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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미친 듯 강렬하게 … 1990년대 록의 역사 쓴 바로 그곳

록밴드 더 스미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스미스 방. 샐퍼드 래드스 클럽 안에 있다. 사진 조현진
맨체스터(Manchester)가 ‘매드체스터(Mad chester)’로 불리던 시기가 있었다. 1980년대 말 이 지역 출신 밴드들이 로큰롤의 대세가 되고 이 지역 소재 클럽들이 조명을 받으며 90년대 초까지 영국의 음악신(scene)을 주도해 나갔다. 아무도 이 기세를 막을 수 없고 성난(mad)듯이 전 세계로 확산되자 음악계와 언론은 맨체스터를 아예 매드체스터로 부른 것이다.

 음악도시 이전에 맨체스터는 한때 영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가장 번성한 산업도시였다. 세계의 첫 기차역과 컴퓨터도 이 도시가 선보였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섬유산업이 사양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지역 경제도 활력을 잃게 된다. 이즈음 도심의 빈 창고들에는 기타를 멘 젊은 음악인들이 찾아와 낮에 리허설하고 밤에는 공연하기 시작했다. 음악도시의 종자가 배양되기 시작한 것이다.

 맨체스터 음악사 투어(The Manchester Musical History Tour)의 공동저자이자 록밴드 인스파이어럴 카페츠(Inspiral Carpets)의 드러머인 그레그 질은 “맨체스터는 런던이나 리버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하고 독특한 로큰롤 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도시 중심부 올드햄가 일대에는 음반 상점들과 라이브바들이 몰려 있는데 맨체스터를 빛낸 음악 아이콘들을 기리기 위한 명예의 거리가 90년 조성됐다.

 62년 결성된 맨체스터 출신의 더 홀리스(The Hollies)는 더 비틀스, 더 롤링스톤스와 함께 60년대 영국을 대표했던 밴드였다. 밴드를 결성한 그레이엄 내시는 60년대 말 수퍼밴드인 크로스비 스틸스 앤드 내시(Crosby, Stills & Nash) 탄생과 함께 떠나지만 홀리스는 이후 지금까지도 해산한 적 없이 꾸준한 음악활동을 하고 2010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이들의 노래 가운데 ‘He Ain’t Heavy He’s My Brother’는 록밴드 들국화가 전성기 때 라이브 공연에서 자주 불러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1 맨체스터 중심부. 이 뒤로 중심도로인 올드가 주변에는 음악 관련 상점과 음악 명예의 거리 등이 조성돼 있다. 2 오아시스 최종 정식 멤버가 첫 공연을 한 보드워크 클럽의 안내판. 골수팬과 관광객들이 여전히 많이 찾아온다. 3 맨체스터 시내에 그려진 토니 윌슨의 초상. 그는 아직도 ‘미스터 맨체스터’로 불린다. 4 이언 커티스의 묘. 록스타치고 너무 작아 오히려 큰 여운을 남긴다.
미국 진출 전날 세상 떠난 이언 커티스
맨체스터에는 골수 팬들이 찾는 로큰롤 성지가 제법 많은데 이 지역 출신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과 관련된 곳도 많다. 이언 커티스가 이끌던 조이 디비전은 79년 데뷔 음반인 ‘Unknown Pleasures’ 발표 이후 펑크록 이후를 이끌어갈 후계자로 일찌감치 낙점받으며 단숨에 대중과 평단 양측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영국 내에서 인정받고 성공 가도를 달리던 조이 디비전은 80년 5월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밴드의 성공과 함께 커티스의 우울증과 간질 증세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커티스는 어린 나이인 19세에 결혼했는데 공연 중 만난 한 여인과 가까워지면서 아내와 관계가 불편해진 점도 그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커티스는 결국 5월 18일 메클레스필드 바톤가 77번지 소재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혼하자는 아내를 설득했으나 별 성과가 없자 “내일 아침 떠날 테니 혼자 있게 해달라”고 말하고는 아내가 집을 비운 밤 새 영원히 혼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글로벌 스타로의 도약이 점쳐졌던 조이 디비전의 미국 출국 예정 바로 전날 일어난 사건이라 안타까움은 더했다.

 그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음악은 이기 팝(Iggy Pop)의 ‘바보(The Idiot)’ 음반이었다. 커티스는 화장된 뒤 고향 공원묘지에 묻혔다. 한눈 팔면 놓칠 정도로, 어쩌면 묘지 내에서도 가장 작을 듯한 그의 묘는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티스트에게 오히려 어울리는 듯싶다. 묘비는 2008년 도난당해 새 묘비가 마련됐는데 조이 디비전의 대표곡인 ‘Love Will Tear Us Apart’가 새겨져 있다. 진정 사랑이 결국 커티스를 세상과 갈라 놓았을까.

 조이 디비전은 2008년 베스트 음반을 발매하는데 밴드 생존 시 맨체스터에 있는 ‘에핑 워크 다리’에서 찍은 사진을 표지로 사용했다. 이 지역 출신의 한 정치인은 커티스 사망 30주년을 맞아 2010년부터 이 다리 이름을 ‘이언 커티스 다리’로 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의 사망 이후 남은 멤버들은 밴드명을 뉴 오더(New Order)로 개명해 오늘날까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샐퍼드 클럽엔 ‘더 스미스’ 편지와 사진
모리세이가 이끈 더 스미스는 얼터너티브록에서 확실한 한 획을 그은 밴드로 역시 맨체스터 출신이다. 3집 음반인 86년작 ‘The Queen Is Dead’는 80년대 최고 음반 3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데, 이 음반에 사용된 한 사진은 맨체스터 근교의 한 건물을 로큰롤의 중요 랜드마크 반열에 올렸다. 1903년 이후 지역 어린 남학생들의 축구나 농구 등 여가활동 교육기관으로 운영된 샐퍼드 래드스 클럽(Salford Lads Club)이 바로 그곳이다. 스미스는 이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음반 내부 표지 사진으로 사용했는데 음반의 성공과 밴드의 인기와 함께 이 건물 역시 명소로 자리 잡았다.

 당시 클럽 측은 사전에 통보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며 밴드를 고소하기도 했다. 지금은 밴드와 화해했고 밴드도 클럽에 호의적이 되어 클럽 발전을 위한 기부도 아끼지 않는다. 클럽 측은 2004년 체력단련장으로 사용하던 방을 스미스 방(Smiths Room)으로 지정해 팬들이 남긴 편지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런던의 애비로드<9월 28일자 소개>와 함께 샐퍼드 클럽은 영국 내에서 록밴드가 발매한 음반에 사용된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기록된다. 건물의 돌 외벽은 팬들이 기념으로 가져가려고 조금씩 뜯어가 곳곳에 깨지고 뜯긴 자국들이 선명하다. 건물은 2003년 등록문화재 건물로 지정됐다.

 더 스미스는 맨체스터 출신의 수많은 후배 밴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더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와 오아시스(Oasis)가 대표적이다. 90년대 최고의 로큰롤 밴드에 오르는 오아시스는 아직도 시내 곳곳에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92년 1월 14일 처음 공연한 더 보드워크(The Boardwalk) 클럽은 이미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오아시스 광팬들이 꼭 방문하는 지역 명소다.

 맨체스터 로큰롤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장으로는 프리 트레이드 홀(Free Trade Hall)이 꼽힌다. 지금은 호텔이 됐지만 이곳에서 열린 두 공연은 로큰롤 역사에 남아 있다. 첫째는 66년 5월 17일 밥 딜런의 공연이다.

 딜런이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전자 기타를 들고 나오자 성난 관객이 “유다!(Judas!)”라고 외친다. 이 공연 실황은 30여 년 동안 비공식 음반으로 유통되다 98년 공식 발매되는데, 당시 딜런을 비난하는 야유가 생생하게 녹음돼 있다. 오랫동안 로열 앨버트 홀에서 녹음됐다고 알려졌고 음반 타이틀도 그렇게 발매(Bob Dylan Live 1966: The ‘Royal Albert Hall’ Concert)됐으나 사실은 프리 트레이드 홀 녹음 실황이다.

 두 번째 사건은 76년 6월 4일 펑크록의 전설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공연이다. 이들의 런던 밖에서의 첫 공연이었다. 당시 유료 관객은 단 42명에 불과했는데 여기에는 맨체스터를 세계 로큰롤 지도에 올린 사람, 토니 윌슨(Tony Wilson)이 포함돼 있었다.

‘Mr. 맨체스터’로 추앙받는 토니 윌슨
맨체스터 지역의 그라나다 방송 뉴스 앵커이자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안정적인 방송인의 삶을 살던 윌슨은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이 공연을 본 뒤 섹스 피스톨스의 팬이 됐고 이들을 방송에 출연시킨다. 이는 섹스 피스톨스의 첫 TV 등장으로 기록되는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윌슨은 이어 78년 팩토리 음반(Factory Records)을 공동 설립했다. 조이 디비전과 그 후예인 뉴 오더, 해피 먼데이스 등이 팩토리 소속이었다. 한때 최고의 음반사였던 팩토리 건물은 지금 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당시 모습을 아직도 어느 정도는 간직하고 있다.

 윌슨은 82년 전설적인 클럽 하시엔다(Hacienda)를 연다. 팩토리 소속 밴드들은 물론 더 스미스와 더 스톤 로지스 등이 모두 이 무대를 거쳤다. 이 무렵부터 맨체스터 출신 밴드들은 얼터너티브록과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기분 좋게 섞은 음악을 선보이며 로큰롤 팬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하시엔다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하우스 음악을 본격적으로 틀기 시작했고 DJ 시스템을 본격화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무렵 “하시엔다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클럽”이라고 보도했다.

록의 중심 ‘하시엔다’는 고급 콘도 변신
멋쟁이들이 클럽을 찾으며 지역 패션산업도 자연 주목받기 시작했다. 엑스터시 같은 환각제의 확산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른바 ‘매드체스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당시 영국 내 진학 선호 대학에서도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보다 맨체스터대가 강세를 보였다는 기록도 있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2002년작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4 Hour Party People)’에서 당시 매드체스터의 폭발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스크린에 개성 넘치게 담았다.

 한때 세계 로큰롤 중심지였던 광란의 하시엔다는 이제 차분한 고급 콘도가 됐다. 하시엔다를 빛냈던 주요 밴드들을 출연 시대 순에 따라 콘도 뒤편 벽에 조각해 놓은 배려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윌슨이 암으로 사망한 2007년 8월 10일 맨체스터 시청은 조기를 게양해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어느 음반사와 마찬가지로 팩토리 음반 역시 모든 발매 음반에 고유 번호를 매겼는데, 마지막으로 매긴 번호는 FAC-501번이었다. 음반이 아닌 윌슨의 관이 그 대상이었다. 로큰롤은 윌슨을 바꿨고 윌슨은 맨체스터를 바꿨다. 아직도 그를 ‘미스터 맨체스터’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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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