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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10대는 힙합 스타일 ① 랩 작사 배워보기

힙합 음악에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열정을 다해 꿈을 이룬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왼쪽부터 일일 래퍼가 되어 본 엄진용(성남 보평초 6)·이서영(화성 솔빛초 5) 학생기자.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메시지 담아 시처럼 노래하니 나만의 랩 나왔죠

‘쿵, 쿵, 쿵, 쿵.’ 온 몸을 울리는 음악에 맞춰 손을 휘저으며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가사를 흥얼거리는 래퍼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입니다. 잔잔한 발라드나 신나는 K-POP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죠. 미국의 초창기 힙합 그룹인 퍼블릭 에너미의 래퍼 척 디는 랩을 가리켜 ‘흑인들의 CNN(미 방송사)’이라 말했습니다. 억압받던 흑인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음악이란 뜻으로, 당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약 30년이 지난 요즘은 다릅니다. 누구나 쉽게 힙합을 감상하며 즐기고, 심지어 직접 랩을 만들 수도 있답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랩 가사 쓰는법을 배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김봉현 대중음악평론가(가운데)에게 랩 가사 쓰는 법을 배운 이효원·엄진용·이서영·이민형·신현·전성민 학생(왼쪽부터). 각자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이 담긴 랩 가사를 칠판에 옮겨 적었다.

지난 8일 서울 홍대 앞 복합문화공간 ‘엑스플렉스’에 소중 학생기자들이 모였다. 각자 번쩍이는 모자와 선글라스, 헐렁한 옷을 입고 나름대로 힙합 정신을 표현한 채 손에는 작은 수첩과 펜을 꼭 쥐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가 강의실로 들어왔다. “오늘 모인 친구들이 만들 랩 가사가 기대됩니다. 반가워요.” 김봉현(31) 대중음악평론가가 활짝 웃으며 학생기자단을 반겼다.


VERSE 1: 자신의 서사를 노래하라

지난해 한국 래퍼들 사이에서 꼬리를 물고 번진 디스전(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을 랩으로 비판하는 것)이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왜 저렇게까지 자기 자랑을 하지 못해 안달일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금목걸이를 찬 래퍼가 고급 승용차 위에서 허세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모습엔 거부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디스전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강의에 앞서 뮤직비디오를 시청했다. JAY-Z와 50cent 등 세계적인 래퍼들의 노래였다.

“래퍼들은 왜 다들 잘난 척을 하느냐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자수성가(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함)라는 서사(이야기)가 숨어 있답니다.”

JAY-Z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소년 시절을 겪었지만 랩으로 세계적인 거부가 된 스타다. 50cent 역시 빈민가에서 총에 맞아 죽을 뻔했던 유년 시절 실화를 랩으로 표현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실력파 래퍼다. 둘의 공통점은 고난·역경을 이겨낸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했다는 것이다. 김 평론가는 랩 가사를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거나 미래의 꿈을 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랩을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성찰(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을 하는 것이다.

원래 랩은 미국 흑인들의 문화에서 출발했다. 디스코 음악이 유행하던 1980년대의 미국 흑인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뉴욕 브롱스 게토(빈민촌)의 길거리에서 비참한 현실을 위안하려 그들만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멜로디(음의 높낮이)가 없어 빠르고 격렬하지만 때로는 슬프고 비장한 느낌을 주는, 노래 아닌 노래였다. 랩 특유의 라임(운율)과 플로우(흐르듯 노래하는 방식)가 흥을 더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 대중들 덕분에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랩의 위상은 높아졌다.

이런 랩의 특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래퍼들은 남의 도움으로 성공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한 래퍼 도끼가 무대에 돈뭉치를 들고 나와 랩을 하고, 트위터에 자신의 연봉이 수억 원에 이른다고 공개한 데엔 이런 배경이 있다.

"도끼는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그칩니다. 연예기획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 지금에 이르렀죠. 그런 배경을 아는 팬들이 보기에는 도끼의 행동이 단순한 돈 자랑으로 보이지 않고 멋있게 느껴지는 겁니다.”

래퍼들의 과시와 자랑은 결코 쉽게 성공하지 않았다는 표현의 일종이다.

“악조건 속에서 성공한 이야기를 노래하면서 자신의 랩을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랩의 매력이죠.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요. 랩은 꿈을 찾아가는 음악입니다.”


VERSE 2: 시와 랩의 공통점 찾기

랩을 쉽게 이해하려면 시의 감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시와 랩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에 운율이 있다면, 랩에는 라임이 있다. 두 구절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기능을 갖춘 운율을 통해 낭독을 멋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원활한 라임은 랩의 플로우를 유연하게 만든다.

시의 경우 3음보율의 구조를 갖춘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에서도 랩의 라임을 찾아볼 수 있다. ‘돌담에/속삭이는/햇발같이//풀 아래/웃음짓는/샘물같이’에서 ‘~하는 ~같이’가 동일하게 반복되며 리듬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시의 운율을 응용해 간단히 랩을 만들어 볼게요. 너의 이상/나의 상상/엄마의 밥상. 어떤가요?”

김 평론가가 즉석에서 만든 짧은 랩의 각 어절 끝에는 ‘상’이라는 말이 공통으로 반복됐다. 흔한 소재에 라임의 요소를 추가해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시를 랩처럼 낭독하는 시인도 있다. 캐나다의 시인 쉐인 코이잔(Shane Koyczan)은 지난해 테드(TED) 강연에서 따돌림 당하는 청소년을 위로하는 내용의 시 ‘To This Day(오늘날까지)’를 랩을 하듯 낭독해 큰 감동을 줬다. 김 평론가는 “랩에 험한 말이 자주 쓰이긴 하지만, 이런 요소가 내용의 전달력을 강하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VERSE 3: 랩의 정신 느껴봐

랩의 정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랩 가사에는 자수성가의 내용도 있지만, 자유를 만끽하라거나 가족을 위하자는 내용도 있다. 경쟁자를 비판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며 사랑·이별·성공·실패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김 평론가는 이를 두고 “요즘 시대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랩”이라고 강조한다. 가족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패밀리즘,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여유,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의 정신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직접 랩 가사를 쓰는 것으로 강의는 마무리됐다. 학생기자단은 잠시 창작의 고통에 힘겨워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만의 랩 가사 쓰기에 열중했다. 김 평론가는 “랩을 한 때의 유행으로만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즐거운 놀이처럼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봉현은… 힙합에 관심이 많은 대중음악비평가. 『힙합: 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등의 저서를 냈다. 청소년 대상 힙합 책도 발간을 앞두고 있다. 팟캐스트 ‘김봉현의 힙합 초대석’을 진행하고, 힙합 그룹 가리온과 신인 래퍼 등용문 ‘모두의 마이크’를 주관한다. 김경주 시인과 ‘랩과 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서울 동교동 출판문화복합공간 엑스플렉스(xplex.org, 02-334-1412)에서 15일부터 7주간 ‘나의 랩 자서전 쓰기’ 강의를 한다.



랩 용어설명
HOOK 곡 중간이나 끝에 반복되는 일종의 후렴구
VERSE(노래의) 절. 시를 뜻하기도 하는데, 랩 가사가 시와 비슷하다고 해서 사용된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동행취재=신현(고양 강선초 6)·엄진용(성남 보평초 6)·이민형(서울 잠신초 5)·이서영(화성 솔빛초 5)·이효원(고양 강선초 6)·전성민(수원 매여울초 6)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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