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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음악쉼터, 대구문학관서 부활의 노래

‘녹향’ 설립자인 고 이창수씨의 아들 정춘씨가 오는 30일 재개관을 앞두고 개업 준비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국내 첫 고전음악(클래식) 감상실인 ‘녹향(綠香)’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클래식 애호가인 이창수(2011년 작고)씨가 1946년 대구시 중구 향촌동에 문을 연 이후 68년 간 손님을 맞았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6월 문을 닫았다. 녹향은 ‘음악의 향기가 녹음처럼 우러져라’는 의미다. 이곳은 한 때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명소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찾는 이의 발길은 점점 줄었다. 음악인들이 녹향 살리기 음악회를 여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녹향의 전성기는 1950년대였다. 6·25전쟁이 나면서 서울의 문인 등 예술가들이 대구로 피란왔다. 녹향은 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시인 유치환·조지훈·박목월·양명문, 국문학자 양주동 등이 단골이었다. 화가 이중섭은 구석에 앉아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양명문은 음악을 들으며 시를 썼다. 그가 이곳에서 쓴 시에 변훈이 곡을 붙여 가곡 ‘명태’가 탄생했다. 이영상(74) 전 경북외국어대 총장은 “여고 졸업 후 가정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녹향에서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들으며 희망을 꿈꾸곤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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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향은 이후 시내 여러 곳을 옮겨다니다 1986년 중구 화전동에 마지막 둥지를 틀었다. 이씨는 89세로 작고할 때까지 이곳에서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고 레코드를 틀었다. 이후 그의 아들 정춘(65)씨가 가게를 지켰지만 매달 30만원 임차료를 내기도 힘들었다. 오디오 시스템에 이어 MP3 등이 널리 보급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다.

 보다 못한 음악인들이 팔을 걷었다. 2010년 첼리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강충모, 테너 하만택 등이 출연료 없이 녹향 무대에 섰다. 수익금은 녹향의 시설 개선과 운영비로 쓰였다. 대구그랜드심포니오케스트라 박향희(48) 단장은 “녹향은 대구가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점을 알리는 징표이자 소중한 문화자산이란 점에서 예술인들이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녹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지막 모습을 재현해 오는 30일부터 다시 클래식 애호가를 맞는다.

대구시와 중구청이 향촌동에 만든 ‘대구문학관·향촌문화관’ 지하 1층에 옛 모습을 그대로 옮겨 명맥을 잇도록 했다. 130㎡ 규모의 새 녹향에는 이전에 사용하던 의자와 피아노 등이 그대로 놓여 있다. 무대용 단상에는 이씨가 1940년대 구입한 영국제 스텐토리안 스피커도 있다. 당시 도심 한복판의 상업지역을 판 돈으로 샀다고 한다.

 뮤직박스에는 3000여 장의 낡은 LP 레코드가 빼곡히 꽂혀 있다. 40년대 말에 발표된 베토벤 교향곡 전집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집 등의 표지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 빛이 바래 온통 누런색이다. 입구에는 예전 간판이 그대로 걸렸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녹향에 얽힌 사연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장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녹향의 활성화 방안도 마련되고 있다. 예술계와 학계·경제계 인사 60여 명이 새로운 무대에서 매달 정기음악회와 예술 강좌를 열기로 했다. 축음기로 노래를 들려주는 등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운영을 맡은 정춘씨는 “옛 녹향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곳에서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새 녹향은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 제외) 문을 연다. 053-661-2366.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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