 오히려 문 쪽으로 기우는 느낌이다.
조선 태조 때, 예조판서 옥량을 필두로 조선조 문과급제자가 20명.
그 중 현정규는 과거 길에 우연히 평복의 세조와 마주쳤다가 세조의 사람 보는 눈에 띄어 효령대군의 손녀사위로 왕실의 사위가 됐다는 일화가 전한다. 현씨 가는 여복와도 인연이 있는 듯하다. 석규는 이조판서까지 올랐으며 공정무사한 일 처리로 「명관」의 칭송을 들었다.
천안 육현사에 배향된 덕승, 영조조의 저명한 성리학자인 관봉 현상벽, 숙종조의 학자 삼벽당 현야호 등이 현씨 가문의 문맥을 빛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신자로 김대건과 함께 순교한 현석문은 현씨네의 그 근후 성실하면서 원칙에 충실하고자하는 고집스런 일면을 드러낸 인물로 볼 수 있다.
북로군정서 부총재를 지낸 독립운동가 현천묵, 국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낸 현익철, 통의부 법무위원장을 지낸 현정경 등과 초대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사학자 현상윤(6·25때 납북), 일제하 진보적 실업인으로 큰 업적을 남긴 현준호, 작가 현진건 등이 최근세 현씨 문중의 인물.
민주당 정권에서 현석호씨가 국방장관을 맡아 2대조 덕수 이래 2번째로 국방책임자의 자리에 올랐었고 공화당 정권에서 6선 국회의원으로 원내총무를 오래 역임한 현오봉씨 등이 있다. 『희망의 나라로』, 『바다로 가자』등 명곡을 많이 남긴 작곡가 현제명, 전 성균관대 총장을 역임한 법학자 현승종, 서울농대 학장을 지낸 농학자 현신규, 국전 심사위원인 서예가 현중화 등 현대의 현씨 가는 학문·예술 쪽에서 더 빛나는 느낌이다.
글=문병호 기자
사진=장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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