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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용 물 창고가 지혜의 샘으로

기둥의 크기를 고려해 적절히 공간을 구분했다.
건물 주변을 두세 바퀴는 돈 것 같다. 높다란 벽 기둥 사이 창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 도서관이 확실한데 입구를 도통 찾을 수가 없다. 지나가던 학생에게 물으니 도서관 옆 건물의 지하로만 출입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이라곤 세 채밖에 되지 않은 대학에 도서관 입구를 왜 이렇게 만들어놓았을까. 힘들게 찾은 지하 입구에 도착하니 이번엔 제복 차림의 경비 둘이 막아선다. 출입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며 완강하다.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울에 있는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대학에서 공부했던 선배는 짧은 스페인어 문장 하나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폼페우 파브라 대학에서 공부한 졸업생입니다. 이 친구들은 한국의 건축가이자 도서관 건축에 큰 관심을 가진 전문가들입니다. 멀리 한국에서 온 이들이 도서관을 둘러볼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휴대전화를 들이밀며 문자를 보여주니 그제야 문을 열어준다.

강예린 이치훈의 세상의 멋진 도서관 <2> 바르셀로나 폼페우 파브라 대학도서관

방문하려는 곳은 현대 카탈루니아 언어의 표준을 마련했다는 언어학자이자 엔지니어 폼페우 파브라(Pompeu Fabra)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대학이다. 1990년 문을 연 이 대학은 한 때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가장 큰 녹지였던 시우타데야 공원의 북서쪽 세 개의 블록(L’Eixample)을 캠퍼스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다(바르셀로나의 현재 도시 모습은 일데폰스 세르다라는 도시계획자에 의해 고안됐고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쳐 완성됐다. 가로 세로 130~140m 크기의 모서리 잘린 4각형 블록이 반복되며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 도시 블록의 단위를 ‘어잠플레 L’Eixample’라고 부르는데, 이는 ‘확장’이라는 뜻의 카탈루니아어다).

건물의 가운데 천장에는 빛이 들어오는 천창이 있어 자연광이 도서관 건물 깊숙이 유입된다.
150년의 시간을 떠받들어온 벽 기둥
이곳은 특히 물을 저장하는 저수조 건물을 개조해 만든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건축가 요셉 폰트세레(Josep Fontserè)는 인접한 시우타데야 공원 분수에 물을 대기 위한 저수조 건물을 설계, 1874년 건설됐다. 분수대의 물을 뿜기 위해 높은 곳에 저장된 물의 낙차를 이용한 것인데, 이를 위해 17.5m 높이의 저수조를 고안했다.

건물 모서리에 네 개의 탑과 벽 기둥이 연속된 네 면의 똑같은 파사드(입면)를 가진 정사각형 건물. 약 1만t 가량의 물을 17.5m 높이 위에 지지해야하는 이유로 내부에는 90cm 정도의 두꺼운 벽 기둥에 의해 4m 간격으로 칸막이처럼 나뉜 공간이 존재한다. 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전에는 피난시설, 형사법원의 아카이브, 전시 공간, 영화 촬영장 등으로 사용됐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지하 통로를 지날 때는 마치 비밀기지 혹은 숨겨진 보물창고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도서관 출입구를 지하에 품고 있는 이 건물에는 인류학·정치학·사회과학 학과 사무실도 있다.

평범한 열람실 공간을 지나 지하에서 두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150년의 시간을 간직한 벽돌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고요하고 묵직한 공간과 극적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오직 엄청난 양의 물을 떠받치기 위해 존재하던 두꺼운 벽과, 기둥, 볼트로 구성된 이 공간은 그 존재만으로 중력에 저항하는 순수한 구축에의 의지를 대변하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육중한 구축물 사이사이 작고 노란 탁자등 아래로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위대한 역사적 도시유산을 가진 유럽이 건축을 다루는 방식이 그러하듯, 기능적으로 전혀 도서관에 적합하지 않은 돌덩어리 공간을 대학의 중앙도서관으로 전용하기 위해 대학본부는 건축가·도시계획가·도서관 전문가·법률 전문가로 이루어진 임시 협력조직을 꾸렸다. 학교 프로젝트를 수행해본 루이스 클로에/이냐시 파리씨오(Lluís Clotet and Ignasi Paricio)를 책임건축가로 선임하고 첫 단계 개관이 이루어진 1999년까지 7년여 시간 동안 스터디했다. 여러 주체들이 이견을 조율하는 가운데 모두가 공감한 한 가지 원칙은 기존 건축물의 아름다운 구조와 공간조직, 재료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메자닌 설치로 내부 공간 효율적 구분
근대 이전의 건축이 가지는 기술적 한계이기도 했지만, 저수조를 도서관으로 바꾸는 작업의 가장 큰 어려움은 두꺼운 기둥과 구조벽이 내부 공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구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기에 기존의 바닥면적 만으로는 대학도서관이 요구하는 규모의 공간을 얻을 수 없었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4m 모듈의 두꺼운 벽 기둥 사이에 메자닌(Mezzanine)을 설치하기로 했다. 내부 공간의 중앙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2.8m 높이의 중이층 바닥을 걸어 모자란 바닥면적을 보충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면적을 늘려주기도 했지만 17m가 넘는 높은 공간을 다양한 높이의 독서공간으로 변화시킨 중요한 아이디어였다. 메자닌 층을 기준으로 하면 머리가 닿을 듯한 낮은 공간, 중간 높이의 공간, 천정까지 트인 높은 공간이 생겨났다. 원래 바닥을 기준으로 하면 메자닌이 걸린 높이의 공간, 원래 천정까지의 가장 높은 공간까지 다양한 천정고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공간의 크기뿐 아니라 천창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다양한 자연광 조건을 연출하는 효과도 얻게 됐다. 또 도서관 자료 보관에 중요한 실내기후 조절을 위한 기계 및 전기 설비, 소음을 줄여주는 재료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바닥을 설치하면서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

어떤 위치에 앉아 보아도 아늑한 느낌을 얻게 되는 이 장소는 세상과 단절된, 오직 독서만을 위해 만들어진 타임머신 속 같다. 서가와 책상, 조명 등 모든 건축적 요소들이 치수·재료·색상 면에서 100여 년 전 만들어진 공간적 질서와 완벽한 조화를 연출한다. 1999년 도서관 전체 크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차 개관을 시작으로 도서관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35만 권을 소장할 수 있는 9km 길이의 서가와 600곳의 독서 공간, 스터디룸 20여 개를 구비하게 된다고 하니, 저수조에서 도서관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이 아닐 수 없다.

돌아보니 묵직한 구조적 공간으로 인해 소리와 빛이 침묵과 고요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성당이나 수도원 같았다. 돌조각에 불과한 재료의 집합이 연출하는 이 극적 상태는 괴테의 말처럼 ‘동결된 음악’이다. 밖에서 입구를 찾을 수가 없고 오직 하나로 연결된 지하 출입구로 드나들어야 하는 것도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물의 저장고는 정지된 오케스트라의 한 장면으로 지식의 보고가 되어 그렇게 침묵과 고요를 간직하고 있다.


강예린·이치훈 건축가 부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도서관 산책자』『세도시 이야기(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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