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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국 땅인 홍콩 반환하며 민주화 요구한 건 모순”

키쇼어 마부바니(68)는 아시아 출신으로 국제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이 큰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서양 매체들은 그에게 ‘아시아의 토인비’ ‘동양적 윤리를 설파하는 막스 베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마부바니는 1984~89년, 98~2004년 모두 10여 년에 걸쳐 주유엔 싱가포르대사를 지냈다.

 싱가포르의 정치·경제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외교 및 국제적인 위상은 마부바니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99년 『Can Asians Think?』라는 책에서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서양 중심의 사고방식을 버리고 아시아의 가치를 우위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그가 원장으로 있는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스쿨(공공정책대학원)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아시아의 상황을 곡해하는 앵글로색슨 미디어의 포로가 돼선 안 된다”고 했다.

 -우선 홍콩 시위에 대해서 안 물어볼 수가 없다.
 “홍콩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발언을 원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시에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 홍콩 사람들은 중국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중국 정부는 700만 홍콩 인구보다 13억 중국 인구의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시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홍콩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보다 중국이 갑자기 선거 방식을 바꾸려는 것 아닌가.
 “영국과 서방세계는 매우 기만적이다. 자기들은 홍콩에 민주적 자유를 주려고 생각한 적조차 없으면서 이제 와선 중국에 자유를 보장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내 말을 그대로 인용하라.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독약(poison pill)을 집어넣었다. 홍콩과 중국 사이에 민주화라는 갈등 요소를 만들어놨다는 얘기다. 홍콩이 왜 영국 땅이 됐나. 1842년에 영국은 중국이 아편을 사지 않는다며 전쟁을 일으켜 홍콩을 강제 합병해 버렸다. 그 후 150년간 홍콩을 수탈하고 권위적으로 지배했다. 그런데 당연히 중국의 영토인 홍콩을 반환하면서는 민주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서방세계의 이중 잣대다. 중국·홍콩뿐 아니라 아시아인 모두가 이런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은 언제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될까.
 “자꾸 민주, 민주 하는데 국제 뉴스를 접하면서 앵글로색슨 미디어의 포로가 돼선 안 된다. 그들은 아시아에 대해 곡해된 세계관을 주입하고 있다. 중국은 언젠가 민주국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주목했다. 하루아침에 민주주의로 바꾸자 러시아 경제가 무너져 벨기에보다 경제 규모가 더 작아졌다. 급작스러운 개혁은 재앙을 불러온다는 교훈을 줬다. 중국의 국정 운영은 굉장히 성공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1980년에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은 25%, 중국은 2.2%였다. 하지만 중국의 비중은 곧 미국보다 높아질 걸로 예상된다. 이건 정말 놀라운 역사적 전환이다. 중국인들은 완벽한 정치적 자유를 얻지는 못했지만 지난 35년 동안 많은 개인적 자유를 얻었다. 생활수준도 높아졌다. 매년 1억 명의 중국인이 해외여행을 떠난다. 한국 인구의 두 배 아닌가. 서방 언론은 중국의 이런 측면을 애써 외면하고 권위주의 정권이라고만 강조한다.”

 -북한도 중국과 같은 변화가 가능할까.
 “중국의 변화는 북한에 ‘국민 개개인에게 자유를 줘도 권력을 계속 가질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도 예전 공산당 정권이 건재하지만 개혁·개방에 성공했다. 북한 경제가 중국·베트남처럼 성장하면 그만큼 한반도의 평화적인 변화 가능성도 커진다. 한국은 북한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희망을 가지길 바란다.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적 도발은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큰 군사적 갈등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중국과 다른 점은 개인 숭배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큰 걸림돌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극단적으로 통제된 사회를 개혁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덩샤오핑 개혁 이전의 중국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문화대혁명을 거쳤다. 수많은 사람이 정치적인 이유로 유린당했고 굶어 죽기까지 했다. 중국이 그걸 견뎌내고 고속 성장을 이룬 것처럼 북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펴낸 책 『The Great Conver gence(위대한 통합)』에서 세계인의 가치가 이념 대신 ‘중산층의 삶’으로 모아져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라 보인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현재 국가 간 전쟁으로 죽는 사람 수가 최저다. 이라크·시리아 등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2010년 아시아의 중산층은 5억 명이었다. 불과 6년 뒤인 2020년엔 그 3.5배쯤인 17억50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2030년엔 49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이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영위하게 된다. 경이롭지 않은가. 나는 그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역사에 대해 포괄적인 분석을 해보려고 했다.”

 -당신 글 때문에 백악관에서 화를 낸 적도 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베이징에 갔을 무렵 내가 뉴스위크에 글을 썼다. 미·중 관계에서 미국은 다음 선거를 염두에 둔 전략만 있고, 중국은 장기 전략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미국의 친구로서 그런 조언 겸 주장을 했다. 세상엔 무비판적인 애인과 사랑스러운 비판자가 있는데 나는 후자다. 그런데 나와 개인적으로도 아는 제프리 베이더 당시 백악관 안보특보가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틈만 나면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이 내가 비판적 견해를 내놓자 닥치라고 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일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화를 이뤄 서양 국가와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과거사에 대해 명확하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크나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일본은 자꾸 역사를 번복하면서 스스로 부담을 지우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북한·중국·일본·몽골을 한데 묶는 ‘동북아시아 국가연합’을 주도해야 한다. 싱가포르가 속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적인 지역 연합체다. 67년 출범할 땐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간의 분쟁이 있었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의 연방에서 탈퇴하는 등 갈등이 컸다. 서로 의심하는 5개국이 연합체를 만들었는데 그로부터 50년 후 의심이 사라지고 회원국도 늘었다. 동북아에선 한국만이 이 같은 평화와 번영의 연합체를 주도할 명분과 역량이 있다.”


싱가포르=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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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