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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수대교 생존자 "트라우마로 남은 충격…심리치료 못받아"

[앵커]

성수대교 참사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모두 49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32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목숨을 건졌는데요. 살아남은 분들에게 지난 20년의 세월은 어떠했을까요. 열일곱 분 중 한 분을, 오늘(21일) 직접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방금 전 앵커브리핑에서도 잠깐 만나뵌 분인데요, 이경재 씨께서 나와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안녕하십니까?]

[앵커]

어렵게 나와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년 전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 보면 당시 의경 신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앵커]

어땠습니까, 상황이.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그때 당시 저는 서울청 3기동대 40중대 소속으로 다른 동료 10명과 같이 경찰의 날 표창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똑같이 항상 또 다녔던 길이고요. 그날도 편안하게 가던 날인데 갑자기 다리가 무너져서 같이 추락을 하게 됐습니다.]

[앵커]

그게 한 7시 40분경이 됐었던 거죠?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앵커]

버스가 그냥 아차 싶은 상황에 그러니까 전혀 부지불식간에 뚝 떨어져 버렸습니까? 아무런 전조 없이?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버스는 어떻게 떨어졌는지는 제가 기억이 없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저도 상판과 같이 추락하면서 뒤로 갑자기 밀리는 느낌이 났었고 그 밀리는 순간 '브레이크 잡아'라는 소리와 같이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버스가 앞쪽에서 뒤집혀 있더라고요. 거의 반으로 접혀서 뒤집혀 있었습니다.]

[앵커]

그 버스 안에는 몇 명 정도가 타고 계셨다고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버스 안에는 정확히 제가 파악은 못 하겠는데요. 하여튼 30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가요. 그래서 깨어났을 때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을 테고.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여기저기서 계속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소리 그리고 한강물에도 빠진 분이 계셨어요. 그분을 또 저희들이 물에까지 들어가서 구조해서 오고.]

[앵커]

그런가요. 버스가 그 위에서 그렇게 떨어졌는데 굉장히 높은 높이였단 말이죠. 그런데 지금 나와주신 이 선생님께서는 그때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던가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희들 같은 경우는 다리 상판하고 같이 추락을 했기 때문에 다리가 좀 완충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다친 곳도 없고 큰 사고가 없었고요. 버스 같은 경우는 그 사고를 보고 뒤늦게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늦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곤두박질친 것 같습니다.]

[앵커]

그래서 상판 위로 떨어졌기 때문에 충격이 커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고.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뒤로 뒤집혔죠.]

[앵커]

타신 버스는 상판과 함께 물 위로 떨어졌던 거고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희는 봉고차를 타고 같이 추락을 했죠.]

[앵커]

그래서 같이 갔던 의경분들이 많이 구조작업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상황이 어땠습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일단 정신을 차리고 난 다음에 다 같이 여기저기서 비명소리도 나고 살려달라는 소리도 들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물에 떠내려가신 분도 있고 그래서 저희 동료가 뛰어들어서 물속에까지 가서 꺼내오시고요. 그다음에 버스쪽을 가서 버스에 막 이렇게 겹쳐 있고 뒤범벅이 되어 있었거든요. 그분들을 꺼내기 시작했죠.]

[앵커]

오늘로 20년인데 아침 광경, 많이 떠오르시죠? 특히 이맘때가 되면?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오늘도 제가 위령제 때문에 한번 갔었거든요. 그날과 날씨도 똑같고 다 똑같더라고요.]

[앵커]

오늘도 아까 나갔었습니다마는 비가 오더라고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그 추위랑 너무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놀랐습니다, 오늘.]

[앵커]

흔히들 우리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얘기합니다. 이렇게 큰 충격을 겪으신 다음에 이것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돼서 일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많이 느끼십니까, 그런 건?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 같은 경우는 지금 20년이 됐지만 처음에는 그 기억을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런 트라우마 같은 게 없었는데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니까 그와 비슷한 느낌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현상을 받으면 좀 공포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서 저 같은 경우 다리를 건널 때는 좀 빨리 건너는 편입니다, 운전하고. 그리고 만약에 그 다리가 좀 밀리는 다리다, 차량이. 그러면 다른 다리로 돌아가는 입장입니다.]

[앵커]

공포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그런 얘기군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만약에 다리 가운데 차가 멈췄을 때는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공포를 느낍니다. 그리고 한 5년 전인가, 한 4년 전인가. 제가 대형 쇼핑몰에 한 번 갔다가 지하실에서 그런 것 또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흔들렸고요. 다른 분들은 괜찮다고 하는데 저는 굉장히 크게 느꼈거든요. 바로 무너질 것 같은. 그래서 혼자 뛰쳐나온 적도 있습니다.]

[앵커]

그때 같이 있으셨던 의경분들은 요즘도 혹시 만나십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몇 분은 통화를 하고.]

[앵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십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는 처음에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한번 혹시 하고 물어봤더니 그분들도 저와 비슷하게 그런 현상을 느끼고요. 한 분 같은 경우는 버스를 타고 가더라도 다리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잠에서 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현상을…]

[앵커]

혹시 그 사고 이후에 심리치료라든가 이런 걸 받아보셨는지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아니요, 전혀 그런 건 없었습니다. 경찰병원에서 한 일주일 정도 저희들이 입원해 있었고요. 그 뒤로 바로 퇴원을 했습니다.]

[앵커]

다른 어떤 보상이라든가 이런 것도 없었습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사고 사망 유가족들이나 아니면 사고 부상자들은 다 보상을 받은 걸로 알고 있고요. 저희 의경 11명은 제외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의경이라서 안 해 주는 건가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그건 저희들도 궁금한 사항인데요. 그래서 제가 서울시청과 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의뢰했었고요.]

[앵커]

최근 들어서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거기 시청에서 본 자료를 보니 보상합의 부분에 대해서는 의경 11명은 제외라고 딱 적혀져 있더라고요.]

[앵커]

그런 규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의경이라고 해도, 예를 들면 공무 중도 아니었고 그냥 버스 타고 가다가 떨어져서 그렇게 크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인데 보상이 전혀 안 됐다는 건 지금으로써는 이해가 좀 잘 안 가는데,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희들도 지금 궁금해서 동료들이 좀 알아보자,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보상도 문제지만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이른바 트라우마로 남은 그런 충격. 심리치료는 분명히 있어야 되지 않았을까. 아마 이게 외국의 경우라면 이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 당시 의경은 전혀 아무도 심리치료라든가 이런 상담조차 한 적이 없습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희들은 그런 거 없었습니다. 그런 거 없었고 바로 퇴원하고 근무에 바로 들어왔습니다.]

[앵커]

그렇습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잠시 포상휴가를 다녀오고요.]

[앵커]

사실 성수대교 참사 이후에도 삼풍백화점 바로 그다음 해에 있었고요. 또 같은 해였던가요? 충주호 유람선이 뒤집혔던 그런 상황도 있었고 대구 지하철이 폭발했던 사건.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금년에는 세월호 사고까지 벌어졌고요. 어떤 걸 느끼십니까? 그러니까 희생된 분들도 그렇고 거기서 어렵게 살아남으신 분들 그분들에 속하시니까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제 생각에는 대형사고들이 다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인재라고 생각하고 관리감독하시는 분들 잘하셔야겠지만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책임감을 갖고 내 일처럼 하신다면 그래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본인의 예를 봐서는 심리치료 같은 것은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그런 생각은 하지만 겉으로는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어디에서 말을 못 하는 거고요. 겉으로 어디가 하나 부러졌다든가 이러면 그렇게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혼자 최대한 혼자 겪고 있습니다.]

[앵커]

사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직후에 바로 이러한 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왔었습니다. 지금 본인께서는 이거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얘기를 하시지만 그런 부분들이 보이지 않는 피해로서 굉장히 장기간 지속이 된다라는 것이 굉장히 무서운 건데요. 그런 것에 대한 필요성은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고요. 혹시 개인적으로 사고 이후와 사고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으십니까?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저 같은 경우는 사고 전에는 모든 사람이 비슷하겠지만 꿈을 꾸고 목표가 있습니다.]

[앵커]

미래를 생각하고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네, 미래를 생각하고요. 그 계획을 잡아서 움직이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때 어쨌든 생과 사를 한번 갔다왔지 않습니까? 그때부터는 오늘 하루하루를 굉장히 즐겁게, 일도 즐겁고 하고 오늘 하루를 굉장히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앵커]

매일매일을. 다만 미래에 대한 생각은 그만큼 덜 하게 되셨다는 건가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맞습니다. 약간은 좀 덜 하면서 미래라는 계획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요즘 같이 이렇게 사고가 많다 보니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없는 거니까요. 오늘 최선을 다해서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앵커]

어떤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20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 살아남으신 이경재 씨와의 인터뷰 잠깐 진행했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이경재(42)/성수대교 사고 생존자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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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