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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만 년 해로한 부부 봉우리, 아내 혼자 수많은 사람 맞이하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군데군데에 포탄을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이를 ‘타포니’라 부른다. 마이산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타포니가 발달돼 있다.




마이산 암마이봉 올라보니

전북 진안 마이산의 암마이봉 등산로가 지난 11일 열렸다. 10년 만의 개방이다. 암마이봉 등산은 마이산을 즐기는 최신 여행법이다. 한 시간이면 정상까지 충분히 오른다. 마이산 자락을 굽어보거나, 수마이봉의 도도한 자태를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특권도 따라온다.



암마이봉 정상 오르는 길.
우러르던 봉우리를 발아래 두다



진안의 공기는 달았다. 산에 오른 것처럼 시원하고 청량했다. 기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안은 평균 고도가 380m에 달하는 고원지대입니다. 서울 남산보다 높은 곳에 펼쳐진 평탄한 땅이지요.” 진안군 문화해설사 심태형(52)씨의 설명을 듣고 보니 진안은 여느 산골짜기 첩첩산중과 달랐다. 야트막하고 완만한 구릉이 길쭉길쭉 이어졌다. 그 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주변의 풍경을 압도했다. 고원보다 300m 남짓 더 솟아올랐을 뿐인데도 주변 지대가 완만하다 보니 더 도드라져 보였다.



동쪽에 솟은 봉우리를 수마이봉(680m), 서쪽을 암마이봉(686m)이라고 부른다. 마이산 최고봉인 암마이봉은 서울 청계산(618m)보다 조금 높다. 그렇다고 허투루 볼 산은 아니다. 평균 경사도가 30도에 이른다. 스키장 상급자 코스도 경사 20도를 밑돈다. 기다시피 올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수많은 사람이 암마이봉을 오르내렸다. 워낙 경사가 가팔라 1979년 마이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을 때부터 입산이 금지됐던 수마이봉과는 전혀 다른 팔자였다. 예부터 두 봉우리는 아내와 남편을 상징하는 부부 봉우리로 불렸다. 그 말대로라면 그 옛날부터 오직 아내 혼자 인파의 발끝에 채인 꼴이었다. 딱딱한 암봉에 겨우 뿌리를 박은 암마이봉의 수목이 등산객의 지렛대로 오용됐다. 결국 마이산도립공원을 관리하던 진안군청은 생태계 훼손을 이유로 2004년 10월 암마이봉 등산로를 폐쇄했다.



암마이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수마이봉.


“마이산에는 이 두 봉우리 말고 다른 봉우리도 많습니다. 하지만 암마이봉 입산이 제한되자 도립공원을 찾는 인원이 연간 40만~50만 명씩 줄더라고요. 2003년 130만 명이 마이산을 찾았는데 이듬해 90만 명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현재는 130만 명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개방을 재촉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람도 쉬는데, 산도 그리해야지요.”



진안군청 김사흠(53) 계장이 말했다. 군청의 의지대로 암마이봉은 꼬박 10년의 휴식기를 채우고 지난 11일 다시 문을 열었다.



공식 개장에 앞서 지난달 30일 암마이봉을 찾았다. 등산로는 이미 공사를 마친 상태였다. 이정표 부착 등 세세한 작업만 남아있었다. 공사비 14억4000만원 중 75%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았다. 마이산이 2003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2호로 지정된 데 따른 것이다. 김 계장이 말을 이었다.



“안전하지만 자연스러운 산행의 맛을 살렸습니다. 바위를 밟고 지나가는 부분을 제외하고 흙이 드러나는 부분에 나무판을 깔았습니다. 등산로 설계에만 두 달을 공들였지요. 그전에는 나무에 밧줄을 칭칭 감고 올랐으니 장족의 발전입니다.”



비바람을 꿋꿋이 견뎌낸 마이산 돌탑.


암마이봉을 오를 수 있는 인원을 하루 100명으로 제한한 것도 10년 전과 달라진 점이다. 암마이봉에 도착한 순서대로 100명만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오후 3시 암마이봉 등산로로 향했다. 마이산 남부주차장부터 탐방로를 따라 1.8㎞를 걸으면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의 분수령인 천황문에 도착한다. 등산로 출발 지점이다. 등산로 입구를 지나자마자 산세가 가팔라졌다.



암마이봉은 산 전체가 콘크리트 덩어리 같았다. 등산로는 그나마 나무가 듬성듬성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북쪽 경사면에 나 있었다. 반대편은 아예 건조한 암석뿐이라 접근 자체가 어렵단다. 계단을 오르다 경사가 급한 바위가 나타나면 밧줄을 붙잡고 기어가기를 반복했다. 600m 남짓한 짧은 길이어서 정상까지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매일 암마이봉을 들락날락하는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20분이면 올라갔다 내려오고 남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완전히 믿을 말은 못됐다. 못해도 40~50분은 잡아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등산로 중간 중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호흡을 골랐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하더니만, 정말로 그랬다. 특히 암마이봉에서 마주하는 수마이봉은 절경이었다. 우러러만 봤던 수마이봉을 지긋이 내려다봤다. 한껏 솟아오른 산세가 한눈에 잡혔다. 굽이굽이 흐르는 고원지대의 능선도 즐겼다. 하루에 딱 100명에게만 허락되는 비경이었다.



기기묘묘한 암봉에 얽히고설킨 이야기



울창한 숲이나 화려한 단풍은 없었다. 하나 마이산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굳이 말한다면, 척박한 매력이라고 할까. 마르고 거친 암석이 포탄을 맞은 것처럼 군데군데 움푹 패여 있는 모양이 여느 매끄러운 바위산과는 달랐다.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 모양의 지형을 지질학에서는 타포니(Tafone)라 부른다.



마이산을 이루는 암석은 자갈과 진흙이 뭉쳐진 역암(礫岩)이다. 지질학자들은 호수 밑바닥에 퇴적된 역암층이 7000만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불쑥 솟아올라 마이봉을 이뤘다고 추정한다. 역암을 형성했던 자갈이 떨어져 나가면서 타포니가 만들어졌다. 마이산에 타포니가 집중적으로 발달한 데는 마이산 일대가 고원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 땅 위로 맨살을 드러낸 역암층이 진안 고원의 매서운 날씨와 맞닥뜨렸다. 큰 일교차를 겪으며 역암층이 급격한 수축과 팽창을 거듭했다. 자갈이 빠져 나갈만한 틈이 생겼다.



“온 산에 시멘트를 발라놨다고 오해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산의 가치를 이해하는 외국인은 일부러 보러 오기도 합니다.”



마이산도립공원에서 13년째 해설사로 활동하는 박광식(53)씨는 마이산을 찾는 외국인이 부쩍 눈에 띈다고 자랑했다. 세계적 권위의 여행안내서 『미슐랭 가이드』도 마이산의 가치를 알아봤다. 2012년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추천 명소로 마이산을 소개했다. 전주 한옥마을, 고창 고인돌군 등과 함께 최고 평점인 별 3개를 달아줬다.



마이산의 명물은 또 있다. 일명 ‘거꾸리 고드름’이다. 그릇에 물을 담아 놓으면 얼음기둥이 뿔처럼 자라는 역고드름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겨울철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만나는 남쪽 골짜기에서 종종 관찰된다. 역고드름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생긴다고 한다. 바람이 적고, 건조하며, 주변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야 한다. 진안 고원의 변덕스러운 온도 변화가 빚은 작품인 셈이다. 두 마이봉이 바람막이 역할을 한 것도 분명 주효해 보였다.



워낙 별나게 생겨서인지 마이산 자락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특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와 관계된 이야기가 많다. 진안 토박이는 마이산을 속금산(束金山)이라 부르는데, 태조가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태조가 마이산에서 꿈을 꿨는데, 신이 금으로 된 자와 함께 “장차 강토를 재어보라”는 명을 내리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속금산이 금의 기운을 묶은 산이라는 뜻이다. 마이산 자락에 있는 사찰 은수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실배나무가 있는데, 태조가 이 나무를 심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소문은 최근에도 이어진다. 대권 주자 몇몇이 조선 건국의 기운을 받으러 마이산을 몰래 찾았다는 소문이다.



마이산에서 가장 유명한 절 탑사도 빠뜨릴 수 없다. 한국인 중에서 열 중에 아홉은 탑사를 구경하려고 마이산을 찾는다. 탑사는 남부주차장에서 걸어 10분이면 도착했다. 고요한 분위기의 마이산과 다르게 탑사 주변은 장날처럼 북적거렸다. 절 주변에 포진한 돌탑을 구경하려는 무리였다.



절 주변으로 돌탑 80여 기가 있었다. 탑은 크고 작은 돌을 회오리 돌듯이 둥글게 쌓아 세웠다. 무릎에 닿을 만큼 작은 탑도 많았지만, 어른 키를 훌쩍 넘겨 2~3m는 족히 돼 보이는 탑도 여럿이었다. 손이 닿지 않는 부분까지 돌을 괬다.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떻게 쌓았는지는 속 시원히 밝혀진 바가 없다.



가장 유력한 주인공은 마이산에서 수도에 전념했다는 이갑용 처사(1860∼1957)다. 처사의 후손은 이 처사가 혼자 힘으로 돌탑을 쌓았다고 주장하지만, 학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조선왕조 성립 이전에 탑 몇 기가 이미 축조된 상태였고, 이 처사가 이를 증축하고 그 옆에 새로운 탑을 쌓았다고 판단한다.



어쨌든 마이산 돌탑은 여태 무너지지 않고 있다. 마이산의 기를 받아 돌탑이 서 있는 것인지, 돌탑 때문에 마이산에 기가 모이는지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기묘하게 솟아있는 마이산의 봉우리 한 쌍이 오랜 세월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려니 생각했다.

● 여행정보=서울 시청에서 진안 군청까지는 차로 3시간 걸린다. 전주에서는 차로 25분 거리다. 암마이봉 등산로 개방시간은 오전 10시~오후 4시다. 천황문에 도착한 순서대로 입산할 수 있다. 마이산 관리사무소 063-433-3313. 마이산을 사진에 담고 싶다면 익산장수고속도로 진안휴게소가 추천 포인트다. 상·하행선 휴게소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진안에서 먹어볼 만한 음식은 애저찜이다. 새끼 돼지를 삼계탕처럼 통째로 고운 전통음식인데, 요즘엔 부위별로 나눠서 나온다. 금복회관이 25년 전통을 자랑한다. 돼지 다리 한쪽을 4명이 먹는다. 6만원. 063-432-0651. 진안홍삼스파빌(redginsengspa.kr)은 한국관광공사 지정 우수 숙박시설이다. 마이산 북부주차장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있다. 1588-7597.



글=양보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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