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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의 속살, 탐하고 추구하고

매년 9월 런던은 열린 도시가 된다. 평소엔 개방되지 않는 관공서와 상징적 건물들이 일반 시민들을 손님으로 맞는다. 시청은 물론이고 영국은행 본부, 수상 집무실인 다우닝 10번지까지 예외가 없다. 도시 건축물 개방 행사, 이름하여 ‘오픈 하우스 런던’이다.

오픈 하우스 서울, 그 현장을 따라

1992년 영국의 한 민간 비영리단체가 시작한 이 행사의 취지는 멋진 건축물이나 역사가 담긴 장소를 무료로 소개함으로써 도시 건물을 체험의 공간으로까지 확장하자는 것. 그리고 이제는 런던뿐 아니라 뉴욕·로마·예루살렘 등 23개 도시가 네트워크를 맺고 같은 이름의 행사를 진행한다.

반갑게도 올해는 서울이 그 행렬에 들어섰다. 여덟 명의 국내 건축 전문가들이 2년 전부터 도모한 ‘오픈 하우스 서울’은 13일부터 일주일 간 서울 시내 28개 공간을 네 가지 테마로 나눠 일반인과 2시간 동안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유학파 건축가들의 개성적인 건축물을 소개하는 ‘2000년대 다양성의 출현’, 삼일아파트·세운상가 아파트 등을 답사하는 ‘1950~70년대 초기 아파트를 만나다’, 사찰·교회·성당을 둘러보는 ‘성스러움에 대한 다른 접근, 종교 건축’, 한국 근현대사를 가로지른 건축물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다시 살아나는 근대의 흔적’이다. 여기에 김인철·조병수·문훈 등 유명 건축가들이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하는 ‘오픈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곁들였다.

중앙SUNDAY는 그 중 네 곳을 골라 따라나섰다. 문이 열릴 때마다 이 낯익은 도시의 감춰진 속살이 드러났다.

1 남대문로 하수관 중 벽돌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지점.
2 서울광장 지하의 하수관을 보기 위해 행사 참가자가 맨홀로 들어가는 모습. 3 을지로 입구역에서 한국은행으로 이어진 남대문로 하수관. 서울시 문화재로도 지정됐다.
을지로입구역 지하엔 100년 전 지어진 하수관
13일 오전 을지로입구역 3번 출구 앞.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가로·세로가 2m 쯤 되는 맨홀 뚜껑이 열려있었다. 퀴퀴한 하수도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다. 참가자들이 가야할 곳은 바로 이 맨홀 속.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하수관이었다.

난감해 하는 이들 앞에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가 나타났다. 체험에 앞서 배경 설명을 시작했다. “산업화·도시화가 이뤄지면 가장 먼저 주택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주택 문제라는 게 결국 하수도 문제인 겁니다. 전염병과 관계되기 때문에 어쩌면 더 심각하죠. 그래서 물길에 대한 이해는 도시의 틀을 잡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건국과 함께 500년 간 이어져 온 옛 한성의 하수로가 근대적 지하수로로 탈바꿈하게 되는 이유와 연결지었다. 일제 강점기 중 근대화를 겪으며 서울의 하수관 역시 인구 증가에 걸맞는 구조를 지녀야 했다는 얘기였다. 이에 석재와 붉은 벽돌로 아치 모양의 하수관을 짓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볼 하수관은 제작연도가 1910년 전후로 추정하고 있어요. 20년대 지어진 다른 건축물들에는 철근 콘크리트가 쓰였거든요.”

장화와 방수복, 점퍼를 걸치고 장갑과 마스크, 헬멧까지 착용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랜턴에 의지해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을지로에서 한국은행 방향으로 조금 걸어나가자 벽돌 아치 구조의 하수관이 나타났다. 어른 한 명이 드나들면 꽉 차는 규모였지만 성곽처럼 탄탄해보였다. 건축학도 이동민(24)씨는 “책으로만 배웠던 도시 하수 체제를 직접 보니 신기하고 놀랍다”고 감탄했다.

일행들은 지상으로 나와 두 번째 ‘문화재 하수관’으로 향했다. 서울광장 지하였다. 맨홀 아래로 내려가 보니 본선과 지선이 만나는 합류 지점에 역시 아치형 하수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이 타원이 아닌 달걀형이었다. 상부의 무게를 최대한 견뎌내고 유속이 느리더라도 퇴적물이 덜 쌓이도록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 들려왔다. 이날 안 교수는 근대 하수관을 이렇게 평가했다. “합류되는 물의 높이 차이까지 고려해 만든 건축물들이예요. 굉장히 미학적이면서 또 굉장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하수관을 설계하고 시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1 경기도 분당구 운중동의 계수나무집 뒷모습. 2층 복층 주택의 천장 일부를 기하학적 구조로 바꿔 외관상으로도 개성을 드러냈다.
2 공간의 구획을 없앤 1층. 라이프타일에 따라 소파와 테이블 등 가구 배치를 달리하기가 쉽다. 3 1층에 실린더처럼 설치된 화장실 내부. 원통 형태가 되면서 사각의 전형적 틀을 탈피했다.
판교 계수나무집, 나만의 정원 대신 가로수를 택하다
13일 오후에는 경기도 분당구 운중동 ‘계수나무집’을 찾았다. 2년 전 한 부부가 조남호 건축가에게 의뢰해 지은 2층짜리 개인 집이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 오픈 하우스 측 눈에 든 데는 이유가 있다. 집을 소유가 아닌 존재의 의미에서 해석하고 지었기 때문이다. 건물로 들어서기 직전 조씨는 건물 옆에 심어진 계수나무를 가리켰다. “원래 법적으로 건물 옆 2.5m를 비워야 해요. 보통 이 숫자에 맞춰 자리를 내고 주차장으로 쓰죠. 하지만 이 집은 이 공간을 4.2m나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계수나무를 나란히 심어 놨죠. 마을을 위한 가로수의 개념으로 말이죠.”

회색 벽돌로 마감한 외벽 역시 마을과의 조화였다. 단독주택마다 개성을 앞세우다 보면 마을 전체로는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최대한 무채색을 고집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개성이 된다는 아이디어였다.

내부로 들어갔다. ‘건축의 개념으로 접근한 집’이라는 설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공간 배치와는 사뭇 달랐다. 어때야 한다는 규칙은 찾아볼 수 없었다. 1층은 벽 없는 자유로움을 최대한 강조했다. 화장실조차 한쪽 벽에 붙이지 않고 거실 중간 원기둥 형태로 배치했다. “막지 않고 공간을 비워두는 것, 그래서 자신들 의지대로 공간을 점유하고 살겠다는 게 건축주의 바람이었어요.” 이런 배경에서 거실과 구분되는 사랑방을 두고 창호문이 벽의 역할을 하며 가변적 형태를 띄는 한옥 요소를 접목시키기도 했다.

한 시간을 넘긴 질의 응답을 마무리하며 그는 “건강한 작은 집들이 모여 좋은 도시를 만든다”는 말을 남겼다. 단독주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집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건축가의 한 마디였다.

1 성공회 서울성당 전경. 유럽식 붉은 벽돌지붕과 전통 기와지붕의 조화가 성공회의 포용력을 상징한다.
2 수녀원 앞마당은 한국 전통 조경의 대가 김춘옥이 꾸민 아담한 정원이다. 3 모자이크 제단화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라틴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네 명의 성인 모습이 시실리 전통의 각석으로 제작됐다.
한국과 유럽의 전통을 함께 품은 성공회성당
14일 오후 덕수궁 북쪽 돌담길, 영국대사관 근처 인적 드문 골목 깊숙한 곳에 나이 지긋한 노부부부터 어린 두 딸을 동반한 젊은 엄마까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도심 한복판에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서울에 현존하는 유일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인 성공회 서울성당이다. 이 곳에서 사역하는 정창진 부제가 안내에 나섰다. 1926년 영국인들이 설계도를 축소해 지었던 것을 96년 원 설계도의 긴 십자가 형태로 증축한 것이 현재 모습이란다. “포용성·다양성·개방성을 중시하는 성공회 건축답게 당시 영국에서 대세였던 고딕 양식이 아닌 조선의 환경과 조화로운 로마네스크 양식을 택한 것이 우리 교횝니다. 부드럽고 담백한 느낌이 한국인과 잘 어울리죠.”

십자가 모양의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미술사 책에서 보던 동방교회식 모자이크 제단화와 지하에서 종탑까지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 비밀스런 지하 채플이 보는 이를 중세 유럽으로 이끈다. 십자가 머리 부분을 온통 차지하는 모자이크 제단화에 다가가니 색색의 각석들로 촘촘히 새겨진 예수와 성인들이 황금빛 조명을 받아 거룩함을 더한다. 예식 때만 사용한다는 아름다운 나선형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본당을 축소해 놓은 듯한 미니 채플이 앙증맞다. 이 아담한 공간은 놀라운 비밀을 품고 있으니, 바로 설립자인 조마가(Mark N. Trollope·1862~1930) 주교의 무덤이다. 회랑 바닥 한가운데 성당을 가슴에 품고 있는 주교의 실물크기 동판이 그것인데, 성당 안에 매장방식의 무덤이 있는 것은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성당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선 한옥은 사제관과 수녀원이다. 지붕은 한국식 기와요, 벽은 유럽식 붉은 벽돌로 마감된 독특한 형태가 역시 동서양을 포용하고 있다. 오늘 투어의 백미는 바로 이 수녀원 앞마당. 잘 익은 감이 탐스럽게 열린 감나무를 비롯해 목백일홍, 라일락, 소나무들이 빼곡한 사이로 겸손히 자리 잡은 나무 십자가가 왠지 모를 평안을 줬다. “경주 안압지 복원공사를 맡았던 전통 조경의 대가 김춘옥이 꾸민 정원”이라는 게 마당을 지나던 카타리나 수녀의 자랑스런 귀띔이다.

1 진관사 템플스테이 공간인 함월당 뒷태.
2 전통수행공간인 대웅전과 명부전 뒤로 보이는 응봉과 홍송이 천하의 명당임을 뽐내고 있다. 3 함월당에 앉아 미닫이 문을 모두 열면 자연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진관사속 ‘달을 품은 집’
15일 오후에는 북한산 기슭의 진관사를 찾았다. 성공회 성당이 꽉 막힌 도심 속에서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면, 진관사는 자연과 하나 되어 산의 정기를 온전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열정이 넘치는 도운 스님과 진관사 증축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조정구 건축가가 안내에 나섰다.

진관사는 천년 고찰과 최신식 한옥이 어우러져 한국 건축의 어제와 오늘을 품고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대웅전과 명부전 등 사각의 경내에 지어진 전통 수행공간은 고려 8대 임금 현종이 수행하던 곳으로, 왕이 된 뒤 스승의 이름을 따 ‘진관사’라 칭한 지 1004년 째가 된다는 게 도운 스님의 설명이다. “대웅전을 병풍처럼 두른 홍송 뒤로 동그란 봉우리 보이죠? 홍송은 기운이 좋은 곳에서만 산답니다. 이렇게 최고 명당자리라 예부터 큰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진관사를 찾았어요. 동그란 응봉의 기운을 받으면 뜻한 바를 이룬다니, 듬뿍 마시고 받아 가세요.”

전통 수행공간에서 나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지난해 완공된 템플스테이 공간이다. 산자락을 따라 오름차순으로 규모가 큰 함월당과 중간 크기 공덕원, 개인이 독채로 쓴다는 아담한 효림원이 살짝 나선을 그리며 배열된 구조다.

‘달을 품은 집’이라는 함월당은 특이하게 뒷태를 먼저 만나게 되는데, 원경의 산봉우리부터 첩첩이 겹쳐진 기와지붕, 암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장독대까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천장에 커다란 호박 모양 조명등이 따뜻하게 비추는 함월당에 앉아 문을 모두 여니 거대한 풍경화 액자 5개가 바람을 머금었다. 이 방에서 500명에게 동시에 설법을 베푼단다. 함월당의 비밀은 숨겨진 1층이 있다는 것. 무심코 길을 따라 내려가니 식당, 주방을 갖춘 현대식 건물이 한옥 아래 기단처럼 ‘짠’하고 나타나 잠시 홀린 기분이다.

꼭대기 효림원에 올라 내려다보니 함월당 용마루 곡선이 뒤로 보이는 산의 라인을 닮았다. ‘자연의 선을 모방하면 가장 오래 살아남기에’ 기울기를 맞춘 것이란다. 집과 누각이 더해진 효림원 누마루에 앉아 사방의 문을 열고 풍경을 품으니 전망대가 따로 없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피터 쥼터도 하룻밤 묵어 가며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투어를 마치고 오솔길을 내려오다 문득 뒤돌아 보니 지나온 건물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야 보이고 멀리서는 잘 노출되지 않는 것이 집을 보호하기 위한 한국 전통건축의 미학이란다. 튀는 외관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묻어가는 최신 건축 트렌드가 이 천년고찰에 있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유주현 객원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김춘식 기자, 전호성 객원기자, 오픈하우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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