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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가난해도 행복한 마을은 있다

이규연
논설위원
The Start. 2008년 여름 어린 윤주(가명·당시 6세)를 만났다. 다방 주방일을 하는 엄마(35), 언니(14)와 함께 여관방에 살고 있었다. 좁은 방 한 칸에 TV·행거·서랍장이 전부였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환기도 안 되는 곳이었다. 엄마의 치아는 대부분 썩어 뿌리만 남아 있었다. 분명, 엄마는 윤주 자매를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처지였다.



 The Process. 삼척보건소에서 독감예방접종과 영양제를 지원받아 방문서비스를 시작했다. 교회 권사의 소개로 보증금 없는 일반주택으로 이사하게 했다. 가족나들이도 종종 주선했다. 엄마에게 통장관리법과 요리법을 가르쳐주었다. 강원랜드복지재단과 동네치과의 도움으로 엄마와 윤주 자매의 치아치료를 할 수 있었다. 심리치료도 병행했다. 윤주에게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연결해주었다.



 The Restart. 가족의 치아는 깨끗해졌다. 엄마는 어린이재단과 방송사의 후원금을 받고 틈틈이 빈 병을 주워 조금씩 수입을 늘려나갔다. 주공아파트로 이사했고 매월 10만원씩이라도 저금을 할 수 있게 됐다. 초등 6학년생이 된 윤주는 학교에서 100점을 받아 오는 날이 점점 늘었다. 매일 두 시간씩 영어학습도 추가로 받는다. 오늘, 윤주가 ‘위풍당당 음악줄넘기’에 참가하기 위해 센터를 찾아왔다.



 강원도 ‘We Start 삼척마을’ 복지조정자 정재선(35)씨가 기록해놓은 ‘윤주 가족 케이스’다. 민관이 함께 나서 가난한 아이의 교육·복지의 출발선을 만들어주자는 ‘We Start 운동’이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2004년 중앙일보 탐사보도 ‘가난에 갇힌 아이들’의 자문에 응한 전문가와 시민운동가들이 만든 민간운동이다. 지난 10년간 전국의 We Start 마을에서 6만6800명의 어린이들이 교육·복지 복합서비스를 받았다. 4680명의 개인과, 중앙일보 등 120개의 기업·단체가 후원자로 나섰다. 삼척마을에서 보듯이 정부와 더불어 지역 치과·보건소·방과후교실·교회·복지단체가 저소득층 아동에게 다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조직화하는 게 이 운동의 특징이다. 아동 자체뿐 아니라 그 가족 환경에도 주목한다.



 최근 무상보육 사업을 놓고 지방정부와 교육감이 ‘복지 디폴트(파산)’를 선언했다. 무상 복지 영역에서 아동복지 논쟁이 벌어진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무조건 돈만 준다고 아이들이 잘 성장하지는 않는다. 엄청난 재정만 쓰고 제대로 된 희망은 주지 못할 수도 있다. 도움이 꼭 필요한 가정의 아이들이 훌륭한 사회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건강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정부의 힘만으로 이룰 수 없는 목표다. 민간이, 마을이 함께 나서야 한다.



 초저출산 국가에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은 다 소중하다. 낙오 위기에 있는 아이들이 당당한 구성원으로 커가게 돌보는 것은 단순 출산장려책보다 훨씬 더 값지고 효과적이다. 점잖은 어른들이 “돈이 없어 애들에게 공짜 돌봄 혜택을 못 주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블랙코미디에서 We Start 마을은 우리 아동복지의 미래를 보여준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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