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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마이웨이] 관객 4명 놓고 시작한 ‘미친 짓’ 세계 속 K아트가 되다

김진규 감독이 서울 마포구에 있는 김미경 대표의 집필실에서 손전등을 이용해 빛으로 그림을 그려보이고 있다. [사진작가 김도형]
한 남자가 목탄을 들고 하얀 도화지 앞에 섰다. 종이에 검은 목탄이 닿는 순간, 먹선이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지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절벽이 나타나고 정자가 세워지는가 싶더니 거대한 암벽 속에서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든 것을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2분.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명이 꺼지고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림 속 폭포에서 정말 파란 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관객들이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낸다. 무대 위에서 이런 놀라운 일을 연출해내는 이는 바로 세계 최초로 ‘드로잉쇼’를 만든 김진규(45) 예술감독.

드로잉쇼는 말 그대로 ‘그림 그리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는 쇼다. 물과 기름이 섞이는 마블링 기법을 이용해 고흐의 해바라기를 그리기도 하고, 캔버스에 찍은 점 하나가 춤추면서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드로잉쇼는 2007년 초연 이래 누적 관객이 1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 일본·중국·호주 등에서 K팝을 잇는 K아트로 주목받고 있다.

무대 올리기까지 10년, 일주일 만에 매진
시작은 농담처럼 가벼웠다. 김진규 감독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림에 대한 풀리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나만의 예술을 하고 싶다는 목마름이었다. 그 갈증을 이기지 못해 매일 술을 마셨다. 흥이 올라 춤추며 그림을 그리던 그를 보고 친구가 혀를 차며 말했다. “쇼하고 있네.” 그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꾼 도화선이 됐다.

“그 말이 귀에 확 꽂혔어요. 정말 쇼를 하면 되겠구나.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겁 없이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안 해본 게 없어요. 입으로 물감을 뿜어내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물감도 엄청 먹어봤고, 그림에 불이 붙는 장면을 만들어 보려다 여러 번 불도 냈죠. 100가지의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면 한 개도 못 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는 점점 드로잉쇼에 ‘미쳐’갔다. 한번 연구와 실험에 몰입하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쩌다 술이 생기면 알코올중독자처럼 마셔댔고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원하는 수준의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가난하던 예술가의 살림은 점점 더 궁핍해졌다. 수순처럼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그를 덮쳤다. 공황장애는 일종의 ‘임사 체험’이었다. 몸이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버려서 호흡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끔찍한 공포 그 자체였다. 그의 필살기인 ‘스피드 드로잉’ 역시 잠시라도 공황장애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결국 보다 못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가난한 남자와는 살아도 미친 사람과는 못 살겠다며.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정말 죽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것이다. 그 직전 그는 온몸을 울리는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메시지를 들었단다. 다행히 어둠의 끝에서 그는 실낱같은 빛을 발견했다. 눈을 떴을 땐 떠났던 가족들이 옆에서 울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후, 그의 인생은 많이 변했다.

“어느 날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데 제가 실실 웃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살아 있어서 숨 쉬는 게 너무 고마운 거죠. 제일 중요한 건데 왜 한 번도 소중하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그 뒤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드로잉쇼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0년. 2006년 대학로에서 드로잉쇼를 처음 공연했을 때 찾아온 관객은 딱 4명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부터 입소문을 타더니 ‘전석 매진’의 기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김진규 감독은 수십 명의 배우와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는 CEO이자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됐다. 모든 것을 걸었던 그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드로잉쇼는 그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개그맨을 꿈꿨을 정도로 그는 ‘끼’가 넘치는 사람이다. 말도 재미있게 잘하고 무용수처럼 몸을 쓸 줄 알며 배우 같은 연기력도 갖췄다. 작업실에만 묻어두기가 아까울 정도로 원하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재능이 탁월하다. 이 모든 것은 이미 그 안에 이미 잠재돼 있던 재료들이다. 그러나 내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걸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얼마나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골라 쓸 것인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 답을 찾으려면 자신을 깊게 끝까지 보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숨 막히는 슬럼프의 심연을 오랜 시간 헤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드로잉쇼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정’이다.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지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이는 무대 뒤에서 드로잉쇼를 만들어가는 과정 역시 포함된다. 배우나 창작자가 매 순간을 즐기고 살아가야 관객들에게 그 카타르시스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우들의 연습시간은 일종의 ‘미술치료’ 시간이 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드로잉쇼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미술 전공자들이 아닌 일반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 쇼에 합류하면 몇 달 만에 멋진 그림을 척척 그려낸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줄 뿐이죠. ‘우리 모두는 원래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겁니다. 그러면 한두 달 만에 기가 막힌 표현들이 나와요. 배우마다 어떤 색깔과 표현이 그림을 보다 건강하게 만들어줄 지도 고민합니다. 그런 식으로 내면의 막혔던 부분이 풀리니까 저절로 멋진 퍼포먼스가 나오는 것이죠.”

간절히 원했던 길, 시간 지날수록 행복
그의 쇼에 치유 받는 것은 배우들뿐만이 아니다. 몇 년 전 도쿄에서 공연하는데 한 회장님이 그림을 꼭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본래 그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그림을 찢어버리곤 했다. 그림을 소유하는 순간 가슴 속 감동이 사라져 버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진규 감독은 회장을 만나 미완성인 그림을 사려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 미완성 그림이 바로 제 인생입니다. 이 나이가 되어 돌이켜 보니 인생이란 당신의 그림처럼 한 점에서 시작해 찰나로 끝나더군요. 저 그림이 꼭 나와 같아 위로를 주니 제게 그 그림을 줄 수 없겠습니까?”

그 얘기를 듣는데 그림을 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단다. 오히려 자신의 그림에 위로받았다는 그분께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몇 년 후 돌아가신 그분은 바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드로잉쇼가 현란한 ‘그림 테크닉’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이 된 것은 무대에 그의 인생 전체를 담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람이 이유 없이 잘나갈 때는 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갈 때가 많다. 훈풍이 너무 밀어줘서 물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10년간 발목을 잡히면서도 그 길을 기어이 갔다면 그 길은 진정한 내 길이 맞다. 한 걸음씩 푹푹 빠질 때마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대답했을 것이므로. 이런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하다. 나이 오십에 이 길이 맞나를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뱃속 든든한 게 없기 때문이다. 힘겨웠던 세월만큼 깊게 물든 이 남자의 미소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가보다.


김미경 더블유인사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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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