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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사랑과 탐닉 사이 … 3년 만에 찾아온 구효서

새로운 글쓰기 기법이 두드러진 장편 『타락』을 낸 소설가 구효서씨. 운명처럼 이국의 도시에서 만나 강렬한 사랑에 빠지는 남녀의 이야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타락

구효서 지음, 현대문학

312쪽, 1만3000원




소설가라는 운명은 축복이자 재앙 같은 것일 게다. 그가 구축한 세계 안에서 그는 법(法)이고 신(神)이다. 무엇보다 창작의 유희가 치명적이다. 그게 소설가의 복이라면 창작에 따르는 고통, 뭔가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소설로만 밥벌이를 하는 이 땅의 전업 작가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구효서(57)씨는 글쓰기의 축복과 재앙 사이에서 고민이 컸던 것 같다. 쓰고 싶은 것과 잘 쓸 수 있지만 지겨운 것 사이의 방황 말이다.



 구씨가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타락』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고민이 깊었던 듯 지금까지의 구씨 소설, 범위를 넓혀 일반적인 문법의 평범한 소설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소설의 배경이 영국 런던쯤으로 짐작되는 유럽의 도시라는 점은 구씨 소설에서 새로운 게 아니다.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벗어난 무국적 혹은 이국의 공간은 『랩소디 인 베를린』 등 전작들에서 익히 선보였던 바다.



 이번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부터 소격(疏隔)효과랄까, 낯설게 하기 전략을 도입한 듯하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산, 여주인공의 이름은 이니, 이니의 아버지는 아빠를 장난스럽게 비튼 듯한 바, 어머니는 마, 동성 애인 성허의 지시에 따라 연적 격인 이니를 돌보는 남성은 한국 이름이 아닌 것 같은 히만, 이런 식이다.



 특이한 이름의 인물들이 모여 빚어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주의의 세계가 아니다. 서사나 이야기보다 구씨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에 방점이 찍힌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소설의 제목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가령 구씨는 이니의 생각을 통해 ‘타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사람의 몸을 갖고 돌아갈 수 있는 최후 지점까지 이니는 산과 함께이고 싶었다.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로 이루어졌던 세상. 죽음 이전의 그곳. 지혜도 선악도 없던 곳. 타락 이전이라 타락도 없던 곳.’(273쪽)



 이니의 생각이 지시하는 대상은 명백해 보인다. 선악과를 따먹어 타락하기 이전, 최초의 남녀가 살던 에덴 동산이다. 다만 거짓말처럼 첫눈에 반해 모든 생활의 굴레를 단번에 끊어버리고 즉각 동거에 들어간 산과 이니의 사랑은 탐닉적이다 못해 자기파괴적이다. 씻지도 않고 제대로 먹지도 않은 채 이니가 산의 발가락을 깨무는 약속 신호만으로 몇 차례고 사랑을 나누며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과정은 퇴행에 가깝다.



 물론 소설에 최소한의 서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사의 뼈대는 선명하다. 그것도 매력적이다. 남녀가 이국에서 ‘사고치자’ 산의 정혼녀(定婚女) 윤지와 히만이 각각 둘을 찾으러 나선다. 이니는 한국에서 히만으로부터 익힌 치명적인 돌팔매질로 성가신 이웃집 할머니를 살해했음이 암시된다. 그런 사건의 진행이 추리물 같은 흥미를 자아낸다.



 그렇더라도 소설은 인과 원리의 지배에서 자유롭다. 구씨의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되면 술술 읽히지만 서사의 롤러코스터를 기대하고 접근했다가는 당황하기 쉽다.



 소설의 이야기가 느슨하다는 것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소설은 어쩌면 수 개월간 서로를 탐닉했지만 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대한 밑바탕 생각은 서로 달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남녀, 대담한 여성과 소심한 남성의 어긋한 사랑 이야기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소설 처음과 끝, 순환하듯 비슷한 풍경



『타락』은 ‘열린 구조’다. 이야기가 선형(線形)으로 흘러 매듭지어지지 않고 순환하는 느낌이다. 처음과 끝이 비슷한 수미쌍관(首尾雙關) 장치를 통해서다. 유학생인 산은 소설 앞부분에서 오후 4시 30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이니를 만난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니를 일으켜 세운 뒤 밑도 끝도 없이 줄행랑쳐 결국 동거에 들어간다. 유학생활 1년째였고, 버스는 7분 후 도착시점이었다.



 소설 막바지 산은 다시 버스 정류장에서 귀가 버스를 기다린다. 유학생활 1년 반이 되는 시점, 버스는 4분 후 도착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 다가갔더니 한 여성이 쓰러져 있고 당황한 기색의 남성이 여성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잠시 후 남녀는 사라지고 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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