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초저금리, 축복과 저주 양날의 칼

2008년 3월 일본 오사카(大阪)의 한 허름한 주택 창고에서 무더기 돈다발이 발견됐다. 아래쪽 종이상자에 담긴 돈은 습기에 젖어 곰팡이마저 쓸었다. 상자에서 나온 현금은 모두 58억엔. 당시 환율로는 550억원이나 됐다. 경찰 조사결과 부친이 사망한 뒤 60대 두 딸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은행 예금을 거듭 인출해 돈을 집안 창고에 보관해 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딸들은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다. 부친이 부동산업으로 거액을 벌어들였지만 함께 일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번 돈도 섞여 있는 만큼 상속세를 회피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돈을 창고에 보관했을까. 그런 비정상의 이면에는 ‘저금리의 저주’가 숨어 있다.



 1990년 거품경제 붕괴 후 20년 넘게 이어진 일본의 저금리 기조는 기업의 경제 활동은 물론이고 국민의 돈 관리 행태까지 바꿔놓았다. 은행 예금이 안전하다는 보장 자체가 없어졌다. 일본에선 1997~2003년 사이 일본장기신용은행을 비롯해 11개 은행이 문을 닫았다. 은행이 망하면 보호되는 예금은 1000만엔에 그친다. 그래서 분산예치는 기본이고, 큰 돈을 집안 금고나 옷장에 묻어두는 ‘장롱예금’도 적지 않았다. 이러니 가계의 지갑이 열리지 않은 건 당연했다. 이미 예금이자 생활이 불가능해졌는데 노후가 길어지면서 고령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연금을 받아 다시 저축하는 바람에 사망할 때 은퇴시점보다 자산이 늘어나는 사례마저 속출했다. 90년대 증시와 부동산시장 폭락을 지켜본 고령자들은 투자에도 신중하게 됐다.

 문제는 일본의 저금리 부작용이 국내에도 빠르게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1년 미만 예금 금리가 1%대로 떨어지면서 이자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은행 예금으로 돈을 불리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런 부작용에도 주요국은 과감하게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기준금리가 0~0.25%에서 유지되고 있고, 일본은 0.1%, 유로존은 0.05%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 하고 있을까. 저금리는 강력한 경기부양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3차에 걸친 양적완화를 통해 실업률을 2009년 최고 10%에서 최근 5%대로 낮추는데 성공해 경기회복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아베노믹스도 마찬가지다. 통화량을 단기간에 배로 늘리는 충격요법을 쓰고 있다. 소극적으로 운영되던 물가안정목표제를 본격화해 내년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이 직접 공급하는 본원통화를 2012년 말 138조엔에서 올해 말까지 270조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 영향으로 주가가 꿈틀대고 고용시장도 활기를 띤다.

 이에 비해 한국의 기준금리는 2.25%로 주요국과는 2% 포인트 넘게 벌어져 있다. 금융시장의 국경이 없어진 지금, 한국이 글로벌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은 진작에 금리를 더 낮췄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은은 금리 결정의 잣대를 물가상승률 목표로 삼고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는 크다. 목표는 2.5~3.5%로 잡고 있으나 실제 소비자물가는 22개월 연속 1%대에 그치고 있다. 이상빈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빗나간 물가안정목표는 통화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세계 흐름과 달리 한은만 상대적인 고금리를 유지해 소비와 투자를 되살리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매달 개최한다. 하지만 지난 15개월 간 딱 한 차례 금리를 조정했다. 104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악화가 걱정되고 경기 회복이 기대된다면서 주로 동결 행진을 벌여왔다.

 그러는 사이 체감경기는 더 악화됐다. 15일 금통위를 앞두고 있는 한은의 딜레마는 클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더 금리를 낮출 필요가 있지만 세계 경제의 핵심엔진인 미국의 금리 흐름과 다시 엇박자를 낼 수 있어서다. 이제라도 국내 현실에 맞게 금리를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 목표에만 전념할 게 아니라 주요국처럼 잠재적 위험에 대처해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저금리의 저주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길이라는 것이다.

김동호 선임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