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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시리아는 '오바마의 베트남'이 될 것인가?

린든 존슨 대통령은 50년 전 북베트남에 대한 전략 폭격을 승인했다. 확전(擴戰)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곧 지상군을 파병하게 됐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주의 반군을 겨냥한 전략 폭격을 이라크를 넘어 시리아로 확대했다.

 확전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다수 전문가가 그렇게 믿는다. 최고위급 관료들은 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런 유형의 분쟁에서 미군이 성취할 수 있는 목표에 대해 회의적이다. 행정부 안팎에 포진한 강경파들이 더 깊숙한 전쟁 개입을 요구하지만 대통령이 거부해 왔다.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역사의 교훈을 배운 ‘비관적 현실주의자(gloomy realist)’라고 말한다. 미국 군사력이 강력해도 정치적·이념적인 분쟁에선 효용이 제한적이라는 교훈이다.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입장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증거가 넘친다. 그러나 대통령이 아무리 현실주의적이어도 무모한 군사행동을 꺾기 힘들 때가 있다. 군사 개입의 자체 논리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전쟁 소신에 흔들림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도 처음에는 오바마처럼 회의적이었다. 존슨과 안보 담당자들은 남베트남 반군 제압이 엄청나게 힘든 도전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65년 3월 초 존슨 대통령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 멀리 어디엔가 빛이 보인다면 싸울 수 있다. 베트남에서는 어떤 빛도 찾을 수 없다.”

 그는 베트남의 안보 가치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64년 개입 확대를 구상하는 순간에도 그는 절망 속에 자문했다. “베트남이 미국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나?”

 그는 항상 회의적이지는 않았다. 어떤 때에는 베트남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꽤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필요에 따라 베트남의 의미를 역설하는 데도 능숙했다. 그러나 1964~65년 미 행정부의 방대한 내부 기록물을 보면 존슨은 대규모 파병으로도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베트남에 뛰어들었을까? 상황이 그를 옭아맸다. 15년간 미국이 인도차이나에서 개입을 꾸준히 확대한 데다 존슨과 참모들은 베트남에서의 승전 가능성을 과도하게 자신했다. 더욱이 전쟁을 개인적 과업으로 만든 존슨은 전쟁 비판을 곧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그 결과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어떤 빛도 안 보인다”고 선언한 바로 그 주, 존슨은 북베트남에 단계별로 지속적인 공습을 펼치는 ‘뇌성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을 개시하고 곧바로 첫 전투병력을 투입했다. 파병 규모는 급증했다. 65년 말에는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국 지상군이 18만 명으로 늘어났다. 50만 명까지 확대됐다.

 오바마가 존슨 방식으로 증파(增派)를 명령할 것 같지는 않다. 중동의 지상 상황은 베트남과 다르다. 세계 속 미국의 역할에 대한 오바마의 시각 또한 존슨과 다르다. 오바마가 외교정책을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거나 참모진의 다양한 의견에 압박감을 느낄 가능성은 낮다.

 오바마의 감성과 접근방식은 또 다른 베트남전 시기의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훨씬 더 비슷하다. 케네디는 전투병력을 지상에 배치하라는 군 장성과 민간인 참모진의 제안을 일관되게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집권 1000일 동안 개입 수준을 크게 확대해 후임자의 선택 폭을 좁게 만들었다.

 지금 대통령 전기를 쓰려는 게 아니다. 일단 군사 개입이 시작되면 사태 전개가 대통령의 통제를 벗어남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전쟁에는 자체 추진력이 있다. 존슨은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차질, 결점을 극복하려다 군사행동을 확대하게 됐다. 2014년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정치적인 논리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은 곳곳에서 ‘조치가 더 필요하다’ ‘전쟁을 해야 한다’ ‘공격을 확대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과 고위급 참모들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정치적 논리를 편다. 그 결과 국내 정치에서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존슨은 결코 전쟁광이 아니었다. 베트남전이 자신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그는 쓰디쓴 패배로 끝난 장기전으로 미국을 끌고 들어갔다.

 “싸울 만한 가치도, 빠져나올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64년 존슨 대통령이 국가안보보좌관 맥조지 번디에게 침울하게 건넨 말이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같은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프레더릭 로그볼 코넬대 역사학과 교수, 고든 M 골드스타인 실버레이크 상무이사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0월 7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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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