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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부자는 진화의 산물 ? 사이비 과학을 경계하라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과 원숭이는 조상이 같지만 진화의 과정에서 갈라졌다. 인간이 ‘더 나은 생물체’라는 생각은 인간의 시각이다. ‘우생학’이 초래한 역사의 비극은 이를 증명한다. 사진은 영화 ‘혹성탈출’의 한 장면. [사진 20세기 폭스]


센스 앤 넌센스

케빈 랠런드·길리언 브라운 지음

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488쪽, 1만9000원




다윈은 드물게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30년 동안이나 이론을 가다듬은 그는 ‘진화’가 ‘진보’로 오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한 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지, 뛰어난 이가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는 노트에 “절대로 ‘더 높거나 더 낮다’는 말을 쓰지 말 것”이라고 써두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하지만 진화는 곧 진보로 받아들여졌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선 “백만장자는 진화의 결과이고 사회주의는 부적응자를 양산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민자의 경우 최근 정착한 사람일수록 지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이민제한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물론 합리적 설명은 “이민자들이 미국 문화에 적응할수록 지능 검사 점수를 잘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최악의 괴물은 독일에서 태어났다. 아돌프 히틀러는 ‘인종의 순수성’을 외치며 유대인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학계에서 진화론은 오랜 기간 암흑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1967년 진화론은 생물학계뿐 아니라 인문·사회학계에까지 논란을 부르며 떠들썩하게 귀환한다. 데즈먼드 모리스가 『털 없는 원숭이』를 펴낸 것이 계기다. 런던의 동물원 큐레이터로 일하는 그는 책에서 “포르노와 매춘은 비교적 무해하고 어쩌면 실제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남성적인 특징을 가진 여성은 아들을 동성애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설명을 늘어놨다. 진화론은 이 시점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의 케빈 랠런드 교수 등이 쓴 『센스 앤 넌센스』는 이런 과정을 거쳐 다시 과학으로 새 장을 열어가는 진화론 연구를 소개한다. 진화론을 사이비 과학으로 오해하게 만든 역사를 돌아보고, 최근 연구의 분파별 특징과 한계를 짚는다. 정치적 주장과 과학적으로 밝혀진 연구 결과를 가려 설명한 진화론의 교과서라 할만하다.



 진화론은 ‘오남용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간다. ‘진화’라는 핵심 개념 그 자체가 매우 설득력있고 탄탄한데다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70년대 과학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사회생물학’을 창시했다. 75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윌슨은 개미·원숭이 등 동물의 행동을 분석하는 연구 방법을 인간에 적용한 『사회생물학』을 펴냈다. “인간 문화가 강력하긴 하지만, 이를 이겨내는 본능이 존재한다”는 게 요지였다.



 이듬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려는 욕구가 인간의 행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이기적 유전자』를 내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사회학이 생물학의 한 분파가 될 것”이라는 그들의 의기양양한 선언에 사회과학자들은 “신나치주의” “인종차별주의”를 거론하며 비판했다. 저자는 윌슨과 도킨스에 대해 학문적 성과는 일리가 있었지만, 대중에 전달하는 방식은 다소 위압적이었다고 평한다.



 하지만 과학적 성과가 꾸준히 나오면서 사회생물학은 어엿한 하나의 학문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은 진화심리학을 필두로 인간행동생태학·문화진화론·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등 여러 갈래의 분파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다. 유전자와 문화가 서로 주고받는 과정까지 연구의 대상으로 들여온 것이다.



 물론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 정설로 둔갑해 유통되는 사례는 여전히 많다. 예를 들면 인간 여성이 배란기에 침팬지 암컷과 달리 신체적 징후가 없는 것에 대해 “배란을 숨겨 남성이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해 왔지만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IQ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어져 왔지만, 일란성 쌍둥이를 연구한 결과 환경적 요인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잘못된 가설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도 하는 것이다.



이정봉 기자



[S BOX] 다윈 사촌 골턴의 우생학 … '히틀러 재앙' 불러 



진화론은 불행의 씨앗을 처음부터 품고 있었다. 태두인 찰스 다윈과 그의 사촌동생 프랜시스 골턴은 같은 씨앗에서 뻗어나왔지만 맺은 열매는 완전히 달랐다.



 다윈은 신중했다. 20년의 연구 끝에 자연선택을 다룬 『종의 기원』을 냈다. 단박에 유명해졌고 대중들은 그가 인간의 진화에 대해 ‘한 말씀’하기를 기다렸지만 12년이 지난 뒤에야 『인간의 유래』를 출판했다. 그는 남녀의 특성에 대해 차별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민족 간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며 약자를 방치하는 건 큰 죄악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골턴은 인종·성별 간의 우월성을 다룬 학문인 우생학을 창시했다. 열등한 여성의 교육·참정권을 반대했고, 아프리카인의 평균 지능이 유럽인보다 낮다고 판단했다. 그의 썩은 열매는 히틀러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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