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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시대공감] 노벨상에 냉정해야 할 이유

노벨상 발표의 계절을 맞아 사람들은 숨죽이고 결과를 기다리며 박수 칠 준비를 갖춘다. ‘간택된 별’의 나라는 민족적 축제를 벌인다. 매년 가을이 되면 지구촌 스타 탄생의 이벤트가 펼쳐지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노벨상 수상이 항상 경사는 아니다. 중국은 최근 여러 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2000년 노벨 문학상은 중국 작가 가오싱젠에게 주어졌다. 1987년 프랑스로 망명한 반체제 성향의 작가였다. 중국으로선 반갑지 않은 수상 소식이었다.

필자는 당시 베이징외국어대에 재직했는데 가오싱젠은 이 대학 프랑스어과 출신이다. 웬만하면 흉상이라도 세워 동문의 노벨상을 자축해야 할 텐데, 교내에서 가오싱젠은 침묵과 회피의 대상이었다. 호기심에 이 작가의 대표작 영혼의 산을 읽어 보았다. 훌륭한 소설이지만 솔직히 노벨상 수상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문학상 선정에서도 서구 정치의 입김을 느꼈다.

그로부터 10년 뒤 중국인이 다시 노벨상을 받았다. 2010년 평화상 수상자로 반체제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결정된 것이다. 문학상은 본질적으로 주관의 영역이고 심사진의 취향이 결정한다. 하지만 평화상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

특히 류샤오보의 수상은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와 독재적 성격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결과를 낳았다. 1989년 달라이 라마에게 평화상을 준 데 이어 또다시 서방이 중국에 ‘삿대질’을 한 셈이었다.

중국 정부는 강력히 반발했고 한국을 포함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 류샤오보 시상식 불참을 요구했다(한국은 이를 일축하고 관례대로 정부 관리들을 참석시켰다). 중국과 노르웨이의 외교 관계도 급랭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류샤오보는 감옥에 갇혀 있고,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는 데 거침이 없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평화상 수상자 가운데 미국 정치인이 눈에 띄게 많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러일전쟁 직후 양국 간의 평화교섭을 중재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6년)과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한 윌슨 대통령(1919년)을 비롯해 헐(45년)·마셜(53년)·키신저(73년) 등 국무장관과 고어 부통령(2007년)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2009년)이 모두 수상자다. 이들은 대부분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는 이유로 상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그만큼 많은 전쟁을 일으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2008년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미국의 흑백 화합에 기여했고, 이라크 철군 공약을 지켰다는 이유로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최근 이슬람국가(IS)의 급부상으로 미국은 이라크뿐 아니라 시리아까지도 공습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빠졌다. ‘전쟁광’이라 비판받은 전임자 조지 W 부시보다도 더 큰 전쟁을 벌이는 오바마가 된 것이다. 이미 준 평화상을 빼앗을 수도 없으니 노벨상의 명성에 상처만 입힌 셈이다.

평화상을 수상하고도 자국에서는 욕을 먹는 대표적 인물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다. 그는 냉전을 종결시켜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199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러시아에서는 제국을 산산조각 낸 파괴자로 통한다.

그뿐인가. 노벨 경제학상은 엄밀한 의미의 노벨상이 아니다. 공식 명칭이 ‘노벨을 추모하는 스웨덴은행의 경제학상’인 이 상은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노벨상이 가진 국제적·과학적 명성에 스웨덴은행이 경제학을 내세워 편승한 셈인데, 심각한 문제는 학술적 편향이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미국과 영국 경제학자들이고 방법론적으로도 계량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 1997년 경제학상 수상자를 앞세운 헤지펀드 LTCM이 이듬해 투자자들의 자금을 날리고 망했다는 일화는 금융계의 전설이다.

노벨상이라는 제도는 서방의 핵심적인 소프트파워다. 알프레드 노벨은 훌륭한 과학자이자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노벨상을 결정하는 기관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학술단체와 위원회다. 노벨상을 넘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약소국의 장점인 중립성과 객관성을 살려 글로벌 소프트파워로 발전시킨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가 전략일 것이다. 별만 보지 말고 손가락과 손의 주인을 검토해보자는 말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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