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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성장 체념론을 경계한다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한 지 두 달이 훌쩍 지났건만 경기는 여전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계속되는 가운데 주가마저 고꾸라졌다. 세월호 여파와 국회의 장기공전으로 투자와 소비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대외여건마저 악화되면서 수출마저 위축될 위험에 직면했다. 유로존의 경기침체는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수퍼달러와 엔저(低)가 합작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신흥국들을 뒤흔들고 있다. 한마디로 안팎에서 경기회복의 발목 잡는 일들만 벌어지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슬그머니 성장 체념론이 고개를 든다. 아무래도 경제성장률을 회복시키기는 틀린 게 아니냐는 회의론이다. 출범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 지난 최경환 경제팀으로선 너무 조급한 판단이 아니냐며 억울해할 법도 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만 1년 반을 허송했고, 이명박 정부부터 따지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년째 침체가 이어지고 있으니 지칠 때도 됐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니 경제회생을 고대해온 국민들 입장에선 피로감이 쌓일 대로 쌓인 것이다.

 그러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진다는 것과 저성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기대감이 꺾이는 것은 단순히 경기상황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심정적 평가일 뿐이지만, 저성장을 용인한다는 것은 경제정책의 목표까지 바꿔야 할 심각한 경제인식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도 성장률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경기 부양책은 모조리 거둬들이고 보수적인 안정화 정책을 써야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이나 체질 개선도 굳이 애써서 추진할 필요도 없다.

 사실 성장 체념론이 어제 오늘 이야기만은 아니다.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당선된 MB정부조차 출범 직후 쇠고기 촛불시위 파동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이후 사실상 성장론을 포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아예 경제성장을 국정목표로 잡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경제가 죽을 쑤고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해 말부터 급거 ‘경제 활성화’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퀀텀 점프(대도약)의 기적을 만들어보자”고까지 했다. 저성장구조 극복을 위한 성장정책으로의 복귀다. 그런데 ‘경제 활성화’ 정책을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를 맞았고, 7월 최경환 경제팀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경제회생과 저성장 극복을 전면에 들고 나왔다.

 그 과정에서도 일부 경제학자들은 꾸준히 성장 체념론을 제기해 왔다. 그 이론적 단초를 제공한 이가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다. 그는 지난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포럼에서 “세계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금리·저고용의 구조적인 장기정체(secular stagnation)에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경기침체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상황이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위적인 성장정책은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터이니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성장 체념론자들은 차라리 성장을 포기하고 분배와 형평에 주력하는 ‘탈성장(degrowth)’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금의 성장 체념론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과거의 고성장 공식이었던 대규모 투자와 저임금 노동의 결합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생산성 향상으로 이를 상쇄할 수 없으니, 지금의 저성장에 만족하고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주력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저성장·저물가에 인구까지 줄게 생겼으니 앞으로는 성장률을 높이려는 노력이 더욱 허망해질 거라는 우울한 진단도 가세한다. 그러나 성장잠재력이 이미 한계에 이른 선진국들이라면 몰라도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지도 못한 한국에서 지레 성장을 포기하잔 얘기는 너무 성급해 보인다. 우선 기존의 성장공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장률을 높이지 못할 것이란 진단부터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존 방식으로 안 된다면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찾으면 될 것 아닌가. 무엇보다 자본과 노동 이외에 성장의 또 다른 원천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단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생산성 향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장 큰 부문은 영세한 서비스업이다. 규제개혁과 과감한 지원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업을 키운다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생산성을 높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경제회생이란 것이 과거의 성장지상주의나 고도성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얼마간이라도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방식을 찾자는 것이다. 지금의 저성장과 저물가로는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복지재원 마련도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 방식을 택하는 것도 좋겠지만, 경제 전체로는 일정수준 이상의 성장이 아직은 필요하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지만 장기적인 성장잠재력까지 포기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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