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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주여성 15만 중 11만이 우리 강좌로 말 배워요”

최정동 기자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은 157만 명. 전체 인구의 3.1%다. 지금 속도면 2030년엔 500만 명, 총인구의 10%를 차지해 명실상부한 다문화 시대로 접어든다. 이 중 가장 빨리 늘어나는 그룹은 결혼 이민자. 2003년 4만4000명이던 게 10년 만에 15만 명으로 3.5배로 급증했다. 외로운 농촌 총각 구제에 외국인 신부가 큰 역할을 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 역시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0년 1400여 건에서 2012년 1만800여 건으로 7.7배가 됐다. 문화적 차이에다 말까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빚어진 비극이다.

사회인류학자인 김중순(77) 고려사이버대 총장은 이에 주목해 7년째 다문화가정 부인들을 위한 한국어 무상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교육 대상을 해외 외국인들로 넓혔다. 568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그를 만나 한국어 보급운동에 뛰어든 계기와 향후 계획 등을 들었다.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7~8년 전 신문에 시골 사진이 났는데 한국 여자는 없고 죄다 다문화가정 부인이었다. 한국에 그렇게 많은 외국인 신부가 있다니 깜짝 놀랐다. 동시에 이들이 국내에서 적응하는 데 문제가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36년간 미국에서 살아 외국생활의 애환을 잘 안다. 뭐니 뭐니 해도 말이 안 통하면 무척 힘들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
“실상 파악을 위해 영·호남을 돌았다. 외국인 신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긴 하는데 죄다 이벤트성 단기 과정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하는 것처럼 강좌를 운영했다. 서울에선 쉽게 모이겠지만 시골은 다르다. 수십 리 떨어져 사는 게 보통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온라인으로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온라인 한국어 강좌를 개발해 ‘다문화가정 e-배움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각계에 도움을 청했더니 포스코에서 연간 5억원씩 15억원을 선뜻 지원해줬다. 이 돈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봤더니 컴퓨터가 없는 집이 많더라. 그래서 포스코에 사정해 구형 컴퓨터 2000~3000대를 받아 나눠줬다. 컴맹인 다문화가정 부인도 많았다. 컴퓨터부터 가르쳐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갓난아이 한두 명씩 키우고 있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밥도 해주고 애들도 봐주면서 가르쳐야 했다. 다행히 전국 어디에나 우리 학교 학생들이 있어 이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안 배우려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우면 친정과 연락할 수 있고 고향 TV도 볼 수 있다’고 설득해 컴퓨터를 배우게 했다.”
이렇게 탄생한 e-배움 강좌는 기대 이상의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램 수강자는 11만 명을 돌파했다. 결혼이민 여성이 15만 명 정도고, 이 중 우리말을 구사하는 조선족이 2만~3만 명이라고 한다. 결국 한국어 교육이 필요한 외국인 신부의 대다수가 김 총장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수강했다는 뜻이다.

-인류학 공부가 한국어 보급운동에 앞장서는 요인이 됐나.
“인류학 전공자는 그 사회에 깊이 들어가 문제를 파악하도록 훈련받는다. 깊이 침투하지 않으면 표피적 문제에 매달리게 된다. 중국 출신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슈(Francis L.K.Hsu)의 말을 빌리자면 ‘해안에 가서 조약돌을 백 번 분석한들 조수간만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인류학자의 입장에서 다문화가정을 들여다보니 언어 문제가 심각함을 알게 됐다.”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대학 때 법학을 공부했는데 졸업 후 마땅한 취직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아시아재단 지원으로 전국적인 법의식 조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1960년대는 과학적 조사방법을 아무도 모를 때였다. 학교 은사가 ‘미국에 가서 사회조사방법론을 배우고 오라’고 권유해 에머리대에서 사회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조사방법론은 석사 정도면 되지 본격적으로 파고들 분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조지아대로 옮겨 인류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박사 학위를 딴 그는 71년 테네시대의 종신직 정교수를 거쳐 석좌교수가 된다. 그러다 2001년 고려사이버대 재단 측에서 총장으로 모셔왔다. 그는 학교 기틀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다문화가정 부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난해부터는 그 지평을 전 세계로 확대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까지 돕기로 작정한 거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바른 한국어 프로젝트’다. 사이버대 총장 경험에다 오랜 외국생활 덕인지 그는 세계 굴지의 IT기업 구글의 지원도 얻어냈다. 교재는 여러 외국 명문대에서 채택됐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온라인 교육을 하게 된 계기는.
“2012년 자매 결연 차 베트남 하노이대에 갔는데 현지 삼성 공장이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베트남인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대학 한국어과에는 교수가 단 5~6명뿐이더라. 묘안을 찾아달라고 하노이대 총장이 부탁해왔다. 고민 끝에 온라인 수업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다문화가정을 위해 교육한 경험도 있고.”

-어떤 방식으로 했나.
“기왕 할 바엔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원장을 역임한 연세대 남기심 교수에게 부탁해 ‘바른 한국어’ 콘텐트와 교재를 개발했다. 이 온라인 강의는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스페인어 등 5개 언어로 제작돼 1~4급까지 수준이 구분돼 있으며 수준별로 20~30강좌로 구성된다. 지난해 12월 첫선을 보인 후 큰 인기를 끌어 현재 114개국에서 수강 중이다.”

-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외국어 온라인 강좌를 만드는 데 스페인어 능통자를 찾기 어려웠다. 스페인어가 공용어인 온두라스의 주한 대사 부인이 한국계라는 얘기를 듣고 부탁했더니 기꺼이 도와주더라. 대사 부인은 온두라스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간 태권도 사범의 딸로 현지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어도 잘했다.”

-해외 반응은 어떤가.
“MIT·컬럼비아·웰즐리 등 미국 명문대와 영국 런던대 등에서 우리 교재로 한국어 수업을 한다고 들었다.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뜻 아니겠는가. 또 지난 5월에는 우리 사업의 뜻에 공감한 구글에서 이 회사 소유 유튜브에 바른 한국어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줬다. 이 덕에 번거로운 홈페이지 가입 없이 누구든 한국어 콘텐트를 손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외가 언어를 가르치고 싶다. 요즘엔 제2 외국어가 힘 아닌가. 현재 한국엔 67~68개국에서 온 외국인 신부들이 있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일본이 못 가진 재산이다. 이들이 낳은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말을 교육하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한국말도 잘하고 외가 말도 완벽하고. 앞으로 베트남이 외가인 아이가 베트남 대사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 김 대사도 그런 케이스 아닌가. 사춘기를 지나면 외국어를 완벽하게 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우리가 가진 유용한 자산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실태가 안타깝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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