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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글씨 쓰는 건 자기와의 대화 마음과 마음 이어주기도 하지요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 김종진은 소문난 만년필 매니어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오선지를 펼쳐 아래의 글귀를 써줬다.
대중음악계에서 소문난 손 글씨 매니어. 빈티지 만년필 수집가이기도 한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52)씨를 지난달 29일 서울 연건동 서울재즈아카데미 1층 ‘앙코르’ 카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웃음부터 터뜨렸다. 손 글씨에 대한 인터뷰를 노트북으로 받아 적는 아이러니. 그는 “e메일을 보내거나 빠른 글을 써야 할 때는 컴퓨터 자판을 사용한다”며 웃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취재용으로 갖고 다니는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5를 슬쩍 꺼냈다.

-글씨체가 아름다우면서도 개성이 있다. 시각적이랄까. 원래 글씨체가 그랬나.
“나이가 들면서 꼼꼼함이 풀어졌다. 동양화 같아졌다고 할까. 시각적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만년필은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중학교에 들어갈 때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파커 만년필을 선물받았는데 나는 공부를 못해서인지 국산 ‘빠이롯트’를 받았다.(웃음) 1992년에 라디오 DJ를 할 때 방송사 문구점에서 펠리컨 만년필을 다시 사 봤는데 자주 쓰게 되진 않더라. 한동안 잊고 있다가 2000년께 책상을 보니 펜꽂이에 온통 볼펜만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불현듯 중학교 때 갖고 싶던 파커 만년필이 생각났다. ‘손으로 글씨 쓰는 걸 좋아하는데 왜 만년필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만년필과 한 번 친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흔한 한글 캘리그래피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서체다.
“영문 캘리그래피는 수천 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 폰트, 이탤릭이나 고딕, 세리프 같은 게 모두 손글씨에서 나온 거다. 불과 50년 전까지는 손으로 직접 쓰던 것이다. 한글 캘리그래피는 붓으로 쓰는 게 가장 잘 어울리지만 펜으로도 충분히 멋진 서체를 개발할 수 있다. 일본은 서양 문물을 일찍 받아들여서 펜의 역사가 오래됐고 일본 글씨에 맞는 유려한 서체도 많이 개발했다. 아직 한글은 그런 부분이 아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서체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펜글씨를 기가 막히게 잘 쓰셨다. 볼펜처럼 꾹꾹 눌러쓰는 게 아니라 붓처럼 종이에 얹어 흐르듯 쓴다. 한글도 손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길을 닦아 줄 필요가 있다.”

-손 글씨의 매력은 무엇인가.
“기타 치는 사람이어서 평생 손을 사용했다. 모든 예술은 손을 사용한다. 악기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다. 손 글씨의 매력은 예술의 도구인 손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악기 연주는 남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손 글씨는 그런 게 없다. 나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예술이랄까.”
김씨는 백팩에서 오선지와 필통을 꺼냈다. 펜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년필들이 보였다.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40년대에 만들어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36. 손글씨의 매력을 한껏 뽐낼 수 있는 연성(軟性) 니브(nib)가 달린 아름다운 만년필이다. 또 다른 것은 미국 ‘셰퍼(Sheaffer)’가 20년대에 만든 제품. 간결한 모양의 금빛 클립과 하드러버 배럴(몸통)에 새겨진 격자무늬가 미려하다.

-갖고 있는 펜은 몇 개나 되나.
“100개쯤 되는데 주로 오래된 것들이다. (몽블랑 136을 집더니) 옛날 펜들은 니브 끝이 이렇게 벌어져 힘을 얼마나 주는지, 얼마나 오래 획을 긋는지에 따라 잉크가 흘러나오는 게 달라진다. (셰퍼 만년필을 보여 주며) 이 펜은 니브 끝이 더 많이 벌어진다. 감(感)이 생기면 내 뜻대로 움직이는 친구가 된다. 요새는 아예 캘리그래피용 니브가 있지만 그건 요즘 생긴 거지. 예전 만년필들은 모두 캘리그래피가 가능했다.”

-요즘은 필압(筆壓)을 정확히 인식하는 태블릿 마우스나 태블릿 PC도 있는데.
“집에서 가끔 컴퓨터로 태블릿 마우스를 사용하긴 한다. 수없이 고칠 수 있는 게 재미있긴 하다. 레이어를 쌓아 중간에 수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펜을 잡고 종이의 마찰을 느끼는 손 글씨가 더 좋다. 다양한 잉크를 쓰는 것도 매력적이다. 잉크마다 ‘신(sheen·광택)’이란 게 있다. 빛에 비춰 보면 영롱한 빛깔을 내고 응고되면서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일은 많지 않겠다.
“어쩔 수 없을 때, 편리하게 사용할 때 컴퓨터로 글을 쓰기는 한다. 하지만 답답한 건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거다. 악보를 밴드 멤버들에게 나눠 줄 때도 손으로 그리면 어떤 부분은 진하게 쓰고, 동그라미를 그려 강조하기도 하고 화살표를 죽 긋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컴퓨터로 악보를 쓰면 밋밋하다.”

-호텔 객실에 있는 메모지를 수집한다고 들었다.
“좋은 호텔에는 좋은 종이를 비치해 둔다. 좋은 호텔일수록 메모지에 글을 써 보면 잉크가 많이 번지지 않고 잘 써진다. 옛날 방식으로 만든 종이다. 최근 발리의 리조트를 갔다왔는데 최고의 종이를 가져다 놨더라.”

-컴퓨터로 글 쓰는 데 익숙한 요즘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손으로 글을 쓰는 건 자기와의 대화다. 또 손에는 큰 마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 연인을 어루만지는 손. 손 글씨에는 마음으로 전달되는 염원 같은 것이 있다. 젊은 세대들도 이런 것들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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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