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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두 번째 사춘기를 건너다





[여성중앙] 진중권의 여자 오디세이 ③ 최강희 진중권 씨의 Q&A 인터뷰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낮았던 아이는 연기를 재능이 아니라 운명으로 알고, 자기가 누리는 모든 게 제 것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살아왔다. 패치 코리아 운동도 결국 그런 자기의 모습을 극복하고 싶은 심리적 기제가 아닐까? 차 안에 10시간 동안 웅크리고 앉아 울던 상처 받은 소녀는 어떤 ‘체험’을 통해 이제 달라지려 한다.



낡은 여관을 카페와 스튜디오로 개조한 묘한 공간. 그녀가 드레스 같은 느낌의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유리 상자에서 튀어나온 인형 같은 느낌.



듣자 하니 최근 갑상샘 저하증으로 인해 신체가 부어, 한동안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고 한다. 사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많은 걱정을 했다. 논객의 미덕은 이른바 촌철살인, 즉 단 한마디의 말로 사람을 죽이는 재능인데, 그녀는 막말에 상처 받은 이들을 치유하여 살리는 활동을 하고 있단다. 죽이는 자가 살리는 자를 인터뷰하는 다소 어색한 상황. 화보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그녀와 다소 찔리는 심정으로 마주 앉았다.



Q : 학창 시절에는 어떤 아이였나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존감도 낮고 존재감도 없었어요. 영화 ‘여고괴담’의 귀신 정도로 생각하시면 돼요. 학교를 많이 못 갔고요. 학교 앞까지는 가지만 들어가지 않는 거죠.



Q : 학교 안 가고 뭘 했는지 궁금한데요



유령처럼 떠돌았어요. 시간이 너무 많게 느껴지는데 이 지루한 시간을 언제 다 사용할지 끔찍했어요. 위험한 행동들도 혼자서 많이 해봤고요. 예를 들면 아무 차나 얻어 타는 거죠. “어디까지 가세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목적지가 같으면 그 차에 올라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 났어도 났어야 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감사해요.



Q : 주위에서 연기를 해보라고 권유하지는 않던가요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저를 예쁘다고 했어요. 결국은 그 친구가 추천했어요. ‘존슨즈 베이비 로션’에서 하는 행사에 제 사진을 보내줬는데 거기서 입선했어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사진만 동그랗게 잘라져서 잡지에 나오더군요. 그다음에 ‘레모나’ 행사에는 제가 직접 응모했어요. ‘상큼상’을 받았는데 역시 아무 일 없었어요(웃음).



Q : 그럼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미스 레모나’로 뽑힌 후 보조 출연자로 일할 기회가 생겼어요. 하지만 재미없었고, 굉장히 긴 시간을 또다시 아무 존재감 없이 보냈죠. 그러던 어느 날 잃어버린 수첩을 찾으러 간 곳이 우연히 오디션 자리더군요. 글 쓰는 걸 좋아해 틈틈이 다이어리를 쓰곤 했는데, 이미 제 다이어리를 방송국 사람들이 다 돌려 읽었더라고요. 엄청 울었어요. 한데 공교롭게도 그 오디션에서 뽑으려는 캐릭터가 엄청 잘 울면 되는 역할이었나 봐요. 그래서 캐스팅됐죠. 다음다음 날부터 촬영을 시작했어요.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어른들은 몰라요’의 ‘가을날의 동화’ 편. 욕을 많이 먹었죠. 연기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다고. 그렇게 욕을 먹다가 어떤 장면에서 그냥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연기를 했는데, 감독님이 기가 막힌다며 칭찬을 해주셨어요. 그 순간 인생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 느낌이랄까.



Q : 정말 이 길이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건 언제인가요



연기가 내 길이라는 확신을 해본 적은 딱히 없어요. 그저 운명이어서 내 길인가 보다 해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일이 주어졌고, 그때 ‘이건 내 운명이다. 신이 주신 내 역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데 수입이 생겼으니까요. 그저 운명적으로 아빠와 바통 터치를 했다는 생각뿐이었어요.



Q : 그럼 연기 공부는 어떻게 했었는지



친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권면’해주면 잘 새겨듣는 편인데, 저를 데뷔시켜주셨던 송지나 작가가 제게 책을 읽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소설을 카피했던 것 같아요. 소설 속 캐릭터의 버릇이라든지 제스처라든지. 예를 들어 ‘그녀가 무릎에 손을 장갑처럼 올려놓았다’는 표현이 있으면 밑줄 쳐놓고 따라 해보는 식으로요.



Q : 어떤 소설들이었나요



무라카미 하루키의『상실의 시대』로 시작했어요. 그걸 카피한 역할이 ‘행복한 장의사’의 소화 역이에요. 소설에 나오는 나오코의 역을 해보고 싶어서 참고했죠. 몇 장면 안 나오지만 외로워서 죽을 것만 같은 캐릭터거든요. 그걸 카피해서 해봤는데 크게 잘해내진 못했어도 제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지기는 했던 것 같아요.



Q : 소설 속의 은유를 연기로 변형시키려면 상상력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저만의 재미를 느꼈어요. 누가 누굴 흉내 냈다고 할 것도 없죠. 이건 내가 글자를 연기로 옮기는 거니까. 예를 들어 소설 속에서 어떤 여자가 남자 친구랑 앉아 있을 때 아무도 모르게 남자 친구의 안경을 닦아주며 애정 표현을 한다는 구절이 있으면, 지문에 없어도 해보고 싶다고 표시를 해놓는 거죠. 그게 저만의 무기라 해야 하나, 자신감이라 해야 하나?



Q : 시와 산문의 정서적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아요.



연기만이 아니라 일상적 얘기도 문학적 수사로 표현하거든요 네, 맞아요. 써놓고 나면 나중에는 이게 내 얘긴지 내 친구 얘긴지…. 어떨 때는 남의 얘기마저 전부 제 감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웃음).



Q : 연기가 즐거운가요



아뇨. 줄곧 즐겁지 않았어요. 최악이에요. 항상 최악이에요. 영화가 개봉이 되어 칭찬을 받을 때 잠시 좋을 뿐이지, 그게 나오기까지는 최악이죠. 저는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최근 한 1년 반 정도 쉬었는데, 그 전까지 저는 최악을 살았었어요. 그래서 ‘7급 공무원’ 이후 쉬게 된 거죠. 물론 그 후에 영화 ‘미나 문방구’가 개봉은 했지만, 그 작업은 그 이전에 이미 끝난 것이었고요.



Q :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화 ‘애자’요. 촬영하면서 정말 죽고 싶었거든요. 그 캐릭터는 저랑 맞는 부분도 많지 않고, 책에서도 별로 보지 못했고, 롤 모델이 될 만한 연기자도 딱히 없었어요. 보통 제가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은 책과 실존하는 비슷한 캐릭터의 조합이거든요. 예를 들어 영화 ‘쩨쩨한 로맨스’의 주인공은 배우 류현경 그리고 길에 돌아다니는 유기견하고 비슷한 면이 있어요. 유기견의 습성이 맞아도 상관하지 않고 또다시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잖아요. 유기견의 그런 뻔뻔함과 류현경의 귀엽고 저돌적인 느낌. 그러면 저는 류현경 하고 유기견을 연기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애자’는 참고할 만한 것이 아예 없었어요.



Q : 그러면 어떻게 연기를 했나요



어떻게 연기했는지 생각이 안 나요. 새벽이었는데, 2시간 안에 촬영이 끝나야 하는 신이 있었어요. 엄마랑 울면서 싸우는 장면인데 감정이 안 나왔어요. 결국 감독님이 저녁 때 다시 찍자고 했어요. 다시 어스름이 내릴 때까지 10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는데 차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감정이 사라질까 봐 계속 울었어요. ‘나 때문에 이 캐릭터가 엉망이 되어버리는구나’ ‘이거 끝나면 나 연기 안 해야지’ 하면서요. 하지만 결과에는 만족해요(웃음).



Q : 연기가 인상적이었던 동료가 있었다면요



장영남씨가 매력적이었어요. 일단 저처럼 실수를 복기하지 않아요. 아주 심플하게 연기를 잘해내세요. 그렇다고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설득이 된 상태에서 하기 때문에 연기가 자신감 있게 나와요. 눈물을 흘려야 되는 시간에 눈물이 나오지 않아도 감독이 ‘괜찮아요’ 하면 금방 웃어버리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Q : 애쓰는 쪽이라고 했는데, 애쓰지 않고도 연기가 나오는 사람을 보면 어때요



부럽죠. 그래도 제가 계속 애를 쓰는 것은 애를 쓴 만큼 대가가 나오기 때문이에요. 정성은 배신하지 않거든요. 내가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서는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았어요.



매일 새벽 기도 나가는 일상, 최강희의 어제와 다른 오늘



Q : 그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캐릭터와 본인의 실제 성격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영화에서는 똑 떨어지고 밝은 면을 많이 보여줬지만 실제로는 제게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할 거예요. 저는 멍하고 우울하고, 이상한 일에 혼자서 몰두하는, 문득 보면 웃기는 타입이니까요. 그럼에도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 안에 조금씩 제가 들어가긴 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의 저는 ‘여고괴담’에 들어 있고, ‘커피프린스’ 이윤정 감독님이랑 저를 데뷔시켜주신 홍진아 작가가 참여했던 주말극 ‘떨리는 가슴’의 경우는 언니가 저를 생각하며 캐릭터를 썼다고 들었어요.



Q : ‘4차원 소녀’라는 별명이 있잖아요. 일상에서도 당돌한 말로 사람들의 허를 찌르곤 하나요



누군가를 겨냥하여 당돌하게 말을 던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대화를 할 뿐이죠. 그런데 제가 그냥 한 말에 상대방이 당황해하는 경우는 많았던 것 같아요.



Q : 또 하나 ‘최강희’라는 이름엔 ‘동안’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데,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연기의 배역을 제약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그건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타이틀도 이제는 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자연히 바뀔 거라 생각해요. 그동안 ‘최강희’라는 아바타를 잘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전의 이미지들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것들에 더해 또 하나의 나를 갖고 싶어요.



Q : 다른 연기자와 차별화되는 최강희만의 특성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요



공을 들이는 것. 저는 연기하면서 누구보다 공을 많이 들이는 것 같아요. 특히 밤을 새게 한다거나 갑자기 무슨 변동이 생겨도 촬영장에서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불만을 얘기해본 적도 별로 없고요. 그냥 잘하고 싶을 뿐이에요. ‘기가 막히다’라는 칭찬을 또다시 듣고 싶어서. 그게 저의 장점인 것 같아요.



Q : 여러 대본 중에서 ‘이건 내가 하고 싶다’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뭔지 궁금해요



제 기준은 명확해요. 대본을 다 읽으면 하는 거예요. 제가 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진도가 안 나가거나 이해가 안 되면 책장을 못 넘겨요. 교과서 읽을 때처럼 하품이 나면 그 채로 접혀서 못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끝까지 읽은 대본은 두 시간 안에 전화해서 바로 하겠다고 해요.



Q : 그렇게 하품이 나서 접었는데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없었나요



있죠. 저는 하품 났는데 막 터지죠. 하지만 그게 뭔지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읽다 만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모든 캐릭터가 머릿속에서 막 섞이고 주인공 이름도 생각이 안 나요.



Q : 내가 버린 영화가 크게 터지면 후회되지 않나요



아뇨. 그런 영화는 극장에 보러 가서도 자요. 거기서도 반응이 안 오는 거예요. ‘이게 왜 잘 되지?’ 싶고요(웃음). 그냥 저만의 기준이 있나 봐요.



Q : 앞으로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예전에는 허진호 감독님과 해보고 싶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오디션에도 합격했었어요. 주차 단속원 의상을 맞추려고 치수도 쟀고요. 하지만 결국 한석규, 심은하 선배님이 하게 됐죠. 개봉 첫날 작품을 보는데 심은하씨가 또 다른 심은하씨 같은 거예요. 그다음부터 허진호 감독님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봄날은 간다’를 봤는데 이영애씨 역시 제가 알던 이영애씨가 아닌 거예요. 나도 한 번 바뀌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김태용 감독님. ‘만추’를 보며 경이로워서 저 프레임 안에 들어가 감독님 디렉션을 한 번만 받아봤으면 싶었죠. 메이킹 필름을 봤는데 탕웨이가 뛰어오는 장면이 있었어요. 연기를 반복하는데도 지쳐보이지가 않고 원하는 지점이 있어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제가 꿈꾸는 최고의 지점은 ‘배우, 감독의 재능과 사랑에 빠지다’ ‘감독, 배우의 재능과 사랑에 빠지다’예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스칼렛 요한슨과 작업한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팸플릿에 적혀 있던 한 줄이었어요. 제 판타지이자 꿈이에요.



Q : 최근 열린 한복 쇼에서 한복 입은 사진을 봤습니다. 사극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여태까지는 ‘안 해!’였어요. 그런데 쉬면서 뭔가를 뚫고 나가는 재미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용기가 차올랐어요. 제 스스로가 어떤 모습을 해도 반가울 것 같아요. 눈동자가 갈색이고 어깨도 약간 있고 해서, 특히 머리카락이 노란색일 때는 한복이 안 어울린다는 얘기를 좀 들었어요. 외국인이 장기 자랑 나온 느낌이라고. 그런데 얼마 전에 아는 분의 요청으로 한복 패션쇼에 섰어요. 2014 한민족 디아스포라 세계선교대회 한복쇼였는데 거의 조선의 국모급 한복을 입었죠. 궁중 한복. 쇳덩어리 같은 전통 가채를 머리에 쓰고. 그날 거울을 보면서 때가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조선의 국모니라.” 하하하.



Q : 멜로부터 액션까지 장르 취향이라는 게 있을 텐데, 특별히 해보고 싶은 장르는 뭔가요



액션은 여태껏 잘 소화해본 적이 없어서요. 제가 지금 체력을 키우고 있는데 잘되면 마흔 중반쯤 ‘킬 빌’ 같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찍고 날아 차고(웃음).



Q : 영화를 보는 취향은 어떤가요



전에는 소수가 좋아하는 취향을 즐겨봤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음악도 인디 취향이었고 옷도 보헤미안 스타일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모던한 것을 더 많이 찾아요. 할리우드식의 따뜻하고 건강한 생각을 심어주는 영화를 선호하고요. 음악도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자연의 소리가 배경음이 될 때 좋아요.



Q : 취향이 왜 변했을까요



많이 지쳤었어요. 말에 대한 염증도 심하게 느꼈고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비난이라든지 뒷말? 공기? 게다가 제 캐릭터도 더 이상 나올 게 없다고 느껴서 아예 일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분간 쉴 결심을 했는데 쉬는 동안 내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모든 게 바뀌었어요. 밤 시간을 좋아했는데 이젠 새벽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다니고 있으니까요. 종교의 영향이 컸죠. 원래는 무늬만 기독교인이었지만 이제는 정상 수위를 넘어선 신도가 되었어요. 하하하.



Q : 신인 연기자 중 누군가는 최강희씨를 본보기로 삼고 있을 텐데,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우리나라에 지금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도 그래요. 윗사람, 즉 권위자를 바꾸려고 불만을 늘어놓기만 해요. 이런 현상은 일상에서도, 촬영장에서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에요. 하지만 환경은 개인이 바꾸기에 너무 큰 것이죠. 스스로 바뀌고 바뀌고 바뀌다 보면 내가 채워지고, 그때 오히려 바꿀 수 있는 게 더 많아져요. 그게 다치지 않고 환경을 뚫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줄 거라고 믿고요.



Q : 글쓰기는 어떤가요?



과거에 책도 내곤 했는데 원래 쉬면서『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2권을 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글은 어떻게 쓰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고는 1권에 싣고 남은 제 일기를 봤어요. 써놓은 글들 중에서 4분의 1만 냈으니까 또 보석 같은 4분의 3이 남았겠지 했는데, 다 별로인 거예요. 글로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구나 싶었죠.



Q :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적도 있죠. 여행을 좋아하나요



언젠가 지금과 같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던 시절에 김C의 권유로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Heima’ DVD를 보게 됐어요. 아침저녁으로 완전히 빠져서 봤죠. 그러다 보니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사진은 거기 가서 찍으면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일단 떠났죠. 그곳은 태초의 지구, 혹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꿈 같아요. 친한 친구가 동행해줬는데 저 혼자서는 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서있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만큼 아름답고 정말정말 좋았어요.



Q : 종교에 심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어느 날 밤에 내일 새벽 기도를 하러 가고 싶다는 기도를 하고 잤는데, 그때부터 매일 5시 15분에 눈이 떠지는 거예요. 놀라서 눈을 뜨면 5시 15분이고, 고양이가 저를 밟고 지나가서 눈을 떠보면 5시 15분이고. 보통은 아침 7시에 잠이 드는 사람인데 말이에요. 그렇게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새벽 기도를 나가고 있어요. 교회 나가라는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독교는 체험 신앙이라고 하잖아요. 체험을 한 거죠. 매일 새 하루를 갖게 되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밤의 잠이 소중해요. 예전에는 목사님 설교 시간에 딴생각을 했는데, 어떤 예배를 계기로 달라졌어요. 주일 예배였는데, 성경이 화가 날 만큼 듣고 싶지 않았던 제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저희 목사님이 성도 비위를 맞추는 편이 아니라 성도를 화나게 하는 쪽, 그러니까 할 말은 하시는 성격인데 끝까지 듣고 있다 보니 화가 나서 눈물까지 나는 거예요. 회개를 했죠.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Q : 요즘 기도 제목은 뭔가요



대한민국이요.



Q : 전도는 많이 하고 있나요



저 올해 전도왕 됐어요(웃음).



“세상의 모든 상처, 이제 그만 덮어주세요”



Q : 최근에는 ‘패치 코리아’ 운동에 푹 빠져 있다고요



친구랑 헤어질 때 친구가 우울해하면 무서웠어요. 친구가 죽는 것도 아닌데. 오버하는 것 같아 연락도 못 하다가 너무 불안해 결국 그 집 앞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친구가 “왜?” 하고 나오면 난처해져서 집에 돌아오곤 했었어요. 왜 대한민국이 이렇게 아플까. 왜 우리나라는 무조건 비난만 있고, 그 비난 속에서 나는 왜 슬퍼해야 하나. 그러다 이 운동을 알게 된 거예요. ‘패치’는 ‘덮다’ 혹은 ‘상처에 붙이는 밴드’ 같은 의미예요. 홍보 영상을 보고 함께하게 됐어요. 홍보 대사 같은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사진 찍고 사인해주는 수준을 넘어 직접 참여하고 싶었어요.



최근에는 어린이들에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강의하고 있어요. 상대의 아픈 부분을 바라봐주고, 덮을 수 있다면 덮어주고, 덮을 수 없다면 못 본 걸로 하자. 얘가 나한테 상처를 줘도 한 번쯤 넘어가주고, 그 아이에게 숨겨진 아픈 손가락을 봐주자는 운동이에요. 저도 어릴 때 자아가 구겨져 있었던 터라 제일 큰 목표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패치 하는 거예요. 두 번째는 가족 관계. 멀쩡해 보이지만 어긋난 가족 관계를 패치 하고 싶어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못 보는 상처가 있거든요. 가족끼리는 상처를 말하지 않으니까.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 패치 되는 그날까지 ‘패치 코리아’ 활동을 하고 싶어요.



Q :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지 궁금해요



상대를 죽이는 말을 하지 말자. 과거 한 감독님이 제게 ‘기가 막히게 연기를 잘했다’고 했던 말이 제 배우 인생에 빛이 되었던 것처럼 죽을 사람이 말 한마디에 살 지 누가 알겠어요. 사소한 말이라고 해도요. 저는 제가 지금 여러 명을 살리고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초등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는 제가 어렸을 때 상처 받았던 말들을 예로 들어요. 또 이렇게 엄지손가락을 접어 보여주면서, 엄마한테는 어떤 손가락이 숨겨져 있을까 하고 물어요. 손가락 네 개를 보여주면서 “이게 몇 개예요? 4개? 아니에요. 5개. 당신이 보지 못하는 한 개가 더 있어요. 이제 그만 덮어주세요. 막말 퇴치. 패치 코리아.” 애들이 막 울고 그래요.



Q : 최근 군부대 강연도 다녀왔는데 반응이 어땠나요



처음에는 연예인으로 보더라고요. 그러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한 느낌이 있었고 진짜 좋았어요.



Q : ‘좋은 사람’ ‘선행’ ‘착함’에 대한 의지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약간의 강박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그렇다면 최강희가 생각하는 ‘착함’은 무엇인가요



그런 수식어가 주렁주렁 달려 있으니까 좀 창피해요. 제가 거저 받은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찔끔찔끔 해댔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저절로 된 게 너무 많아서 ‘이건 뭔가 있다’고 생각했죠. 내가 이렇게 복을 받는데 내 것 같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패치 코리아’ 운동을 하면서 이제야 내가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서로 만난 느낌이 들어요.



Q : 문득 든 생각인데, 혹시 이런 일들을 하게 된 계기가 그동안 받은 상처나 트라우마 때문은 아닌가요



꼬집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어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제게 상처가 되었던 것 같아요. 뭐든 안 좋은 것은 내 것이 될 것 같았어요. 예를 들어 사랑도 못 받을 것 같고. 나는 우연히 잘 풀렸지만, 그럴 자격도 안 되는데 잘된 것 같고 많은 것들이 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게 스스로에게 미안한데 지금은 가장 잘했을 때의 내가 나인 것 같아요. 패치 되고 있어요.



Q : 이런 삶의 변화가 연기에도 영향을 미칠까요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으니까 앞으로는 연기를 즐기며 하게 되지 않을까요?



Q : 계속 연기를 하겠죠



그건 모르겠어요. 언제든 무엇이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해야 할 일을 하는 재미를 통해 굉장한 기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이 운동(패치 코리아)은 계속할 것 같아요.



Q : 사랑 이야기도 좀 해볼까요.



연애할 때는 어떤 편인가요 성숙한 사랑을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지난 사랑에는 아쉬움이 없어요. 정말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사랑은 관심이 없는데 나타난다면 굳이 막지도 않을 것 같아요. 이제는 제 속이 찼기 때문에 괜찮아요. 이상형은 따로 없어요. 지금으로선 제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해요. 서로를 놓지 않고 끝까지 상대를 패치 할 수 있는. 패치는 순간에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Q : 남들이 퇴근할 때 열고 출근할 때 문을 닫는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말한 것을 봤는데 그 꿈은 아직 유효한가요



어렸을 때 이야기예요. 이제는 새벽 예배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엔 자야 해요(웃음). 그런데 그렇게 열려 있는 곳을 만들고 싶긴 해요. 포트에 아주 싼 커피를 담아두고 스스로 따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무인 카페 같은 곳이요.



Q : 30년 후의 최강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음… 그냥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거림, 풍자와 위트를 뒤섞은 신랄한 문장 등 백 가지 무기로 현상을 해석하는 우리나라 톱 논객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비행기 조종이 취미이고, 고양이 루비를 애지중지하는 감성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중앙에서는 ‘시대의 여자’들을 만나 섹시한 인터뷰를 펼쳐 보인다. 날 선 독설과 ‘루비 애비’ 특유의 감성을 넘나드는 인간 해석이 관전 포인트다. woman.joinsmsn.com





기획= 조영재 여성중앙 기자, 글=진중권, 사진=박지홍(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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