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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입법 국회와 시어머니 노릇하려는 정부 합작품

“가구당 (통신비가) 15만5000원인데 단말기에서 약 30만~40만원, 요금선택제에서 (연간) 약 24만원 정도, (연간) 약 50만~60만원 가량 절약될 것으로 봅니다.”



단통법 계기로 본 졸속입법

지난 2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단통법) 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한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통신요금 인하 효과가 얼마나 있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의 질문을 받고서다.



그로부터 8개월. 시장은 윤 차관의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동통신사들이 휴대전화 보조금을 틀어쥐면서 가격은 올라갔고, 단말기 판매는 급감했다. 미래부 측은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름이 넘도록 시장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조차 당혹해 하고 있다. 법을 공동발의한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1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솔직히 이럴 줄 몰랐다. 미래부와 국회 모두 예측을 못한 것 같다. 반성한다”고 말했다.



통신비 부담, 버스폰 막겠다며 추진



단통법 시행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면서 국회를 향한 국민들의 질타가 뜨겁다.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보급율은 110%로 개통된 휴대전화 수가 인구보다 많을 정도다. 국회가 시장 혼란을 예상치 못한 채 졸속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단통법은 왜 만들어졌을까. 가구당 소비지출 가운데 통신비 비중은 1990년대 중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으로 수직 성장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하던 통신비 비중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다시 급증한다. 2009년 4분기 5%대였던 통신비 증가율은 14분기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부터는 10%대로 치솟았다.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은 모두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통신요금 인하를 위해 이동통신 가입비를 폐지하고 스마트폰 유통체계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이른바 ‘반값 통신비’ 공약이다.



2010년 이후 휴대전화 1대당 보조금은 27만원으로 묶여있었지만 이통사들은 가입자 유치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 부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새벽 시간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버스폰’(보조금이 많이 붙어 싸게 살 수 있는 휴대전화)이 풀리기도 했다. 같은 휴대전화라도 정보에 밝은 사람은 공짜폰을 사고, 정보에 어두운 사람은 100만원을 주고 사는 상황이 반복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선공약 이행작업이 시작됐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 등 10명이 지난해 5월 단통법을 발의했지만 정쟁 속에 1년여 동안 방치됐다.



급물살을 탄 건 올해 초 이른바 ‘2·11 대란’ 이후다. 영업정지를 앞둔 이통사들이 기습적으로 불법 보조금을 살포하면서 공짜폰은 물론 구입자가 돈을 받는 ‘마이너스폰’까지 등장했다. 특정 대리점 앞에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뒤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 미터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심사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중앙SUNDAY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된 의사록을 확인한 결과, 질의나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혼탁한 이통시장을 바로잡고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인다는 설명에 여야 의원들은 지난 5월 본회의에서 다른 6개 법안과 일괄상정된 단통법을 재석 215인 중 찬성 213인(기권 2인)으로 통과시켰다. ‘무사통과’였다.



“소비자 과소비”…정부의 구시대적 발상



이동통신업계에서는 단통법이 사실상 정부가 추진한 ‘청부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부입법 대신, 의원입법으로 추진했단 것이다.



애초 설계된 정책목표도 알려진 것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통신비 부담완화는 지금과 비슷한 이동통신 서비스를 더 싼 값에 제공받고, 저렴한 가격에 같은 성능의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미래부의 시각은 달랐다.



미래부 관계자는 “고가 단말기와 고가 요금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자가 불합리한 유통구조 때문에 통신 과소비를 하고 있다는 게 법 제정의 이유”라며 “소비패턴에 맞는 요금제와 단말기를 구입하도록 유도해 이동통신시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루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100만원짜리 최신 휴대전화의 가격을 낮추거나 같은 이동통신 서비스의 요금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중저가 휴대전화 보급을 늘리고 저렴한 요금제 사용을 확대시키는 것이 목표였단 의미다.



혼란이 커지자 정치권은 부랴부랴 법 개정논의에 나섰다. 이미 새정치연합 최민희 의원 등 10명이 입법과정에서 빠진 ‘분리공시’를 포함한 단통법 개정안을 내놨다. 새누리당 배광덕 의원 등도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시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법을 만들어놓고 비난이 쏟아지자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단통법이 본래 취지와 달리 서민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들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심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전화통화에서 “법 시행 보름 만에 이런 혼란이 빚어진 것은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입법을 추진한 국회의 잘못”이라며 “입법 후 부작용에 대해 면밀히 살필 수 있도록 정책역량을 키우고 졸속입법을 감시하는 역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소비인지 사치인지 일일이 판단하고 참견하겠다는 사고는 국회의원과 관료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며 “조속히 단통법을 폐기하고 가격경쟁 규제를 풀어 시장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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