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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억만장자들의 자산 관리인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9월의 풍경이다. 글로벌 시장에선 불신이 패닉을 낳았고, 패닉은 경제적 죽음(파산)을 요구하고 있었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이미 패닉의 파도에 휩쓸렸다. 패닉은 ‘포스트 리먼’을 요구했다. 골드먼삭스가 다음 희생양으로 떠올랐다.



0.001% 부자 돈만 굴린다
버핏이 믿는 남자, 트롯

 난세의 최후에는 늘 영웅이 출현하는 법.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영웅으로 떠올랐다. 버핏과 골드먼삭스의 협상은 신속했다. 발표문은 ‘버핏이 50억 달러를 골드먼삭스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한 문장이었다. 불신과 패닉이 썰물처럼 밀려났다. 금융역사가인 찰스 엘리스는 저서 『골드먼삭스』에서 “운명의 순간, 이름만으로도 시장에서 믿음을 사는 버핏의 자금을 끌어온 인물이 있었다. 바이런 트롯(56)이다. 그가 왜 ‘버핏의 투자은행가’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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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롯은 거대한 자금 풀과 비인격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21세기 금융시장에서 보기 드문 고전적인 금융가다. 계약과 법규의 의무를 뛰어넘어 고객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금융 신사도’가 무엇인지를 아는 플레이어다. 금융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그는 ‘고도 금융(Haute Banque)’ 전문가다. 고도 금융은 19세기까진 교황·황제·귀족·정부의 채권 등을 인수·유통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운용하는 서비스를 지칭했다. 요즘엔 억만장자들을 위한 ‘토털 금융 서비스’로 통한다.



 트롯은 원래 27년간 골드먼삭스에서 근무했던 금융인이었다. 그는 2009년 골드먼삭스를 떠나 사모펀드 BDT 캐피털 파트너스(BDT)를 설립했다. 인수합병(M&A) 등 부유한 가문의 기업 운영과 관련한 자문·조언과 자산 운용을 맡기 위해서다. 사모 펀드를 조성해 억만장자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직접 투자하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으로 BDT가 운용하는 돈은 63억 달러에 이른다. 펀드 규모는 52억 달러 정도다. 1000억 달러를 훌쩍 넘는 대중적인 펀드와 견주면 규모는 작다. 하지만 질이 다르다. 블룸버그는 “세계 30대 부자 중 적어도 10여 명과 관련된 거래에서 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트롯의 펀드는 ‘자산운용업계의 롤스로이스’인 셈이다.



 트롯에게 누가 돈을 맡기고 있을까. 세계에서 둘째로 돈이 많은 가문인 찰스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가 우선 눈에 띈다. 두 형제는 석유정제회사 등을 운영하는 코크인더스트리의 소유주다. 형제는 트롯이 투자했던 산업용 펌프 생산업체인 콜팩스의 주식 160만 주를 2012년 사들였다. 하얏트호텔 창업주인 제이 프리츠커와의 관계도 그렇다. 프리츠커가 1999년 세상을 떠난 뒤 벌어진 상속분쟁으로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트롯은 프리츠커가가 보유한 다른 제조업체 마몬의 지분 매각 작업을 주도했다. 2007년 프리츠커가는 버핏에게 마몬의 지분 60%를 45억 달러에 넘겼다. 그리고 골드먼삭스와 세계 최고 부자인 월튼가(월마트 소유)가 10억 달러를 하얏트 그룹에 투자케 했다. 트롯은 하얏트 그룹 이사회에 참여했다.



 19세기 투자은행가들이 그랬듯이 트롯도 베일에 싸여 있다. BDT는 웹사이트도 없다. 트롯은 대중매체와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다. 거래도 은밀하다. 상류층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지는 거래가 대부분이다. 트롯은 현대 금융시장의 주역인 트레이더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다. 트레이더들은 막대한 자금으로 채권·주식·원유·외환 등에 베팅한다. 하루 살이 불나방처럼 움직이는 군상들이다. 반면 트롯은 고객과 오랜 관계를 중시한다. 고객의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거래를 진행한다. 한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여긴다. 이 세계에선 거래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금융 신사도)가 필수다.



 이런 금융 신사도의 유전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장들이 나타난다. ‘금융 황제’ 존 피어트먼 모건(1837~1913)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자금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헨리 데이비슨(1867~1922) JP모건 파트너 등이 대표적이다. 모건스탠리 공동창업자로 60~70년대 미국 다국적 기업의 자금조달을 장악했던 해럴드 스탠리(1885~1963)와 시드니 와인버그(1891~1969) 전 골드먼삭스 CEO 등이 그 계보를 이어 왔다.



 하지만 요즘 금융시스템이 거대화·비인격화하면서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재능이 뛰어난 투자금융가가 개입할 여지는 점점 줄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전 세계 0.001% 부호들의 돈이 몰리는 투자 허브(investment hub)를 구축한 트롯은 보기 드문 존재다. 트롯은 최근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펀드매니저 1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트롯의 금융서비스를 받으려면 비용도 많이 들여야 한다. 우선 BDT 클럽의 입회비가 만만치 않다. BDT 캐피털 펀드의 최소 투자비용은 2500만 달러다. 투자 기간도 10~12년이다. 일반 사모 펀드보다 배나 길다. 그럼에도 부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지난해 말 현재 90여 명이 BDT 캐피털 펀드의 투자 계약서에 사인했다. BDT의 고객 목록에는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가문 1~3위인 월튼가, 코크가, 마스가(제과업체인 마스(Mars) 소유)가 포함돼 있다. ‘자산의 수호자’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트롯이 이끄는 ‘그들만의 리그’의 목록은 더욱 화려해질 전망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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