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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죽자 성욕이…' 야성의 호흡 토해낸 문정희

시인 문정희(67·사진)씨의 시집은 인생과 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목소리 혹은 뜨거운 토로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시어 사전에 남의 눈치 보거나 에둘러 말하기 같은 건 없다. 일상 언어와 다를 바 없는 솔직한 언어로 그는 사회문화적 남녀 불균형을 문제 삼고, 애정 없는 결혼과 남성 중심사회의 치부를 까발리곤 했다.

다른 여성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금기가 깨지는 아슬아슬한 쾌감, 그런 위반을 지켜보며 덩달아 몸이 뜨거워지는 것, 그런 것들이 문씨 시의 묘한 매력이다.

 문씨가 열두 번째 시집 『응』(민음사)을 펴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쓴 시로 꾸민 2012년 시집 『카르마의 바다』(문예중앙)를 포함하면 열세 번째다.

 시집 제목부터 문씨 답다. ‘응’이라는 감탄사는 맥락에 따라 긍정의 대답, 재촉하거나 질책하는 등의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문씨는 시인의 말에서 ‘시가 차오를 때면 응! 야성의 호흡으로 대답했다. 어느 땅, 어느 연대에도 없는 뜨겁고 새로운 생명이기를’이라고 써놓았다.

 요컨대 시집에 실린 78편의 시들은 일종의 호흡이라는 것, 지금까지 써왔던 드센 여성시와는 다르게 보다 궁극적인 생명성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 등이 새롭게 읽힌다.

 ‘강’이 대표적이다. 시인은 ‘어머니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고 노래한다. ‘드디어 딸을 벗어 버렸다!’고 외친다. ‘끝없이 간섭하던 기도 속의/현모야, 양처야, 정숙아,/잘 가거라’고 일갈한다.

 시인의 기질, 시의 정황으로 볼 때 시인의 어머니는 제도와 습속의 굴레에 속박돼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성욕마저 억누르며 살았던 게다. 시인에게 하나의 규범이었던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서 성욕이 되살아났다는 토로는 그런 맥락에서 공감이 간다. 그러나 시인에게 어머니가 부정의 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불쌍한 어머니, 그녀가 죽자 성욕이 살아났다/나는 다시 어머니를 낳을 것이다’라고 시를 맺는다.

 문씨는 13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동안 여성의 사회적 타자성, 억압된 삶 등을 주로 다뤘는데 그 자체도 굴레 같다. 그것마저 던져버리고 인간 생명 자체의 원형성, 그런 것을 노래한 야성 시집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응’이라는 감탄사는 그런 결심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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