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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초당적인 입장서 국익 최우선 … ‘충성스러운 야당’ 돼야

서울평화상 문화재단이 최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올해 수상자(12회)로 선정했다. 나치의 만행을 사과함으로써 인권의 고귀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게 수상 이유다. 서울평화상은 한국이 주는 유일의 세계 평화상이다. 서울 올림픽(1988년) 개최로 벌어들인 흑자 200억원 중 100억원을 기금으로 시작됐다. 한때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어 존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96년 현 이철승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순항하고 있다.



이정민이 만난 사람-헌정회 원로회 의장 이철승
새정치련, 책임 있는 야당 역할 소홀 거리 나가 싸움만 하면 오래 못 가
국회선진화법 탓 법안 처리 안 돼 국민에 대한 배신 . 당장 없애버려야
박정희 정권 때 미군철수 반대 도와 사쿠라로 몰려 신민당 대표 낙선
선비정신으로 살아 정치는 낙제생 주변에 부정한 사람 없어 후회 안 해

 소석(素石) 이철승(李哲承). 그는 해방 이후 정부 수립기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한국 정치를 풍미했던 원로 정치인이다. 야당사의 한 획을 그은 ‘40대 기수론’의 세 주역(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이 위원장)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7선 의원(3, 4, 5, 8, 9, 10, 12대) 출신으로 국회 부의장과 야당(신민당) 총재를 지냈다. 올해로 92세인 그는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도 맡고 있다. 한국 야당사의 산증인인 그를 만나 ‘길 잃은 여의도 정치’의 출구전략은 뭘지 들어봤다. 그는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충성스러운 야당’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철승 위원장은 “항일운동을 한 구세대의 막둥이, 건국운동을 한 신세대의 맏형”이라고 했다. [김성룡 기자]
 -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국회가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촛불이라도 켜놓고 국사를 다뤄야 하는데 국회선진화법이란 괴물을 만들어서 법안 처리를 안 하고 있잖아요. 의원 5분의 3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 해서 법안 처리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국민에 대한) 배신이 어딨어요. 그러니 국회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죠.”



 -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는 움직임도 있는데요.



 “당장 없애버려야 돼요. 국회 운영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하면 돼요. 선진화법이 있어야 폭력이 없어져요? 그게 아니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과거 자유당·민주당 국회에선 폭력이 없었어요. 국회에 윤리위원회가 있고 검찰이 있는데 왜 선진화법이 필요해요. 폭력 의원들은 윤리위에서 엄격하게 다루면 돼요.”



 - 정치 실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십니까.



 “1차적으론 대통령과 집권 여당 책임이지만 야당의 책임도 커요. 우리는 과거 야당 할 때 수권 야당을 자임했어요. 권력 잡으면 바로 정부가 될 수 있는 책임 있는 야당이에요. 그런데 지금 야당은 걸핏하면 거리로 나가고 싸움이나 하지 정책을 연마해 집권할 준비를 하지 않잖아요.”



 -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의 법통을 이은 정당인데요.



 “민주당(※새정치연합을 줄곧 민주당이라고 불렀다)은 장면 정부 때 민주당의 이름만 빌렸지 뿌리나 본질은 전연 달라요. 그땐 자유당 정권을 뒤집어서 민주당 정권을 만들었어요. 야당은 정책을 발전시켜 전 정권보다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데 민주당은 시민단체나 똑같이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계속 이렇게 된다면 오래가지 못해요. 신당이 만들어지든지 분열하든지….”



 화제가 2공화국 시절로 옮겨갔다. 1년 만에 막을 내린 단명 정권이었지만 자유당→민주당으로의 첫 정권교체였다. 이 위원장은 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고 장면 내각이 출범하자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으면서 국정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이듬해 유엔 총회에 한국 대표로 파견돼 연설하고 귀국하는 도중 5·16을 맞는다. 5·16은 그에게 10년간의 미국 망명이란 시련을 안겼다. 정치규제에 묶여 해외를 떠돌던 사이 YS·DJ가 야당가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돌아오는 길에 민단 연설을 위해 도쿄에 들렀는데, 그날이 공교롭게도 5·16 쿠데타가 나기 하루 전이에요. 직감적으로 박정희가 주동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국방위원장을 오래 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야전군 사령관 때부터 잘 알고 지냈어요. 유진산 총재가 ‘서울에 돌아가 사인을 보낼 테니 5·16 쿠데타 군사정권 반대운동을 하자’고 해서 나는 도쿄에 남았어요. 돌아간 사람들이 정치규제에 묶여 형무소에 잡혀가 나 혼자 5·16 반대 성명을 냈어요. 그러자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내 외교관 여권을 취소해버려 무국적자가 됐고, 일본 친구들의 도움으로 국제적십자가 주는 난민증을 받게 됐어요. 그때 미 국무부가 입국사증을 보내줘 미국에서 10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됐죠.”



 - 장면 정부가 1년 만에 무너진 건 무능 때문이 아닌가요.



 “12년을 싸워 악전고투 끝에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어요. 굴 속에 살던 사람들이 12년 만에 햇볕을 쪼이니까 정신이 어지러웠죠. 질서를 잡고 민주주의를 하나씩 실천해가야 하는데 그 틈을 못 잡고 박정희 정권이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거예요. 총칼을 들고 나오는데 맨주먹으로 당할 길이 없죠.”



 - 관리 능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때 내가 미국에 안 가고 여기 있었으면 5·16은 안 당했을 거예요. 국방위원장이어서 군내 이상한 낌새가 있다는 일부 정보가 있었고 이를 장 총리에게도 얘기했었어요. 장도영(당시 육군참모총장)은 기회주의자니 절대 믿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양다리 걸치고 있던 장도영한테 꼼짝없이 당한 거예요.”



 - 정치규제가 풀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같이하자고 제안했는데 끝내 거부하셨죠.



 “장면 정권이 5·16 쿠데타로 쫓겨났는데 그 밑에서 정치하면 변절자죠. 지조와 명분을 지키는 선비의 후예로서 그렇게 할 순 없었죠.”



 - 아이러니하게도 나중엔 박정희 정권을 도와줘 같은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됐는데요.



 “신민당 당수 때 카터 대통령이 미군 철수를 추진했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박동선 사건이다 뭐다 해서 카터한테 몰려 꼼짝 못하고 있었고요. 난 안보엔 여야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어요. 일본 지도자들을 만나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해 북한과 중국이 몰려오면 일본이 최일선이 된다’고 설득했어요. 미국에 가서는 험프리 상원의원과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나 미군 철수 철회를 요구했어요. 브레진스키는 여당도 못하는 일을 야당 지도자가 미국까지 와서 미군 철수 반대운동을 하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며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는 미국의 기본정책과는 다르다, 노력하겠다고 했어요. 일생일대에 큰 애국운동 한 거라고 자부해요.”



 - 당내에선 사쿠라로 몰리지 않았습니까.



 “김영삼·김대중파들이 박정희 청부 맡아서 박정희 살리려고 한 것 아니냐고 날 공격했지요. 난 의원총회에서 ‘여기서 미군이 나간다면 제일 먼저 보따리 싸서 나갈 사람들이 당신들이다. 나라는 망해가는데 정권만 잡으면 되느냐. 야당은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거다. 로열 오퍼지션(Royal Opposition), 충성스러운 야당이 돼야 한다. 안보는 초당적 입장에서 지켜야 한다. 정치적 야심 때문에 나를 사쿠라로 몬다면 난 명예스러운 사쿠라가 되겠다’고 했죠. 그게 내가 평생 주장해 온 중도통합론이에요.”



 - 그 일로 79년 신민당 대표 경선에서 떨어지는 ‘정치적 손해’를 봤는데요.



 “당수 한 번 했으면 그만둬야지 영원히 할 순 없지요. 그렇지만 내가 당수로 치른 10대 선거 때(78년) 여당인 공화당(31.7%)보다 총 득표율에서 신민당(32.8%)이 1.1%를 더 받았어요. 중도통합론이 국민적으로 호응을 받은 산증거라고 생각해요.”



 이 위원장은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반대, 직선제를 주장하던 양김(YS·DJ)과 결별한다. 그는 이듬해 치러진 총선에서 DJ가 이끌던 평화민주당의 황색바람에 쓸려 고향인 전주에서 낙선, 정계를 떠난다.



 - 대통령 직선제에 반대한 이유는 뭔가요.



 “대통령 직선제를 해서 서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고 분열하는 정치, 승자가 모든 걸 다 갖는 승자독식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난 책임정치를 강조했거든요. 내각제는 경상도 총리도 한 번 하고 전라도 총리도 하고, 돌아가면서 하고 자기 당이 잘못하면 책임지고 물러나는 거예요. 난 내각제로 운영됐던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의 2공화국 정부 정신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어요.”



 - YS·DJ는 한 번씩 대통령을 했는데, 아쉬움은 없습니까.



 “지조와 명분을 꺾고 현실과 타협해서 했으면 나도 (대통령) 한 번 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선비는 현실에 적응해 어느 정권·정파와 적당히 타협하고 나눠 먹는 걸 못해요. 그렇지만 청백리 집안에서 나서 흠 잡힐 게 없이 살았고 내 주변에 잡혀간 사람, 부정해서 걸린 사람 없으니 후회는 없어요.”



 중·고교 시절과 청년기, 그는 반일→반탁·반공→반군정운동으로 이어지는 투쟁적 삶을 살았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와선 권력 장악을 위한 극한 투쟁과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스스로를 어떤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이랬다.



 “난 정치는 낙제생이오. 정치가가 못 돼요. 선비정신으로 살았달까요. 선비는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청휘청 휠 수가 없어요.”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영상=김성룡 기자







[S BOX] 만능 스포츠맨, 꾸준한 운동 - 92세 나이에도 근육 불끈



이철승 위원장은 건강 관리의 달인이다. 인터뷰 도중 오른팔을 굽혀 번쩍 들어올리자 양복 상의 위로 불끈 근육질이 움찔하는 게 보일 정도였다. 우리 나이로 올해 92세. 요즘도 1주일에 세 번 이상 헬스클럽에 나가 운동하는데 운동을 빼먹은 날은 자동차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 부족한 운동량을 보충한다고 한다.



 이 위원장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자신이 이름 붙인 X.D.R.시스템에 있다. X는 Exercise(운동), D는 Diet(음식 조절), R은 Rest(휴식)에서 따왔다. 그는 “건강에 필요한 걸 골고루 균형 있게 먹고, 먹은 만큼 운동하고, 운동한 만큼 휴식을 취해야 한다”며 “그러나 어느 하나도 과해선 안 되고 세 가지가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잘 먹으면 건강하고 못 먹으면 건강을 잃지만 잘 먹는다고 아무거나 먹어선 안 된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은 안 먹는 게 잘 먹는 것”이라고 했다.



 역도연맹이사장·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이 위원장은 전주북중 시절부터 축구·야구·농구·역도·평행봉·검도 등 여러 운동에 만능한 스포츠맨이었다. 자연히 주변에 운동선수 친구가 많았다. 그는 “운동선수들이 체력이 좋다 보니 대야에다 술을 마실 정도로 잘 마셨는데 현역에서 물러난 뒤 자기 관리를 안 한 친구들이 일찍 저세상으로 가는 걸 많이 봤다”며 자신에게 맞는 건강법을 가져야 한다고 권했다.



 그는 요즘의 자신을 ‘2평(平)주의자’라고 소개했다. “1평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관전하는 것이고, 2평은 통일이 돼 평양에 가서 냉면 한 그릇 먹는 것”이라며 “건강 관리를 잘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으냐”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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