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인내천 … 최제우의 애민 사상은 오늘도 흐른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1894)이 일어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동학혁명은 농민이 중심이 돼 부패한 정부에 맞서 봉건적 사회 질서를 바꾸려 했던 개혁운동이다. 동학 하면 사람들은 고부와 전봉준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그 사상이 경주에서 태동되었다는 사실은 잊히고 있다. 이에 경북도는 우리 고유 사상인 동학을 재조명하고 나섰다. 그 현장을 찾아 시리즈로 짚어 본다.



[동학혁명 120주년, 그 현장을 찾아서] ① 경주 용담정
1860년 도 깨우쳐 포교 나서고
'혹세무민' 죄목으로 체포된 곳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가 용담정에서 심고(心告.마음으로 고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제단 가운데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초상화가 보인다. [프리랜서 공정식]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경주국립공원 구미산(龜尾山) 지구.



 오전 11시 방문객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포덕문(布德門)’이 세워져 있다. 순수 우리 사상인 동학(東學)의 성지로 들어서는 문이다. 포덕문을 지나면 우뚝 선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64) 상이 나타난다. 왼손은 책을 들고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동상을 지나 100m쯤 언덕길을 오르면 이번에는 ‘성화문(聖化門)’에 이른다. 득도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다.



 문을 지나면 왼쪽은 계곡이다. 걷기 좋을 때쯤 계곡 건너편에 정자가 수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용담정(龍潭亭)’이다. 용담정은 바로 동학이 태동한 공간이다.



 동행한 윤석산(67) 한양대 명예교수가 용담정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내부는 어두운데 불이 켜지지 않는다. 빗자루로 주변을 쓸던 관리소 관계자는 얼마 전 공사한 뒤 전기가 끊겼다고 했다. 가운데 제단 뒤로 수운 선생의 대형 초상화가 세워져 있다. 윤 교수가 촛불을 밝히고 청수 앞에서 먼저 마음을 가다듬었다. 참배 의식이다. 왼쪽 벽면에는 수운이 직접 쓴 글씨로 유일하게 남았다는 ‘龜(구)’자가 걸려 있다. 제단 오른쪽에는 수운의 일대기를 그린 10폭 병풍이 쓸쓸히 서있다.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 자락에 위치한 동학의 태동지 ‘용담정(龍潭亭)’. 최제우가 37세 되던 1860년 4월 5일 이곳에서 한울님으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아 동학을 창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14년과 1960년 정자를 복원하고 1974년 새로 크게 지었다. [프리랜서 공정식]
윤 교수가 그림을 차례로 설명했다. 수운은 21세에 구도의 길을 떠난다. 행상 등을 하며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 1855년 수운은 울산에서 하늘로부터 책을 받는다. ‘천서(天書)’다. 그 길로 수행에 들어가 1860년 마침내 용담정에서 도를 깨우친다. 이듬해 수운은 포덕에 나선다. 이후 그가 경주 서천을 지날 때 머리에서 광채가 나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이 성인임을 먼저 알아본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관은 혹세무민의 죄목으로 체포에 나선다. 수운은 쫓기는 몸이 되자 용담정에서 해월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한다. 체포된 수운은 대구로 옮겨지고, 감옥에서 해월은 마지막으로 수운을 만난다. 수운은 국법을 어긴 죄로 끝내 참수된다.



 수운은 용담정의 득도 과정을 포덕문으로 남겼다. 천도인 하늘의 조화로 밝은 덕을 널리 베풀어 보국안민(輔國安民·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하고 백성을 편하게 한다)하는 내용이다. 당시는 오랜 당쟁과 삼정의 문란으로 민중의 고통이 말할 수 없던 때였다. 거기에다 정신적 바탕을 천주교(서학)에 둔 서양이 무력으로 중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수운은 서양의 무력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은 서학에 맞설 정신적인 바탕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동학이라 불렀다. 사람이 곧 하늘이고(人乃天), 사람을 하늘 대하듯 하라(事人如天)는 가르침이다.



 윤 교수는 “수운이 득도한 뒤 체포된 용담정은 동학의 시작과 끝이 다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1974년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용담정 때문이 다. 또 경북은 동학이 창도되고 접주제가 시작 돼 동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구미산은 이렇게 성역으로 조성됐지만 아직은 찾는 이가 적어 낯설게 다가왔다. 백성의 마음을 적시고 농민혁명으로 이어진 용담정의 물은 그래도 계곡을 따라 지금도 흐르고 있었다.



송의호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