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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54> 전남 순천 순천만 갈대길

이달 초순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탐방로의 모습. 아직 철이 일러 갈대가 풍성하지는 않다. 그래도 가을 정취는 물씬 풍긴다.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갯벌 일몰 보면 시심이 절로

생태여행의 본령은 사실 걷기여행이다. 자연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이 생태여행이라면, 동력의 지원 없이 맨몸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걷기여행은 생태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남 순천시는 대한민국 생태 수도를 표방한다. 대한민국 생태관광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순천만을 품고 있어서다. 하여 생태 수도 순천을 여행하는 방법은 걷기여행이 정답일 수밖에 없다. 순천시 구석구석을 잇는 남도 삼백 리 길이 조성됐고, 그 1코스가 순천만 갈대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식이었다. 순천 여행은, 순천만 갈대밭을 걷고 난 다음에 시작해야 옳기 때문이다. 유난히 하늘이 높았던 가을날, 아직은 채 쪽빛이 가시지 않은 갈대 사이를 걷고 왔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갯마을 와온의 해 질 녘 풍경.


순천만의 맨얼굴



순천만 갈대길은 순천만을 한 바퀴 도는 16㎞ 길이의 트레일이다. 내륙 깊이 파고 들어온 순천만을 끼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돈다. 여정으로 보면 시계 방향으로 걷는 게 맞다. 일출 명소인 화포에서 시작해 제방을 따라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에 들어간 뒤 일몰이 고운 와온에서 끝내는 게 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이정표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여기엔 트레일을 조성한 순천시의 고민이 숨어 있다. 순천시 구석구석을 헤집는 11개 코스 223㎞ 길이의 남도 삼백 리 길이 순천만 갈대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순천만 갈대길이 끝나는 화포에서 남도 삼백 리 길 2코스 ‘꽃산 너머 동화사길’이 이어진다. 와온은 순천 아래 여수와 지척이어서 순천 내륙으로 향하는 길을 내기가 불가능했다.



순천만 갈대길만 걸을 요량이라면, 이정표 반대 방향으로 걷기를 권한다. 화포 일출까지는 몰라도 와온 일몰은 놓치기가 아까워서다. 순천시 남쪽 끄트머리의 작은 갯마을 와온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몰 명소다. 김춘추·곽재구·나희덕 등 내로라하는 시인이 와온 갯벌에 몸을 누이는 저녁 해를 보고 시를 지었다.



‘저녁마다 일몰을 보고 살아온/ 와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떨기꽃을 꺾어 바치지 않아도/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번은/ 짠물과 뻘흙에 몸을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나희덕, ‘와온에서’ 부분)



길을 걷기 전에는 솔직히 오해도 있었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의 갈대밭은 이미 국내 생태여행의 성지로 통한다. 굳이 트레일을 조성하지 않아도 순천만에 들어오면 갈대밭 사이에 난 데크로드를 걸어야 한다. 여기에 이정표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트레일 사업을 벌여 예산을 챙기려는 순천시의 얕은 속셈을 의심하기도 했다. 자료를 보니 순천만 갈대길 조성사업에 2억20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하나 길을 다 걷고 나서 오해를 풀었다. 순천만 갈대길 16㎞ 구간 중에서 자연생태공원은 3.2㎞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순천만 갈대길의 진짜 모습은 자연생태공원 바깥에 있었다. 용산에서 내려와 와온까지 십 리(里) 남짓 이어진 갯벌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마침 썰물이 난 때였다. 자연생태공원에서는 갈대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검은 갯벌이 눈앞에 훤히 펼쳐졌다. 짱뚱어·농게·칠게 등 온갖 갯것이 손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놀았고, 가을이 되어 빨간 물이 오른 칠면초가 드넓은 갯벌을 붉게 물들였다. 순천만의 맨 얼굴이었다.



순천만의 주인은 갈대가 아니라 갯벌이었다. 갯벌이 건강해야 갈대가 무성하고 흑두루미가 내려앉는다는 뻔한 사실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아직 가을이 얕아 갈대가 흐벅지지 않았지만, 아직 추위가 일러 북녘의 흑두루미가 내려오지 않았지만 순천만은 건강한 갯벌이 있어 이미 풍요로웠다.



10월이 가면 닫히는 길



순천만 갈대길을 걷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다. 순천만을 여행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 천혜의 자연환경이 사실은 하늘이 내린 혜택만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긴 세월 숱한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순천만까지 내려가 걸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순천만 갈대길 화포∼자연생태공원 8㎞ 구간은 이른바 제방길이다. 화포에서 길을 시작하면 오른쪽으로 순천만과 갈대밭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드넓은 논이 이어진다. 이 논이 특별하다. 이른바 경관농업지구로 순천시가 관리하는 59㏊ 면적의 무논이다. 겨울이 오면 흑두루미를 비롯한 철새가 이 논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는다. 해마다 30t 분량의 쌀이 철새 먹이로 쓰인다. 모든 비용을 순천시가 감당한다.



순천만의 논은 다른 지역의 논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여기에도 까닭이 있다. 순천만 무논에는 전봇대가 없다. 순천시가 전봇대 282기를 뽑아 버렸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죽은 사고가 나자 순천시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이 논의 벼는 100%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다.



이 논에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비밀은 용산전망대에 올라가야 풀린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란 흑두루미 한 마리가 누런 벼 출렁이는 논 안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흑두루미 아래로 ‘생명의 땅 순천만/ 순천만 정원을 품다’라는 검은색 글자도 보인다. 순천시가 흑미를 심어 조성한 그림과 글씨다.



국내 경관농업의 대표 풍경으로 꼽히는 이 장면은 해마다 10월에만 연출된다. 벼가 익지 않으면 그림과 글씨가 두드러지지 않고, 벼가 익은 뒤에는 베어내기 때문이다. 다음달 초순이면, 그러니까 진짜 흑두루미가 돌아오는 계절이 되면 흑두루미 그림이 사라진다.



전봇대 뽑고 먹이 주는 일 말고도 순천시가 순천만에 기울인 정성은 각별하다. 지난해 입장객 440만여 명을 기록한 순천 국제정원박람회도 알고 보면 순천만을 보호하려는 순천시의 작전이었다. 정원박람회장을 순천시 남쪽 경계에 조성해 도심 남쪽에 있는 순천만까지 도시가 팽창하는 걸 봉쇄했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순천만은 세계적인 생태여행지로 거듭났다. 지난겨울만 해도 흑두루미 854마리가 순천만을 찾았다.



제방길에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길섶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렸고, 갈대와 억새가 어울린 길 너머로 누런 벼가 출렁였다. 언제 걸어도 좋을 법한 이 길에는 그러나 시한이 있다. 다음달 1일부터 내년 2월 말까지 통행이 일절 금지된다. 겨우내 철새가 이 일대에서 보금자리를 틀어서다. 사정이 그렇다면, 기꺼이 비켜줄 일이다. 그 귀한 손님이 먼길 무릅쓰고 찾아오시는데, 길 내주는 게 그리 대수일까. 순천만을 지키려는 순천시의 모습이 든든하다.



● 길 정보=순천만 갈대길은 걷기에 편하다. 전망대가 설치된 용산을 오르내리는 길만 빼면 내내 순천만을 옆에 끼고 걷는다. 16㎞ 길이의 트레일 중에서 걷기에 불편한 구간이 있다. 내년 6월쯤 제방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날 때까지 우명마을에서 장산둑 입구까지 2.1㎞ 구간은 군도 2차선을 따라가야 한다. 찻길이지만 교통량이 많지는 않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suncheonbay.go.kr)과 순천만 정원(scgardens.or.kr)은 입장료를 통합 운영한다. 다시 말해 자연생태공원 입장권으로 순천만 정원도 입장할 수 있다. 어른 5000원 어린이 2000원. 자연생태공원과 순천만 정원까지 5㎞ 구간은 무인궤도차 ‘스카이큐브’가 운행한다. 왕복 5000원. 순천시가 순천만 정원 옆에서 에코촌 유스호스텔(ecochon.suncheon.go.kr)을 운영한다. 국내 최초 한옥형 유스호스텔로 객실 20개가 있다. 2인실 어른 6만원, 학생 5만원. 061-722-0800. 순천만 일대에서 17~19일 순천만 갈대축제가 열린다. 축제 일정 중에서 ‘도심권 맛 탐방’ 프로그램이 흥미롭다. 순천시가 69개 식당을 선정해 축제기간 동안 10% 할인행사를 벌인다. 순천시 관광진흥과 061-749-4222.





‘이달의 추천 길’ 10월의 주제는 ‘단풍·억새·갈대’다. 가을 정취가 흠뻑 묻어나는 트레일 10개가 선정됐다.<표 참조> 이달의 추천 길 상세 내용은 ‘대한민국 걷기여행길 종합안내 포털(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걷기여행길 포털은 전국 540개 트레일 1360여 개 코스의 정보를 구축한 국내 최대의 트레일 포털사이트로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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