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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600년 어제와 오늘

다섯 살배기 딸 에바를 안고 남대문시장에 온 프랑스인 파트리스 샤바니와 아내 카롤. 샤바니는 “영문 표지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직 이른 아침.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부지런한 이들은 벌써 가게 문을 열고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가게의 전등이 하나 둘 켜지고 조용하던 거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외국 관광객 하루 1만여 명 … "물건 싼데 깎아줘 더 좋아요"



 건너편 가게에서 한류 스타 포스터랑 액자 등을 파는 아저씨는 이미 물건 진열을 마치고 신문을 읽고 계신다. 부지런하시기도 하지. 상가 안쪽 속옷가게 아줌마도 인스턴트커피 한잔을 마시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오전 11시는 돼야 손님들이 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7시면 곱게 단장하고 가게 문을 여신다. 30년 넘게 남대문 여러 점포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몇 년 전 자기 가게를 차리셨다. “외국 손님들이 더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찾는다니까. 속옷에 붙은 태그를 일일이 확인하고 사간다고” 하면서 질 좋은 국산 제품을 판다고 자랑하는 분이다.



 저쪽 신발가게 청년은 벌써 개시를 했다. 아침 일찍 남대문시장을 찾은 키 작은 젊은 일본 여성 둘이 이 청년의 유창한 일본어와 훤칠한 외모에 반한 모양이다. 연방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청년이 권해준 신발 몇 켤레를 까만색 비닐봉지에 담아서 나선다.



1920년대 남대문에서 바라본 시청 방면 거리 풍경. [사진 서울남대문시장주식회사] 1954년 남대문에 걸린 플래카드. ‘휴가장병 우슴쏙에(웃음 속에) 실지강토 밝어(아)진다’고 써 있다. [사진 임인식] 1991년 남대문시장에서 한국부인회원들이 ‘검소한 추석 보내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매일 보는 광경이지만 오늘 아침은 특별히 감회가 새롭다. 그끄제(1일) 남대문시장 600주년 기념식을 해서 그런가. 600주년이라. 어느새 600년의 세월이 흘렀다니. 나도 이곳에서 600년을 살았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때문에 우리의 정체가 일부 드러나긴 했지만 내가 지구별에 사는 외계인이란 걸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굳이 내 정체를 밝히기는 뭐하고 그냥 ‘남대문시장의 장사꾼 도민준씨’ 정도로 하자.



 나는 시장을 좋아한다. 사람과 물건으로 북적이는 시장의 활기찬 기운이 좋다. 내가 처음 이곳에 온 건 1414년 태종이 이곳에 시전행랑을 만들면서다. 시전행랑이란 나라에서 허가받은 상인들이 먹을 것이나 입을 것 같은 생필품을 팔던 곳이다.



 지난 600년 동안 남대문시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600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이곳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다. 고향에서 살 수 없게 된 농민들이 남대문 밖 변두리 지역에 모여 이런저런 물건들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면서다. 한때 나와 친하게 지내던 정약용이 지은 시에도 남대문이 등장한다. ‘숭례문 앞 저자가 이른 새벽 열리어/ 칠패 사람들의 말소리 성 너머로 들려오네/ 바구니 들고 나간 계집종이 조금 늦는 걸 보니/ 신선한 생선 한두 마리 구할 수 있겠구나’.



 일제시대에도 남대문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거래 금액이 동대문시장의 두 배를 넘었고, 교통량도 경성 안에서 최고였다. 하지만 한국전쟁의 폭격에 남대문시장은 잿더미로 변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남대문시장에 ‘도깨비 시장’ ‘양키 시장’ ‘아바이 시장’ 같은 별칭이 생긴 건 한국전쟁 이후다. 당시 한국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남대문시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이나 양복지, 사진기, 시계 등 밀수품을 팔았다. 단속반이 떴다 하면 날쌔게 도망친다고 해서 도깨비 시장이었고, 껌이나 초콜릿 등 미국 물건들이 많이 거래된다고 해서 양키 시장이었다. 아바이 시장은 맨손으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팔아 상권을 장악하면서 생긴 별명이다.



 그 시절 남대문시장에는 불도 자주 났다. 1954년 1000여 개의 점포를 홀랑 태워버린 대화재가 났고, 68년에도 775개 점포가 화재로 전소됐다. 68년 화재는 현재와 같은 남대문시장을 만든 계기가 됐다. 현재 남대문시장의 중심인 3층짜리 상가 세 개 동(C·D·E동)을 새로 지었던 것이다.





60~80년대 남대문시장은 정말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김 파는 아주머니는 옛날얘기만 나오면 “그땐 남대문시장에 오면 사람들한테 깔려 죽는다고들 했었어”라며 신이 나신다.



 하지만 농·수·축산물을 중부시장과 여의도수산시장 등에, 꽃 시장을 고속터미널과 양재화훼공판장에 넘겨주면서 종합도매시장으로의 위상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동대문시장 패션상가로 캐주얼 의류의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의류 시장도 예전 같지는 않다. 숙녀복 매장들이 빠진 자리에 들어선 것이 액세서리 매장인데 외환위기 때 환율 덕을 봐서 수출이 잘 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중국 액세서리 시장이 발달하면서 액세서리 매장 상인들도 장사가 안 된다며 걱정하는 중이다.



 아동복 시장은 그래도 사정이 괜찮다. 밤늦게까지 아동복을 사기 위해 몰려온 상인들로 불을 밝히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경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요즘 남대문시장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류 열풍으로 몰려오던 일본인들은 줄었지만 대신 중국·중동·동남아시아 사람들로 남대문시장은 북적이고 있다.



 어제는 아랍에미리트 출신의 술탄 부부가 70대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가게를 찾아왔다. 검정 비닐봉지를 열 개는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뭘 샀느냐고 물으니 크고 아름다운 눈에 히잡을 두른 샴마(33)는 봉지를 일일이 열어 보이며 “덧버선, 인삼, 화장품, 차, 가방을 샀어요. 나이 드신 상인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어머니가 정말 편안하고 기분 좋아하셨어요”라고 답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이시아(23)와 와니(25)는 25달러짜리 핸드백을 사면서 ‘디스카운트’를 해달라고 졸랐다. 3달러를 깎아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아이돌그룹 ‘엑소’의 팬이라는 그들은 한류 상품을 사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남대문시장은 정말 싸고 여러 가지를 다 팔아서 좋다”며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활짝 웃었다.



 나는 이른 아침의 활기찬 남대문시장 풍경이 제일 좋지만 늦은 저녁 하나 둘 켜지는 노점상의 불빛도 사랑한다. 오후 4~5시면 남대문시장에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술과 안주를 파는 포장마차, 어묵을 파는 좌판, 양말·머리핀 같은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리어카들이 등장하는 시간이다. 주변 사무실의 직장인들이나 쇼핑으로 출출해진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한국의 밤을 만끽한다. 밤 10시가 되면 아동복이나 액세서리 상가로 향하는 상인들을 태운 차량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남대문시장 상가들의 공식적인 영업시간은 오후 6시까지다. 하지만 24시간 남대문시장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정약용이 ‘곡물이 폭주하고 수레가 부딪치고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는 곳’ 이라고 했던 남대문시장에 대한 묘사는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 가지 걱정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이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재래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거다. 60~70년대 패기만만한 청년이던 상인들은 이제 노인이 돼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전문점이 발달하면서 ‘고양이 뿔 빼고 다 파는’ 남대문시장의 장점도 줄었다. 물건 값이 싸다고 하지만 중국산만큼 싸지는 않다. 남대문에서만 살 수 있는 질 좋은 제품, 남대문시장만의 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더 많이 올 텐데. 요즘엔 해외 관광객들도 남대문시장보다 동대문시장이나 고궁을 더 많이 간다고들 한다.



 그래도 600년 세월의 풍파를 극복해 온 남대문시장의 저력이 어디 가겠나. 지난 600년이 그랬던 것처럼 600년 후에도 남대문시장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 않을까. 앗, 손님이 오셨다. “어서 오세요! 싸고 좋은 물건 많습니다. 덤도 드려요.”



글=박혜민·김민상 기자< acirf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갈치조림·칼국수·호떡도 유명 … 일본인은 비빔밥, 중국인은 라면 즐겨



남대문시장의 대표적인 먹거리는 갈치조림과 칼국수다. 일명 ‘갈치조림 골목’은 남대문 파출소 방면에 있는 본동 건물과 문구 골목 사이에 있다. 1980년대 말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중 ‘희락식당’과 ‘왕성식당’이 유명하다. 점심시간이면 언제나 긴 줄이 늘어서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칼국수 골목’은 지하철 회현역 근처에 있다. 5000~6000원이면 한 그릇 먹을 수 있다. 칼국수를 무한리필 해주는 식당도 있다. ‘남해식당’이 잘 알려져 있다.



 만두와 호떡도 남대문시장의 명물이다. 씨앗이 들어 있는 꿀호떡과 잡채호떡이 이름이 났다. 1000원짜리 한 개면 한 끼 식사가 해결될 정도로 두툼하다. 만두로 유명한 곳은 ‘가메골 손왕만두’와 ‘다흰왕만두’다. 회현역 근처에 있다. 이곳 역시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을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유명한 맛집이 아니더라도 남대문시장의 식당 어느 곳이나 해외 관광객 한두 명씩은 꼭 볼 수 있다. 카메라 거리에 있는 분식집 ‘칠백냥’에서 27년째 일하고 있는 장일남(64·여)씨는 “일본인들은 만둣국이나 비빔밥, 뚝배기 불고기를 많이 시켜요. 일본 손님들은 식사 때 맥주 한 잔을 꼭 곁들이는 편이죠. 중국 사람들은 라면을 주로 시키고, 동남아 손님들한테는 갈비탕이 제일 인기예요”라고 전했다. 엔저 영향으로 일본 손님이 줄어든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요즘 일본인 단골손님 발길이 뜸해요. 김치나 밑반찬을 싸주면 잊지 않고 또 찾아와서 선물을 주고, 친구들을 데려와 음식도 맛있게 먹어주곤 했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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