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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음악 읽기] 격렬함에 정신 번쩍 … 삐따기 위한 안정제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28세의 쇼팽(1810~1849). 루브르박물관.
내게는 삐딱하다는 평판이 꽤 따르는 편이다. 소영웅주의로 앞뒤 분간 못하는 청소년기도 아니고 이 나이에 웬일인가 싶다. ‘삐따기’로 보는 시선 앞에서 나는 말 없이 표정으로 항변한다. 내가 삐딱한 게 아니고 당신이 기울어진 저울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이성적이고 나름 정의롭고자 하는 태도에 대해 왜곡된 상식을 들이미는 것이라고.

삐따기 시선은 대체로 정치적 사안 때문에 받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령 오랫동안 주장해 온 나의 효도 배척 주장은 언제나 반박에 직면한다. 생방송에서 말했다가 미친 놈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녹화일 경우는 예외 없이 통 편집을 당해왔다. 늙고 병드신 부모님과 조상님을 극진히 섬기고 공경하자는 미풍양속에 왜 딴죽을 거냐고? 뭔가 심성이 크게 삐뚤어진 것 아니냐고?

효도라는 관념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라고 생각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 관념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희귀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내리사랑’이라 하듯이 사랑은 윗세대에서 아랫세대로 내려가는 것이 생명체의 진화와 순환원리에 부합한다. 부모세대에 쏟을 정성과 자원을 자기 자녀에게 투여해야 세대의 이행과 성장이 원활해진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효를 부각시킨 것은 왕정시대 군사부일체를 통한 가족국가를 기획했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사회적 정체와 진취성 결핍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공화정이 수립되고 시민사회가 등장한 지도 몇십 년인데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효는 중심적 가치로 선양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30~40대 젊은 층이 모험적 도전으로 행사해야 할 온갖 사회적 권력이며 재부가 노령층에게 집중돼 있다. 이른바 선진국의 국가원수 대부분이 40대 나이에 등장하고 의원·장관 등 요직을 40~50대가 주로 차지하는 데 반해 우리는 스스로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 경륜의 노령층이 안정적으로 세상을 이끈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은 신화다. 상속받은 2세, 3세 말고는 젊은 창업자, 젊은 기업 오너의 꼴을 볼 수가 없다. 노령층이 모든 걸 다 갖고 있고 모든 결정권을 휘두른다. 온당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나는 뿌리 깊은 효문화와 경로우대사상이 상위 중진국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안이 이것뿐이겠는가. 숱한 논쟁 가운데 소수자로 몰려 곤혹스러운 경우가 참 많다. 스스로 옳다고 믿건만 별난 인간 취급을 받을 때 피난처는 역시 홀로 충만할 수 있는 음악이다. 내 울화통 처리의 선율 가운데 익숙한 곡이 쇼팽의 연습곡(에튀드) op. 10번 가운데 제12곡 일명 ‘혁명’이다. 피아니스트들은 이 곡을 두고 ‘노가다 하는 곡’이라고 우스개 삼는다. 매우 강한 포르테로 시작해 손이 꼬여들도록 왼손, 오른손이 교차로 옥타브를 넘나들어야 한다. 언젠가 누구 연습실에서 피아노에 턱을 괴고 이 곡 연주를 들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혁명’의 배경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쇼팽이 독일에 체류할 때 고국 폴란드에 러시아군이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 폭발하며 단숨에 썼다는 것. 그런데 우국지사와 쇼팽의 평소 이미지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 결핵으로 기신기신하는 몸에 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성정을 지녀 뭇 여인들이 모성애로 사랑을 바쳤다는 인물. 그 때문에 더욱 쇼팽 피아노곡은 연주자가 하류냐 상류냐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조금만 방심해도 그 곡들은 호텔 라운지 무드음악처럼 변질되기 십상이다. 특히 쇼팽 야상곡처럼 뽕짝과 걸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곡도 드물다.

내가 발견한 최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는 이보 포고렐리치(56·작은 사진)다. 그의 쇼팽은 뽕짝의 대척점, 그러니까 쇼팽의 헤비메탈화라고나 할까. 반면 한때 인기 있던 유명 연주로 아담 하라셰비치의 베스트셀링 레코딩들은 예쁘게 하기를 넘어 허무해지기까지 한다. 사적 편견이겠지만 감미로운 쇼팽은 질색이다.

쇼팽의 인생 행보는 별쭝스러운 삐따기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귀족의 살롱에서 연애하기 바빴고 그중 작가 조르주 상드와의 도피 행각은 그의 생애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일화다. 그런 인물의 울화통 음악이라니 각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약하고 겁 많은 심성을 타고났는데 어쩌다 보니 세상 상식과 잘 맞지 않아 삐딱거려야 하는 사람에게 쇼팽의 혁명은 꽤 맞춤한 안정제다. 세게, 더 세게, 누가 가장 세게 혁명으로 피아노를 부수는지 찾아봐야겠다.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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