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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중 시위대의 폭력, 경찰이 방조" 학생들 대화 거부 선언

2017년 행정장관 선거를 둘러싸고 팽팽하던 홍콩 시위가 정부의 대화 수용으로 대화 국면에 진입하는 듯 했으나 시위에 반대하는 친중 시위대가 등 장하며 시위 향방이 불투명해졌다. 3일 홍콩 번화가 코즈웨이에서는 시위에 불만을 품은 지역 주민들이 도로를 가로막은 바리케이드를 치우라며 시위 학생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홍콩 AP=뉴시스]
홍콩 시위 사태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학생 대표와 정부 대표가 대화를 갖기로 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기더니,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또다시 대화 약속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도심 점거 시위대의 노란 리본에 맞서 파란 리본을 달고 나온 친중 시위대의 반격도 시작됐다.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홍콩 시위가 점점 안갯속으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예영준 특파원 우산혁명 현장을 가다]
행정장관 “대화하자” 하루도 안 돼
“본토말 쓰는 여성이 관제시위 주도”
민주화 지도부 강경으로 돌아서

 량전잉(梁振英) 행정장관은 시위 학생들이 최후 통첩한 퇴진 시한(2일 자정)을 20분 남기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생들 요청을 받아들여 정부 대표와 학생 대표 간의 대화에 응하겠다”는 요지였다. 앞서 점거 시위를 주도한 홍콩 전상학생연합(학련)이 홍콩 정부의 2인자인 케리 람 정무사장(정무장관)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대화를 제의한 데 대한 응답이었다. 그러면서 “퇴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퇴진 거부에 대해 강경파 학생들 사이에 반발도 있었지만, 시위 지도부는 량 장관의 의사를 받아들여 대화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극한 대치에서 대화로 가닥을 잡자 시위 인파가 낮 한때 눈에 띄게 줄기도 했다. 직장인 참가자들은 생업으로 복귀했고, 아침 시간까지 타마르 광장에서 밤을 새운 학생들도 사태를 관망하겠다며 삼삼오오 귀가했다. 왕복 6차선 도로와 노면전차 차선까지 1㎞ 이상의 도로를 수천 명의 시위 인파가 메웠던 번화가 코즈웨이베이에 남은 학생은 100명이 채 못 됐다.



 하지만 3일 낮 주룽반도의 몽콕에서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파란 리본을 단 시위대 400여 명이 몰려와 노란 리본 시위대와 격한 충돌을 빚었다. 일부 홍콩 언론은 “파란 리본 시위대는 표준 중국어를 쓰는 40대 여성의 지휘를 받았다”며 ‘관제’ 시위란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몸싸움에서 밀려난 학생들은 정부 청사 앞 타마르 광장으로 합류했다. 이 소식이 전체 시위대로 퍼지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최초에 정부 대표와 공개대화를 제기했던 학련 지도부는 3일 밤 늦게 성명을 발표하고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파란 리본 시위대가 사실상 물리적 방법으로 노란 리본 시위대를 몰아내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도 경찰이 이를 수수방관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타마르 광장엔 다시 시위대가 모여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대화는 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없던 일이 돼버렸다.



2일 밤 학생 대표들의 대화 제의를 수락한다고 밝히는 량전잉 홍콩 행정장관(오른쪽). 옆은 홍콩 정부의 2인자 케리 람 정무사장. [홍콩 로이터=뉴스1]
 대화냐 강경 투쟁이냐의 혼선은 량 장관의 기자회견 직후부터 시위대 내부에서 분출됐다. 지도부가 결정만 내리면 정부 청사에 진입할 기세이던 학생들은 맥이 빠졌다. “퇴진을 거부하며 대화에 응한 건 시간 벌기 속셈이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즉석에서 진행된 토론에서 일부 학생은 “어쨌든 퇴진을 거부한 것이니 다음 단계의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시위 주도 세력인 학련의 레스터 셤(岑敖暉) 부비서장이 “일단 대화를 해 본 뒤 결렬되면 그때 행동을 한 단계 끌어올려도 늦지 않다”며 강경론을 달래야 했다.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은 청사 인근 간선도로인 렁워로로 달려나가 한쪽 차선을 점거했다. 홍콩의 남반부인 홍콩섬과 북쪽 주룽(九龍) 반도를 잇는 이 도로는 시위대가 도심 점거를 하면서 유일하게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자 또 일단의 학생들이 달려가 점거를 풀라고 만류했다. “이 길마저 점거하면 내일 아침 홍콩엔 진짜 교통대란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이 우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논리였다.



 량 장관의 퇴진 거부에 분노한 학생들은 아침 한때 정부 청사를 에워싸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틀간의 연휴를 끝내고 출근하는 공무원들의 출입이 봉쇄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위 지도부는 강경 투쟁 쪽으로 다시 가닥을 잡고 대화 불응 선언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시위 동력이 약화돼 중국 정부나 홍콩 당국이 내심 바라는 상황으로 바뀔 가능성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강경파 학생이 돌발행동을 펼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래저래 ‘우산혁명’의 향방은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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