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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심 보내 진정성 과시 … 南도 유연성 갖고 접근해야

4일 정홍원 국무총리(왼쪽)가 북한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인천에 온 황병서는 북한에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다음으로 권력서열이 높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거물급 인사들이 인천을 다녀간 4일 하루 종일 뉴스의 초점은 그들의 동선에 맞춰졌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용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전격 방남(訪南)은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다음 가는 최고 서열의 정치인들이 왜 갑자기 함께 찾아왔으며, 무얼 노렸는지 추측과 전망이 난무했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최진욱 통일연구원장과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를 긴급히 전화로 인터뷰, 그들의 방남 목적과 의미를 분석했다.

[남북 ‘인천 회담’] 전문가 진단은

-이번 북한 대표단의 방남 성과는.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이하 최)=북한이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회담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다. 북측도 우리의 카운터파트를 만났고,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것 같다. 여기서 하루 자고 가면 밥도 먹고 해야 하는데 이를 피한 것 같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이하 김)=남북 관계가 전환점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대립에서 대화로 방향을 틀었다는 의미다. 다음 남북 접촉에서는 양측이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 대표단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는데.
 ▶김=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이 거물급 대표단을 보낸 것은 그만큼 큰 기대를 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측과의 대화에서 당장 가시적인 선물 보따리를 교환할 만큼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측도 무척 아쉬울 것이다.
 ▶최=북측이 무언가 얻으려고 했으면 만나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선에서 그치려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형식적인 의전보다는 실무 방문에 무게를 둔 느낌이다.

 -북한의 의도는.
 ▶최=일단은 남한 정부의 의도를 타진해 보려는 것 같다. 미국은 북한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북·일 협상도 지지부진하다. 중국과의 관계도 가까워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물꼬를 터 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김=전격적인 방남이다. 이번 방남은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 첫째, 북한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활용한 것이다. 둘째, 그동안 남북 관계는 강대강 대결구도와 불신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게 김정은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어떻게든 국면을 전환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계기로 남북 관계 개선의지를 남쪽에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북한의 입장과 의중을 박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싶은 정치적인 의미가 담긴 방문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 최측근 인사들의 방남 의미는.
 ▶김=이처럼 최고위급 인사 3명이 한꺼번에 방문한 것은 전례가 없다. 당초 대남정책 총괄인 김 통일전선부장 수준의 인사가 내려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이번 방남에 정치적 무게감을 더해 주는 것은 황 총정치국장과 최용해 비서다. 황 총정치국장은 북한 권력서열 2위이며, 최 비서는 최근 힘이 다소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김정은의 최측근이다. 두 사람의 방남은 결국 김정은의 생각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데 확실한 무게감을 더해 주고 있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의도가 확실한 만큼 매우 큰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다. 북한 총정치국장이 직접 내려온 것은 처음이다. 물론 박헌영 초대 총정치국장이 한국전쟁 중 38선 이남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당시는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이동한 것일 뿐이다. 이번 방남은 2000년 조명록 총정치국장의 미국 방문을 연상시킨다. 당시 그는 김정일의 특사 자격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만큼 총정치국장의 방문은 정치적 상징성과 파괴력이 대단히 크다고 봐야 한다.
 ▶최=김 통전부장만 보내도 의미가 큰데 핵심 최고지도부를 다 보낸 거다. 역대 어느 나라에 보낸 대표단보다 무게감이 있다. 그만큼 의중이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했으니 남측도 대통령의 직접적인 의중을 전달할 수 있는 인사를 보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에 이병기 국정원장이 동참하지 않은 것은 주목된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최=늦어도 내년 하반기까지는 남북 관계 개선의 기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관계 개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고, 과거 식으로 하지 않겠다는 거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에도 전향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 이번엔 아시안게임 협상 때처럼 북한 응원단의 수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다.
 ▶김=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큰 틀에서 많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실천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우리 정부로서도 이번 방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좀 더 통 크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우리 정부가 유연성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남북 간 기류에서 긍정적인 흐름을 만든다면 향후 남북 정상회담 얘기도 나올 수 있다. 이번 방남에서도 북한이 정상회담에 관해 어떤 시그널을 주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나돌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방남이 대외적으로 미칠 영향은.
 ▶김=최고지도자가 몸이 불편해 공식 활동을 하기는 어렵지만 통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김정은의 승인 없이 황병서 일행의 방남은 불가능하다. 최측근들을 남쪽에 보낼 정도로 김정은 통치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재확인한 셈이다. 또 김정은이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측면도 있다.
 ▶최=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하다면 북한이 움츠러들어 못 나올 것이다. 김 체제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행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고위급 인사들이 방남한 것은 그런 것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로 보인다.

 -김정은은 스포츠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통치자로서 스포츠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은데.
 ▶김=김정은 정권은 스포츠를 통해 북한이 폐쇄적인 ‘은둔의 나라’가 아니라 다른 정상적인 국가처럼 세계와 항상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보여 주고 싶어 한다. 또 외부에는 자신이 젊고 개방적인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 주려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북한의 내부 결속에도 활용되고 있다. 여자축구 우승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자 ‘체육정치’를 통해 주민들과의 친밀감을 강화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 하고 있다.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의 폐막식 참관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최=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이번 방남에서 이산가족 상봉와 금강산 관광 재개, 5·24 조치 해제 등이 거론될 가능성은.
 ▶최=5·24 조치는 철칙이 아니라서 얼마든지 풀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식으로 푸느냐가 문제다. 북한 대표단이 내려온 이상 일단은 실마리가 풀렸다고 본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한꺼번에 풀라고 요구한다. 오늘 회담에서 조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풀어 나가는 것은 실무회담에서 하지 않을까 싶다.
 ▶김=이 세 가지 문제는 서로 맞물려 있다.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걸림돌을 해결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이심전심의 새로운 기류가 나올 수도 있다.

 -이수용 북한 외무상의 유엔 방문과 강석주 당비서의 유럽 순방 등 북한이 최근 외교력을 강화하고 있다. 남측을 압박하고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것이다. 이번 방남이 이런 전략의 일환인가.
 ▶김=남측 압박과 관계 개선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행보에 신중히 대처하면서 우리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대화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할 이유는 없다. 남북 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최=북한은 최근 미국·일본·유럽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관계 개선을 타진해 오고 있다. 하지만 결국 큰 성과 없이 다 막히니까 한국으로 오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제일 중요하며, 한국은 미국과 공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우리 정부도 미국에 신뢰를 주면서 북한과 현안을 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왔다.

 -북한 핵 문제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는데.
 ▶김=북핵과 6자회담 재개 문제에서 한·미·중의 협력 관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껏 한·미 동맹 차원에서 접근을 많이 했는데, 3개국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핵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김도 커질 것이다. 주도권을 쥘 수는 없지만 우리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최=북한은 분명히 포괄적으로 풀려고 할 것이다. 일종의 빅딜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해결해 간다는 입장이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우리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김=이번 방남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가 가시적으로 이렇게까지 했는데 남측의 무성의로 소득이 없었다고 선전할 수도 있다. 북한의 역공도 염두에 둬야 한다.


한경환·최익재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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