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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또 한 명 … 노벨위원회엔 ‘한국 출생 수상자’ 2명 기록

올해 노벨상 수상자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왜 한국인 수상자는 없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과학상을 수상한 한국인은 아직 없다. 하지만 노벨위원회에서 ‘한국 출생’으로 분류하는 화학상 수상자가 있다. 1987년 수상한 노르웨이계 찰스 피더슨(1904~89)이다.

노벨위원회가 피더슨을 ‘한국 출생’으로 분류하는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국적을 따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901년 첫 노벨상이 수여된 이래 ▶전쟁과 독립 등으로 폴란드·벨라루스·소련·러시아처럼 같은 지역이 다른 나라로 바뀐 경우 ▶출생지와 국적이 다른 경우 ▶이중 국적 소지자 등 국적 문제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들의 출신 지역을 밝힌다.

피더슨은 구한말인 1904년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해양 엔지니어였던 그의 아버지 브레더 페데르센은 증기선을 타고 극동에 왔다가 당시 영국이 관장하던 대한제국 세관에 취직했다. 그 후 평안도 운산 광산이 개발되자 그곳으로 가서 골드러시 대열에 합류했다. 피더슨의 어머니 다키노 야스이는 대두(大豆)와 잠사 무역에 종사하던 가족을 따라 조선으로 이주했다가 피더슨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89년 사망한 피더슨이 노벨위원회에 남긴 자신의 전기(傳記)에 따르면 당시 운산 광산은 미국이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외국인 학교가 없었다. 피더슨은 “운산은 시베리아 호랑이가 어슬렁대고 추운 겨울엔 늑대가 어린아이들을 공격하던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8살이 되던 해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수녀원 학교에 보냈고 2년 뒤 요코하마 소재 성 요셉 칼리지로 전학을 가 중·고교를 졸업한다. 이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대학에 진학하기로 하고 성 요셉 칼리지와 같은 마리아회에서 운영하는 오하이오주 데이턴대로 떠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피더슨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유기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피더슨은 “석사 과정까지 아버지가 부쳐준 돈으로 다녔다. 이제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며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고 종합화학회사 듀폰에 취직했다. 피더슨은 훗날 박사 학위가 없는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된다. 그는 53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듀폰의 잭슨 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67년 다른 실험을 하다 우연히 ‘크라운 에테르(crown ether)’라는 새로운 유기화합물을 발견한다. 피더슨은 이 유기화합물이 산소 원자 한 개가 탄소 원자 두 개 사이에 끼어 있는 형태에 원형으로 배열돼 있다고 해서 크라운 에테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특정 원자를 열쇠가 자물쇠에 들어맞듯 끌어당기는 점에서 크라운 에테르는 효소(enzyme) 같은 다른 생화학적 물질이 복잡하게 수행하는 작업을 비교적 간단하게 흉내낼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크라운 에테르의 발견에 탄복하며 체내 나트륨·칼륨 운반 원리 등의 제약 연구, 대기 중에서 방사성 스트론튬을 제거할 수 있는 환경기술 연구 등에 유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피더슨은 69년 듀폰에서 42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정년 퇴임했지만 그의 연구에 기반해 후속 연구를 한 도널드 크램, 장마리 렌과 함께 크라운 에테르를 발견한 지 20년 만인 87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83세의 고령에 암 투병으로 건강이 악화됐지만 그는 뉴저지의 집에서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날아가 상을 받았다. 피더슨은 수상 소감에서 “상업성이 없어 보이는 연구에 대해서도 9년 동안이나 원하는 연구를 하게 해준 듀폰의 경영진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피더슨의 누나는 일제시대 조선에 남아 스탠더드오일의 제물포(인천) 사무소에서 일했고 64년 사망했다. 피더슨은 노벨상을 수상한 지 2년 만인 89년 세상을 떠났다. 듀폰 측은 피더슨의 업적을 기려 사내 우수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피더슨 상’을 설립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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