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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홍합 한 쪽에도 철학이 한가득

엘불리의 철학자

장 폴 주아리 지음

미슐랭 최고 등급 스페인 ‘엘불리’
1년 중 6개월은 문닫고 메뉴 개발
『나의 밥 이야기』엔 우리 밥상 매력
떡볶이에도 생명의 이야기 담겨

정기헌 옮김, 함께읽는책

240쪽, 2만1000원



나의 밥 이야기

김석신 지음

궁리, 272쪽, 1만5000원




이런 레스토랑이 있다. 1년에 6개월은 문을 닫는다. 영업 중인 달에도 저녁에만 문을 열어 하루 50여 명의 손님만 받는다. 매년 250만 명 정도가 이 식당에 예약전화를 걸지만, 그 중 기회를 얻는 사람은 8000여 명뿐. 손님은 메뉴를 선택할 수 없고, 셰프가 쉬는 동안 개발한 메뉴가 일괄적으로 제공된다. 작은 접시에 40여 가지 요리가 담겨 나오는 저녁식사의 평균 가격은 약 250유로(34만원). 전 세계 미식가들을 애태우는 이곳은 스페인 카탈루냐주 크레우스곶의 외딴 해변에 숨어있는 레스토랑 ‘엘불리(elBulli)’다.



엘불리의 셰프 페란 아드리아. [사진 프란세스크 기야메]
 세계적인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14년간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았고, 영국 잡지 ‘레스토랑’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식당에 5차례 이름을 올린 ‘엘불리’. 무엇이 그렇게 특별한 걸까. 프랑스 주간지 ‘레볼뤼시옹’의 편집장을 지낸 철학자 장 폴 주아리는 운이 좋게도 1995년부터 거의 매년 엘불리에서 식사를 하며 이곳의 명성을 만들어낸 셰프 페란 아드리아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러면서 슬슬 ‘직업병’이 발동한다. 『엘불리의 철학자』는 엘불리의 음식을 맛보며 새로운 세상을 만난 저자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책이다. “먹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는 과연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많은 철학자들은 먹는다는 행위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식욕에 굴복하는 것을 ‘저열한 감각적 삶’이라 봤고, 쾌락을 중시한 에피쿠로스 학파조차 ‘영혼의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라 여겼다. 저자는 아드리아의 요리가 단순한 식욕의 해결이 아닌 영혼을 고양 시키는 예술적 행위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칸트의 미학이론을 빌려 온다. 칸트는 독창성과 보편성, 대상의 ‘재현’을 통해 표현된 아름다움, 감각을 넘어 자아와 세계의 심화로 이어지는 오성(悟性)의 확장 등을 예술의 조건이라 말한다.



엘불리의 요리들. 위쪽부터 홍합과 회향 젤리(1994), 타피에스(스페인 화가)에게 바치는 오마주(2004), 멜론 캐비아(2003), 딸기·누가·파인애플 모자이크(2001), 딸기 메렝게 니트로와 생크림(2004). [사진 프란세스크 기야메]
 저자가 보기에 엘불리의 셰프 아드리아의 요리는 이 모든 요소를 만족시키는 예술작품이다. 그의 음식은 위대한 미술작품이나 교향곡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준다. 손님들에게 서빙된 접시엔 올리브 몇 알이 놓여 있다. ‘어, 단순한 요리네’라며 올리브를 입에 넣은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압착 올리브즙을 동그랗게 올리브 모양으로 굳혀, 씹는 순간 입 안에서 액체가 분출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에 마늘을 곁들이는 식으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은 기본. 철갑상어 그림이 그려진 캐비어통에 멜론즙을 굳힌 알갱이가 들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반전’을 시도한다. 저자에 따르면, 재료의 원래 형태를 해체해 새로운 모습으로 내놓는 엘불리의 요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 자크 데리다의 ‘해체’ ‘재구성’을 식탁 위에 구현한 것이기도 하다. 아드리아의 이런 시도를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 등으로 부르며 인공적이라 공격하는 이들도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음식들은 마치 자연의 산물인 양 우리의 영혼과 교감한다”며 반박한다.



 『엘불리의 철학자』에는 어려운 이름의 지중해 요리가 사진작가 프란세스크 기야메의 환상적인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가스파초 랑구스틴, 푸아그라 타탱, 캐러멜 메추리알, 흰콩으로 만든 거품을 천연 성게 가시와 함께 내놓은 에스푸마 등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지만 현재는(어쩌면 앞으로도) 맛볼 수 없는 음식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페란 아드리아가 새로운 창조를 위해 2011년 7월 30일 엘불리의 잠정적인 폐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엘불리는 현재까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다시 영업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때의 메뉴는 이 책에 등장한 요리를 넘어선 새로운 ‘예술품’일 가능성이 높다.



 화려한 엘불리의 요리도 좋지만 『나의 밥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박한 우리 밥상의 매력도 만만치 않다. 김석신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우리는 왜 먹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책에는 단순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예를 들면 세상의 많은 먹을거리 중 ‘맛·영양·안전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춘 것이 ‘음식’이 된다. 한 인간의 평생을 80년이라 가정하고 하루 세 끼를 한해 365일 먹는다면 우리는 일생동안 8만7600 끼니를 먹는다. 한 끼에 5000원이 든다면 약 4억4000만원의 돈을 먹는데 쓰는 셈이다. 이처럼 인생의 중요하고 비싼 행위를 풍요의 시대 인간들은 ‘생각 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인들이 유세할 때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이유, 여자와 남자의 식성 차이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명과 음식, 공동체와 음식, 돈과 음식 등의 주제를 파헤친다. 엄마표 병어초무침과 약수로 지은 절밥, 유학시절 먹었던 햄버거 등 저자가 인생에서 만난 다양한 음식 이야기도 맛깔나게 펼쳐진다. 결국 저자의 끈질긴 탐구가 도달한 곳은 ‘음식윤리(food ethics)’의 중요성이다. 음식을 대할 때 그 음식도 또 다른 ‘생명’이며 다른 생명의 노력이 배어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그래서 늘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S BOX] 엘불리 최후의 만찬엔 산토끼 등심, 꽃향기 솜사탕 …



장기간 휴업에 들어가기 직전인 2011년 7월 28일 목요일, 엘불리에서는 특별한 손님들을 위한 마지막 만찬이 열렸다. 이날 페란 아드리아는 50개의 요리를 선보였다. 산토끼 등심, 올리브 스페리코(재료의 즙을 젤리형태로 굳힌 음식), 닭 즙 크로켓, 강렬한 꽃향기가 담긴 솜사탕, 갈릭 오일 아몬드 아이스크림 등 이날 메뉴에서 아드리아는 요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엘불리의 철학자』 저자 장 폴 주아리는 그날 저녁식사에서 발견한 네 가지 새로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식사 순서의 새로운 리듬 발명. 아드리아는 해산물과 말린 과일, 가벼운 질감의 육류를 먼저 서빙하고 이어 다양한 고기요리를 내보냈다. 이는 전채로 시작해 디저트로 끝나는 전통적인 순서를 해체해 그가 창조한 스타일이다.



 ② 리듬을 강화하는 세 개의 시퀀스. ‘일본 시퀀스’에서 다섯 개의 요리를 내놓았고, ‘고기 시퀀스’에서는 토끼고기의 다양한 변종을 보여줬다.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는 바닐라와 복숭아, 딸기 등의 과일향으로 채웠다.



 ③ 시퀀스 사이에 부여된 쉼표. 아드리아는 주요 요리 사이에 바삭한 질감이 포함된 요리 12개를 넣어 리듬을 부여했다. 얇은 막이나 캐러멜칩 형태로 만들어진 이런 요리는 음식의 텍스처와 맛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④ 음식과 음료의 궁합. 남미산 찻잎을 볶은 모히토, 당근 주스와 아몬드 워터 등 이날 총 여덟 가지 음료를 제공했는데, 이는 그 어떤 와인보다 전체 요리와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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