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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중세적 세습사회의 귀환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벼가 익어가는 노란 가을 들녘은 쓸쓸하고 고즈넉하다. 땡볕 농부의 땀방울이 알곡으로 결집된 한 폭의 추상화는 그러나 눈물겨운 정치경제학을 숨기고 있다. 평균 3000여 평의 토지에 투하한 평균 50여 년의 노동으로 생계유지, 자식교육과 분가를 완료한다. 웬만한 농민들은 도시로 분가하는 자식들에게 종잣돈을 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논밭으로 나간다. 허리에 엄습하는 통증을 내색하지 않는 게 농부들의 자존심이다. 농부가 임무를 다하면 그 작은 논밭뙈기는 자식들에게 세습될 것이다.



 세습은 도시에서 더 큰 규모로 일어난다. 대도시를 수놓은 빌딩, 아파트, 단독주택들의 파노라마는 차세대에게는 유산(遺産) 리스트다. 적색과 청색이 바쁘게 교차하는 주식시장 활황시세 역시 세습될 자본 규모를 분단위로 알려준다. 부동산, 주식, 채권, 저축-자본의 구성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물려받은 자녀들은 계층 상향 이동의 교두보를 갖춘 셈이다. 백수로 출발하는 사람들은 교두보까지 진격하는 데에 진땀을 흘려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일군 ‘성취적 지위’가 빛을 발했다면, 이제는 타고난 ‘귀속적 지위’가 인생을 결정하는 시대로 변했다. 유산이 유산자(有産者)로 되는 시대, 즉 중세적 세습사회가 창조경제를 외치는 21세기에 귀환했다는 것이 요즘 각광 받고 있는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경고다.



 불평등 악화의 주범인 세습자본은 저성장 경제, 인구하강 국면에서 더욱 위력을 발한다. 취업이 힘들고 소득자원이 위축된 자녀세대를 결국 부모가 안아야 한다. 자본이 투하되는 것이다. 결과는 세습자본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 즉 불평등이다. 저성장, 인구침체의 협곡에 진입한 한국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한국 경제학자들은 우리의 불평등이 벌써 미국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말한다. 부와 불평등의 대명사인 미국은 이미 역사상 가장 불평등이 높았던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을 회복했다. 글로벌 소득불평등은 20세기 초 높은 봉우리에서 빠르게 하강하다가 1950년대부터 상승하기 시작, 21세기 초 다시 정상에 다다랐다. 한국은 불명예스럽게도 미국과 함께 꼭대기 국가군에 끼었다. 불평등은 의욕과 정의감을 망가뜨리고 결국 사회기반을 갉아먹는다.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현실이 이러니 한국의 청년들도 피케티가 ‘라스티냐크 딜레마’라고 부른 늪에 빠졌다. 라스티냐크는 발자크 소설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주인공. 법률가가 꿈인 가난한 귀족 출신의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보트랭의 교활한 설득에 승복한다. 법률가 평생소득과 상속 여인을 유혹해 벼락부자가 되는 것 중 어느 선택이 크고 현명한가?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고리오 영감의 장례식에서 돌아선 라스티냐크는 드디어 외친다. ‘그래 이제부터다’. 피케티는 간단히 덧붙인다. “그의 감상주의와 사회학습은 끝이 났다.”



 올해 삼성·LG·현대 등 글로벌 기업이 채용 규모를 확 줄였다. 판매부진, 노사분규, 통상임금 인상, 정규직 전환이 이유다. 졸업예정자와 취업재수생을 합쳐 95만 명이 취업시장에 쏟아지는데, 10대 대기업에 뽑힐 사람은 2만 명 안팎. 청년백수가 넘치고, 세습자본이 투하될 수밖에. 차이나쇼크에 강타당하는 한국은 이런 지경에 더 깊이 빠질 것이다. 백 대 일 경쟁을 뚫은 취업자도 살림집 마련에 지방은 7~8년, 서울은 두 배가 걸린다. 베이비부머인 필자도 그러했지만 그것도 잠시, 앞의 농부처럼 자식들에게 종잣돈을 주고야 만다면 집을 조각내고 다시 주변부로 리턴해야 한다. 연금이 있기에 재산을 몽땅 딸들에게 주고 궁핍하게 죽은 고리오 영감은 안 될 터지만 노후 불안은 따 놓은 당상이다. 국제노인인권단체가 측정한 2014년 한국의 노인복지지수는 중국·베트남보다 낮은 50위였다.



 세습자본은 마치 화학비료가 땅기운을 망가뜨리듯 건강한 사회적 토양을 파괴한다. 미래가 없다. 21세기 자본주의, 특히 한국이 당면한 이 현실을 피케티는 ‘과거가 미래를 먹어 치운다’고 서늘하게 표현했다. 헝그리 정신이 일군 국부(國富)가 앵그리 정신을 양산한다는 어느 저널리스트의 표현은 적확하다. 그렇다고 글로벌 자본과 세습자본에 고율의 징벌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고소득세·고자본세는 일자리 창출을 막아 악순환 고리를 만들 위험이 있다.



 분배 혁신, 복지 개혁, 그리고 ‘함께 살자’는 공동체 정신의 회복이 대안이다. 이 절박한 대안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총체적 처방은 대선국면에 살짝 떠올랐다가 실종되는 게 한국이다. 정권이 즐겨 내놓는 ‘~노믹스’는 5년 개업 편의점의 한시적 메뉴, 그러니 시민 공론(公論) 대형 마트를 지어 자주 바뀌는 정권 편의점을 입주시키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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