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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 부르는 기초·응용 연구가 노벨상의 비결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85) 일본 메이조(名城)대 교수(왼쪽)와 아마노 히로시(天野浩·54) 나고야(名古屋)대 교수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들어 보이고 있다. [나고야 AP=뉴시스]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를 지켜보면서 몇 년 전 방문했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연구소(Cavendish Laboratory)가 생각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물리학 연구소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공부했거나 연구했던 사람들 가운데 29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된 노벨상 수상자의 산실로 유명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일본이 수상한 노벨 과학상 19개보다 많은 숫자다. 그런데 연구소 소개를 청취하다 갑작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1904년 대기 중 희소 기체 가운데 하나인 아르곤을 발견하고 분리한 레일리 경(Lord Rayleigh)을 선두로 해서 지속적으로 배출되던 노벨상 수상자가 89년 원자의 정확한 준위를 밝혀 10조분의 1초까지 측정 가능한 정밀 시간 측정법을 개발한 노먼 램지를 마지막으로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노먼 램지는 캐번디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 뿐이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당시 소장은 기초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언제부턴가 실생활에 직접 응용 가능한 기초연구 성과가 미약해지면서 노벨상 수상의 명맥이 끊긴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정부·민간 연구 혁신 안 보여
누구나 알고 있듯이 노벨상은 ‘인류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독창성 있는 최초의 발견, 발명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대부분 기초연구 분야에서 위의 조건에 맞는 탁월한 연구자가 수상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러한 노벨상 수상 영역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인류의 혁신을 주도한 산업적 응용이 높은 첨단기술을 개발한 연구자들의 수상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물리학상은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해 조명기술의 혁명을 불러온 일본 과학자 3명이 수상했다.

1909년 무선전신 기술을 개발한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필두로 79년 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인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CT 진단기법을 개발했으며, 87년 수상자인 찰스 피더슨은 인공효소 개발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다수의 관련 업적들은 물리학상에 집중돼 있다. 2000년 수상자인 잭 킬비는 반도체 공정을 이용한 집적회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전자회로와 부품의 경량화,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고 2007년 수상자인 알베르 페르와 페터 그륀베르크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소형화 및 빠른 저장을 가능하게 한 거대 자기저항을 발견했다. 2009년 수상자인 찰스 가오는 광섬유 전송 기술을 개발해 현재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의 활용을 가능하게 했고, 윌러드 보일·조지 스미스는 광학적 영상 이미지를 전기적 데이터로 전환하는 디지털카메라의 필수 부품인 CCD(Charge coupled device)형 이미지 센서를 개발한 공로로 수상했다. 노벨 과학상은 결코 우리 생활을 변화시킨 파괴적 혁신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올해엔 톰슨로이터(Thomson Reuter)가 노벨상 후보로 예측한 명단에 유룡·찰스 리 교수 등 한국인 또는 한국계가 포함됐으나, 결국 최종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노벨 과학상 수상을 위해 기초연구와 고위험·혁신적 연구의 강화, 과학외교 확대, 우수 신진 연구자 지원 강화, 교육시스템 개혁 등 적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반면 노벨 과학상 수상을 갈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모두 맞는 얘기다.

기초응용개발산업화 모델은 비효율
물론 노벨 과학상 수상은 매년 정부가 18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목적이 될 수 없다. 투자를 많이 한다고, 노벨이란 단어가 들어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노벨 과학상이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정책 추진의 본질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파괴적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정부 연구개발사업에서도 민간기업에서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시장을 장악할 파괴적 혁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들은 시장에서 중국 제품에 추월당하고 기업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구글에서 노벨상 수상자 나올지도
파괴적 혁신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는 기초연구·응용연구·개발연구·산업화라는 4단계 과학기술혁신 선형 모델(linear model)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는 동일한 목적의 연구를 몇 개의 부처에서 나누어 수행하게 하는 등 원활하지 못한 연구 과정의 연계와 투자의 비효율성을 낳고 있다. 이러한 선형적 연구개발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관련해 연구자들은 정부를 탓하고, 정부는 연구자들을 탓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연구자나 정책담당자 입장에서 봐도 특정 연구가 어느 단계에 속해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는 파괴적 혁신을 위해 선형 모델보다는 상호작용 모델(interactive model)을 생각해볼 때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가 바로 산업화로 연결돼야 한다. 그리고 각 단계가 상호작용함으로써 혁신이 탄생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해야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과학기술 혹은 산업 분야별 융합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 혁신 창출 단계에서도 융합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나라는 62년 제1차 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과학기술정책이 추진됐다. 이제 막 50년이 지났다. 이제 한번쯤은 냉정하게 우리가 지나온 길과 현실을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파괴적 혁신을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다. 물론 파괴적 정책 없이는 파괴적 혁신도 없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사물인터넷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구글의 제품과 계획에 주목한다. 구글의 파괴적 혁신의 원동력은 원천기술 보유 기업 대상의 인수합병(M&A)과 연구개발 및 업무 시스템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시점에 구글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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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