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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 속 믿음 위해 목숨 바친 그들 위하여 …

10일 오전 경기도 여주시 옹청박물관에서는 사제·신자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현대 순교자 시복·시성을 위한 현양(顯揚) 정자·동산 기공식’이 열렸다. 한국전쟁 전후 신앙으로 인해 핍박받았던 118위가 그 대상이다. 박물관 측은 관내 정자와 동산 외에도 ‘신약관’(오른쪽 위) 건물 2층을 현대 순교자 기념관으로 만들어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최정동 기자
시복(諡福)이란 가톨릭에서 성덕이 높아 공경할 만한 사람을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것이다. 복자는 교황이 최종 승인하는 데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보통 20년 이상 걸린다. 복자의 다음 단계는 성인(聖人)인데 시성(諡聖)은 성인으로 추대함을 뜻한다.

 10일 오전 경기도 여주시 옹청박물관에서는 ‘현대 순교자 시복·시성을 위한 현양 정자·동산 기공식’이 열렸다. 현대 순교자란 한국전쟁 등 격변기 우리 현대사 속에서 신앙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지칭한다. 2002년 설립된 옹청박물관은 개관 12주년 기념 행사로 이번 사업을 기획했다. 이곳은 인천 가톨릭대학 초대 총장이자 신부인 최기복(69) 관장이 한국 전통과 그리스도 정신을 융합해 선보이고 있는 일종의 예술 치유 공간이다.

 “한국 현대 순교자들,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이들의 시복이 남북한 화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화창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건물 앞 중앙공터에서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의 나지막한 기도문이 울려 퍼졌다. 100여 명의 신도가 모인 경건한 분위기 속에 성수 예절이 치러졌고, 이어 최 주교와 사제들이 동시에 삽을 들었다.

전통·그리스도 정신의 융합 옹청박물관
박물관 측이 현대 순교자에 초점을 맞춘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올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해라는 점이 먼저 고려됐다. 교황은 지난 8월 16일 한국 천주교 사상 세 번째 시복식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집전한 바 있다. 대상이 된 124위의 복자는 모두 조선시대 말 순교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복자가 되면서 이제 현대 순교자들의 시복에 힘을 모을 때가 됐다는 설명이다.

 또 올해는 한국 최초의 해외 선교사였던 김선영 요셉(1898~1974) 신부의 순교 40주년이 되는 해다. 김 신부는 1930년 중국으로 파견돼 만주·하얼빈·옌볜 등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외국인 추방 명령을 받지만 이를 거부하다 미국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15년 옥살이를 했고 결국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선종했다.

 이번에 시복·시성 대상이 되는 ‘현대 순교자’는 김 신부를 포함해 118위다. 2009년 주교회의가 실시한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시복 조사’로부터 선정된 80인, 그리고 2007년 베네딕도회 소속으로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순교자 38위를 합친 것이다.

 최 관장은 “국내에서 현대 순교자 현양 사업이 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10년 내에 시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전했다. 박물관 측은 관내 정자와 동산 조성 외에도 2층짜리 신약관 건물 일부를 현대 순교자 기념관으로 꾸며 그들의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순교자를 기리는 동상과 조각 작품도 함께 설치한다.

박물관 일대 유네스코 유산 등재 추진
예약제와 회원제로 운영되는 옹청박물관은 독특한 공간이다. 옹기 동산과 청학 박물관을 줄여 이름을 붙였는데, 청학은 98년 세상을 뜬 이청학 신자의 후손들이 박물관 설립 자금을 봉헌한 데서 비롯됐다. 9917㎡(약 3000평)의 너른 잔디밭 언덕 위에 한옥 세 채가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느 전통 가옥과는 사뭇 다르다. 옛 가옥 자재를 다시 이어 붙여 지었다는 건물은 십자 형태로, 모서리마다 내부에 굵은 기둥이 설치돼 있다.

 모양새만큼이나 색다른 것이 전시물이다. 옹기와 토기, 청자·백자 같은 전통문화 유산을 건물 안팎에 배치하면서 구약·신약 성서를 상징하는 나전칠화 작품을 천장과 기둥 곳곳에 붙여놨다. “회개하라 구세주가 오신다”고 외친 세례자 요한의 부르짖음을 전통 자개로 만든 ‘포효도’(마르코 복음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마누엘의 의미를 담은 ‘인천도’(마태오 복음서)가 대표적이다. 현재 성경 73경 나전칠화 작품과 도자기류 문화재 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모든 작품 제작은 김경자 한양대 명예교수와 무형문화재 손대현·김의용·강정조 선생이 맡고 있다.

기공식 사전 행사로 열린 성경 작품 축복식에서 최기복 박물관장이 성경 내용을 묘사한 나전칠화 7점을 설명하고 있다.
 10일 기공식에 앞서 신약 성경을 주제로 한 작품 5점과 사도기둥 작품 2점이 새로 공개됐다. 전통의 오방색을 적용하고 그림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성경의 중요 테마를 녹여냈다. 최 관장은 이런 시도에 대해 “이것이 가톨릭이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단언했다. 유교와 불교가 이 땅에서 토착화한 것처럼 천주교 역시 우리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옹청박물관은 한국 예술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두 가지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나는 로마 교황청에 영구 보존될 나전칠화 작품을 제작하는 일.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시복식의 표어였던 ‘일어나 비추어라’를 제목 삼아 내년까지 작업을 마칠 예정이다.

 다른 하나는 박물관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박물관 설립 초기부터 주문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문화유산등재추진위원회(위원장 사공일)는 박물관뿐 아니라 박물관이 있는 여주시 산북면 전체를 등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변 해여림 식물원은 물론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였던 주어사까지 담아낸다는 의미다. 최 관장은 “이탈리아의 중세 도시 아시시가 성 프란치스코와 함께 조명받는 것처럼 마을 전체가 하나의 성지가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여주=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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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