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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협박에 살인미수까지 갈수록 지독해지는 '악의 꽃'

“천하의 독종, 철면피!”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에서 양어머니 김인화(김혜옥)가 연민정(이유리)에게 던진 말이다.

 ‘왔다! 장보리’의 최고 시청률은 37.3%(닐슨코리아). 드라마 시청률 10%만 해도 ‘나쁘지 않다’는 요즘,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연민정’ 한마디로 설명된다. 그가 이어가는 희대의 악행이 극적 긴장을 유지하는 결정적 요소다.

 연민정은 거짓말과 협박을 밥 먹듯 하고 부모와 자식을 벌레처럼 내치고 욕망을 위해 살인 시도까지 마다 않는 ‘인간 말종’이다. “드라마 역사상 최고 악녀”라는 말까지 나온다. 과연 그럴까. 역대 드라마 중 악녀로 손꼽히는 2009년 SBS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김서형), 2013년 SBS ‘야왕’의 주다해(수애)와 연민정을 비교해 봤다.


 ◆드라마 악녀의 진화= 70~80년대 악녀는 시어머니나 계모의 모습으로 주로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착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신데렐라 언니’나 연적으로 자주 묘사됐다. 그러던 악녀들은 최근 들어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실현하려는 주체적 캐릭터로 변신한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점점 각박하고 그악스러워지면서 드라마 속 악녀의 성격도 더 독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 악녀가 신애리다. 신애리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치명적 여성)’이다. 매력을 무기로 친한 친구의 남편을 빼앗고, 그마저 파멸로 몰아넣는다. 남이 자신때문에 겪는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안위와 자신의 성공에만 목말라 한다. 오죽하면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가족 시청시간대에 불륜과 납치, 과도한 고성과 욕설, 폭행 장면을 내보냈다”며 중징계인 경고를 내렸다.

 ‘팜므 파탈’의 스케일은 주다해에서 극대화된다. 주다해의 눈은 세속적 욕망의 최고봉인 국가 권력을 향한다. 방해가 되는 이를 죽여버린다는 점에서 이전의 악녀와는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 ‘야왕’이 방송되는 날이면 “주다해가 오늘은 또 누구를 죽였나요”라는 질문이 인터넷 게시판에 어김없이 올라왔다. 드라마 전후에 수애가 출연하는 여성복 광고가 나왔는데, 시청자들이 광고주를 걱정할 정도로 비현실적 악녀였다.


 ◆공감을 부르는 악녀, 연민정=연민정의 꿈은 소박하다. 그저 유서깊은 한복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성이 있다. 대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뻔뻔해진다. 물건을 훔쳐놓고는 발뺌하기 일쑤고, 들켜놓고도 다른 사람 핑계 대기 선수다. 제 배 아파 낳은 아이를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다시피 한다. 번듯한 사업가의 아들과 결혼한 뒤에는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친어머니에게 아이를 납치해 해외로 도망가라는 지시까지 한다. 스케일은 크지 않지만, 한치 망설임없이 자식까지 내친다는 점에서 신애리·주다해의 악행을 능가한다.

 독특한 건 연민정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속을 뒤집어놓는 구석을 가진 결점 많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장보리(오연서)는 자신을 괴롭히는 이의 자식까지 데리고 사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순해빠진 여주인공이다. 연민정의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역시 연민정에겐 못 미치지만 신분 상승의 욕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악녀다. 윤석진 교수는 “신애리·주다해와 달리 연민정을 비롯한 ‘왔다! 장보리’의 악역은 이해할 만한 나름의 사연과 자기 연민을 가진 인물들이라 시청자가 공감할 구석이 많다”고 말했다.

  신애리·주다해의 결말은 비참했다. 신애리는 자살, 주다해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악녀 계보를 이은 연민정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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