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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아이러니 ‘단통법’ 대통령은 규제 혁파 … 장관은 기업 압박

# 지난 3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7시간여 동안 주재한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규제를 “경제 활력의 발목과 투자 의지를 꺾는” 존재로 규정했다. “낡은 규제가 융·복합을 가로막는 환경에서는 창조경제가 꽃필 수 없다”고도 했다.

# 17일 오전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가 이동통신사와 휴대전화 제조사 대표들을 급하게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서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단통법을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이용한다면 정부는 극단적인 대책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규제 혁파를 외치는데, 장관은 규제권력을 무기로 기업들을 오라 가라 하며 닦아세우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 경제의 실상이다.

미래부가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 기조에서 결정적으로 이탈한 건 단통법, 즉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을 통해서다. 핵심은 휴대전화 할인규제다. 이로써 요금규제(통신요금 인가제)와 함께 덩어리 통신규제가 완성됐다. 형식은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원입법이지만 실제는 미래부 주도의 ‘청부입법’이다.

취지는 보조금 무차별 살포, 차등 적용 등의 폐해를 없애고 휴대전화당 보조금을 동일하게 묶어 모든 소비자가 평등한 혜택을 누리게 함으로써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입법 전부터 ‘시장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제한해 소비자 이익을 갉아먹는 규제’란 반론이 끊이지 않았다.

법 시행 후 휴대전화 구입가격은 비싸졌다. 통신비 절감은커녕 ‘5000만 호갱(호구고객) 시대를 열었다’는 냉소가 쏟아지고 있다. 규제개혁위원장을 지낸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규제란 의도했건 아니건 그로 인한 수혜자와 피해자를 만든다”며 “단통법 규제로 이통사 간 보조금 경쟁이 사라졌는데, 그 경쟁의 이득은 그간 소비자가 누려 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가 만들어 낸 이익의 대부분은 소비자가 아닌 이통사로 흘러드는 구조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으로 올해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은 2조3367억원에서 내년엔 4조7271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보조금이 1만원 내려가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순이익은 각각 3.7%, 8.3%, 9.5% 늘어난다고 한다.

피해자는 또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달 하루 평균 4만2000대가량이던 스마트폰 판매량이 이달 들어 2만 대 선으로 급감했다. LG전자 역시 하루 평균 1만3000대 판매에서 4000대로 줄었다. 그러는 동안 중국 샤오미를 비롯한 해외 중저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해외 언론도 유심히 지켜본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지난 12일 “스마트폰 판매에 관한 한국의 제도 변화는 중국 메이커에 유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최 교수는 단통법을 ‘포획모형(Capture model)’의 시각에서 봤다. 정부가 규제 대상 산업을 지배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에 의해 지배당하거나 포로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통신시장이 그렇다는 얘기다. 포획은 ‘친(親)규제 블록’을 만든다. 규제의 ‘떡고물’을 받아 먹는 집단이다. 미래부는 할인규제를 통해 이통사와 휴대전화 제조사들을 자신의 규제권력 아래 묶어 두는 효과를 거뒀다. 17일 간담회에 불려 간 한 업체 간부는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급하게 불러 모은 것 자체가 규제권력”이라고 말했다.

결과론적으로 단통법은 친규제 블록의 한판승인 셈이다. 그 블록의 정점엔 ‘통(通)피아(통신부처+마피아)’로 불리는 그룹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SK텔레콤을 비롯한 이통 3사의 공직자 출신 임원(25명) 중 절반 이상이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출신이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래부뿐 아니라 정부부처 대부분이 관할 기업들과 ‘철의 삼각관계(iron triangle)’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료와 국회의원, 기업이나 이익집단들이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정책 수립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인위적으로 경쟁을 줄인다는 점”이라며 “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은 치열한 경쟁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가로막으면서도 공익의 실현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 관계기사 6~7p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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