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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흔들리는 EU, 더 뭉쳐야 산다

앤서니 기든스 교수는 이번 책에서 “EU가 약화되거나 사라지면 유럽은 중소 국가들이 난립하는 낙후 지역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유럽 통합의 확대?강화를 요구한다. [중앙포토]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앤서니 기든스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336쪽, 2만원




유럽연합(EU)처럼 급속하게 역할이 바뀐 게 또 있을까. 유럽통합이 잘 될 때 ‘유럽’은 지역통합의 모델로서 항상 거론됐다.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국제정치경제 무대에서 블록을 형성하여 규칙을 제정하는 중요 행위자로서. 그런데 이런 모범생이 ‘문제아’로 지목됐다.



 2010년 그리스발 경제위기가 아일랜드·포르투갈로 확산됐고 EU가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국제경제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미래를 새삼 거론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3의 길』 로 국내 독자에게도 널리 알려진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신작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에서 이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드러난 그는 좌우를 아우른 실용적인 진보주의자보다 열렬한 유럽통합 지지자의 모습이다. 그것도 현실주의적 지정학적인 관점을 강조하며 EU가 금융 및 재정 분야의 통합뿐만 아니라 정치적 연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의 G2가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국제정치경제에서 유럽이 계속해서 영향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면 유로존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유럽차원에서 외교 및 군사 분야까지 통합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확신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든스는 ‘플러스 주권’(sovereignty+:보다 더 큰 주권)이라는 신조어를 꺼내 든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 국가소송제(ISD)로 외국기업이 투자 국가의 정책까지도 제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속열차처럼 질주해 온 세계화 앞에서 국가는 많은 주권을 잠식당해 왔다. 그런데 영국 같은 일부 EU 회원국은 이미 잃어버려 통제할 수 없는 주권을 되찾아 오겠다고 유럽통합을 저지하려 한다. 유럽 차원으로 정책을 이양해야 주권의 추가적 손실도 줄이고, 국제무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기든스는 조언한다.



 일 년에 두 번 EU 28개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유로바로미터’(Eurobaro meter)에서도 시민들은 외교 및 안보, 이민 문제를 유럽차원에서 더 다루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영국이나 프랑스 등 아직도 강대국의 환영에 젖어 있는 일부 EU 회원국들은 주요 국제 문제에서 자국의 입장을 먼저 드러내기 일쑤다. 대다수의 EU 회원국들은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아직도 안보를 기대고 있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EU 회원국들이 합의하고 적극 실천할 수 있는 범유럽적인 안보전략이 필요하고 유럽군도 창설해야 한다고 이 사회학자는 역설한다. ‘진보주의자=군축’이라는 등식이 깨지고 바로 현실주의적 지정학자로서 기든스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유럽이 직면한 단일화폐 유로화 위기 이외에 그는 선진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복지국가·이민·기후변화 등 상호 연관된 이슈를 차례로 거론하며 해법을 제시한다. 고전적 복지국가를 문제의 근원이라 규정한 그는 사회적 투자 국가(social investment state: SIS)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SIS는 부의 창조를 목표로 교육과 기술의 장려, 사회적·경제적 참여를 적극 추진한다. 그가 제3의 길에서 제시한 적극적 복지를 조금 더 확대한 개념이다.



 이 국가는 사회 정의를 기본으로 삼고 인적자본의 육성에 힘을 쏟는다. 이런 예를 기든스는 EU의 유연 안전성(flexicurity)에서 본다. 급변하는 지식경제에서 시민들은 계속하여 재교육을 받아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추어 유연성과 직업 안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열렬한 유럽통합 지지자임에도 어째 영국인의 정체성은 탈피하지 못했다. 기든스는 영국의 EU 탈퇴 움직임도 충정 어린 마음에서 비판한다. 하지만 유로화 도입으로 손실보다 더 큰 이득을 본 독일이 EU 위기 극복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했음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에 비하면 그 강도가 좀 약하다. 아직도 EU의 위기는 진행 중이기에 기든스가 제안한 방향으로 EU가 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정치경제에서 중요한 지정학적 행위자로 남을 것인가를 중장기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유럽은 최악의 경제위기에서 통합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려 하면서 많은 논란을 벌여 왔다. 반면에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론 가장 역동적이지만 정치와 안보의 대립은 격화되는 ‘아시아 패러독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는 지리적으로도, 위기의 대응방식에서도 여전히 멀다.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안병억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유럽통합으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저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관계: 역사와 쟁점』 등.





[S BOX]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재직 시절 “유럽과 얘기하려면 도대체 누구와 통화해야 되느냐”는 질문으로 유럽연합(EU)의 분열과 리더십 문제를 꼬집었다. EU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리스본 조약(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돼 무산된 유럽헌법을 대체하는 조약)이 서명된 이후,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키신저는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으므로 유럽연합의 ‘외무장관’격인 캐서린 애슈턴에게 전화를 걸면 된다고 말하며 “이른바 키신저 문제는 이제 해결됐다”고 말했다. ‘유럽 대통령’으로 불리는 EU 이사회 상임의장 헤르만 반 롬푀이는 미국 대통령은 제일 먼저 자신에게 전화하면 된다는 걸 분명히 밝혔다. 이런 EU의 민감한 반응을 비꼰 시가 등장하기도 했다.



 ‘키신저가 전화를 건다.(Kissinger Calling)/반 롬푀이가 받는다.(Van Rompuy answers the phone)/ 헨리 왈, “잘못 걸었소.”(Henry : “Wrong number”)’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에서 앤서니 기든스는 EU의 리더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여러 학자들이 최근 주장하고 있는 유럽 대통령 ‘직접선거’를 제시한다. 유럽인들이 직접 유럽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리더십과 대중의 합법성을 결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직접선거를 통해 현재 실질적으로 EU를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같은 유명 정치인이 선출돼 실권을 갖고 유럽연합을 대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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