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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서의 종횡고금 <26> 단군, 중국의 요순, 미국 워싱턴 … 건국신화가 지금도 중요한 까닭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일년의 여러 국경일 중 10월의 개천절이 주는 느낌은 남다르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처럼 근대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의 신화적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 기억은 뚜렷한 실체가 없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 묘한 울림으로 다가와 나름의 중요한 작용을 한다.



 우리는 평상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개천절이 되면 문득 단군신화를 떠올린다. 즉 환웅천왕이 홍익인간의 뜻을 펴고자 하강했고 웅녀가 국조 단군을 낳아 최초의 우리나라가 탄생했던 일을 상기한다. 그리곤 새삼 우리가 곰 할머니의 자손이고 같은 겨레라는 일체감에 젖게 된다.(물론 이러한 순혈주의적 생각은 다문화시대인 오늘 당연히 수정되어야 하겠지만) 바로 이것이다. 건국신화는 집단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공동체의 결속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다. 앤더슨(B Anderson)은 신문·소설 등의 서사가 구성원들에게 동시성을 조성하여 근대국가 성립에 일조했다고 봤는데 그 역할을 고대에는 신화가 했던 것이다.



 고대국가뿐만이 아니다. 근대국가에도 신화는 필요하다. 미국은 건국의 역사가 짧아 신화가 웬 말이냐 할지 모르지만 엄연히 있다. 다름 아닌 국부 조지 워싱턴에 관한 일화가 미국의 건국신화인 셈이다. 우리 귀에도 너무 익숙한, 워싱턴이 어렸을 적 아버지가 아끼는 벚나무를 도끼로 훼손했으나 정직하게 말해서 칭찬받았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찍힌 벚나무 옆에서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빠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부지중 미국은 정직함을 숭상하는 나라구나, 역시 청교도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로다, 하는 식의 상념이 미국의 국가 이미지를 장식하게 된다. 그러니까 워싱턴 신화는 미국이 주장하고자 하는 건국이념과 정체성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R Barthe)는 이러한 상념의 과정을 ‘2차 기호체계’라고 명명하면서 신화는 곧 이데올로기의 체계라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의 건국신화는 어떠한가. 고대의 황금시대라고 하는 요순시절에 관한 신화를 살펴보자. 이 시대의 지도자들은 다 성인이고 어질어서 요는 순에게, 다시 순은 우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그 결과 분쟁 없는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왕위 계승 방식을 선양(禪讓)이라고 하는데 서양의 왕권계승신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즉 그리스 신화를 보면 우라노스·크로노스·제우스 등이 치열한 골육상쟁을 겪은 후에야 세대교체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서기년(竹書紀年)』이나 『한비자(韓非子)』 등 반유교적, 수정주의적 성향의 고전들을 보면 선양은 유학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이고 실상은 고대의 모든 정권교체가 그러하듯, 피로 얼룩진 폭력이었다는 흔적이 있다. 가령 『죽서기년』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라. “요의 덕이 쇠하여 순에게 유폐되었다. 순은 요를 유폐하고 다시 (그 아들) 단주를 연금시켜 부자가 서로 보지 못하게 했다.(堯德衰爲舜所囚. 舜囚堯, 復偃塞丹朱, 使父子不得相見也)” 우리나라의 증산교 경전에서도 요의 아들 단주의 한이 사무쳐 모든 재앙의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순의 왕위 계승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동양에서 고대의 태평성대, 이상적인 시대를 떠올릴 때 요순시절을 운위하는 것을 보면 건국신화의 힘, 그 이데올로기의 위력이 얼마나 심원한지 알 수 있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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