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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예술 한국의 민낯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스포츠 관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터라 경기를 보는 일은 많지 않지만 전공 때문인지 개막식과 폐회식은 빼놓지 않고 보게 된다. 이것도 편식이라면 편식인 셈이다. 땀 흘려 경기를 준비하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누군가 한 번의 실수로 메달을 놓치는 안쓰러운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일종의 자기합리화라고나 할까.

 중요한 국제대회가 열려도 경기를 보지 않는 것은 방송을 중계하는 이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자료 준비는 부족한 채 격앙된 모습으로 우리 선수들의 메달 획득만을 독려하는 갈라진 목소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초등학교부터 살벌한 과외 경쟁으로 내모는 가혹한 부모 같다고나 할까.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아시아의 소통과 협력이라는 대회 개최의 명분은 완전히 사라지고 처절한 경쟁만이 남을 뿐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개막식은 산만했다. 많은 출연자가 운동장 여기저기를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정작 스토리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해설자의 설명 없이 장동건이 인천시민을 상징하고 김수현이 별에서 온 외계인을 상징한다고 누가 알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심청이가 탄생신화의 국모였던가? 심청이가 선물상자에서 전화기를 꺼내들고 신기해 하는 퍼포먼스로, 통신 발달을 넘어 아시아의 소통을 표현했다는 해설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개막식이 산만했다면 폐막식은 식상하다.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 전통무용과 국악, 한류 가수로 이어지는 배열은 언제부터인가 공식 행사 때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단지 일상적인 국내 공연의 초대형 버전이라고나 할까. 외국인 관객들을 위한 공연이니 국내 관객들은 참아주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렇다고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내용이라니. 일사불란한 태권도의 군무와 격파 시범도 88올림픽 때 이미 보여준 것이 아닌가.

 과거 유럽의 대표적인 권세가문인 메디치가는 결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결혼식과 축하 행사를 그 목적에 맞게 가문의 경제력과 예술적 안목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기회로 잘 활용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1589년 피티 궁에서 열린 페르디난도 1세의 결혼식 공연은 화려한 무대 장치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이나 괴물이 불을 뿜는 장면 등이 생동감 있게 재현되었고, 후반부에는 궁정으로 실제 물이 차오르면서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웅장하게 재현해 냈다. 1600년 메디치가의 마리 공주와 프랑스 앙리4세의 결혼식 축하 공연에서는 이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선구적인 방식의 종합예술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다.

 국가적 공식 세리머니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은 새로움이다. 이번 행사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참신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한류 스타들이 대거 활용되었다. 한마디로 콘텐트의 빈곤을 스타 마케팅으로 해결한 셈이다. 공연 어디에서도 IT 강국, 문화 강국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는다. 공연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유혹이 스타 마케팅이다. 고정적인 관객 동원력을 담보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치러지는 대회는 흥행만 성공하면 되는 기획사들의 공연이 아니다. 세계에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콘텐트가 먼저다. 한류 스타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순서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아시안 게임은 세월호 참사 이후 최초의 중요한 국가적 이벤트였다. 국제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위신을 세우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던 셈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크다. 이것이 바로 예술 한국의 민낯이 아닐까. 화려하지만 콘텐트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 말이다.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유명해진 스타만을 식상할 정도로 재활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콘텐트와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 저예산을 핑계로 자화자찬에 빠진다면 예술 한국의 미래는 요원하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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