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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대학생 vs 대학생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재현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최근 학교 도서관 구석진 곳에 위치한 케케묵은 책 한 권을 꺼내어 손에 쥐었다. 출판연도를 보니 1984년. 우리 아버지 세대가 보던 책인 것 같다. 세로로 쓰여 있을 뿐만 아니라 글자의 반 이상이 한자인 것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이목을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빛 바랜 누런 종이 언저리에 빼곡히 쓰여 있는 물음 형식의 메모였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올바른 삶의 모습일까?” 물음표로 끝나는 그 문장 속에서 나는 볼 수 있었다. 온갖 철학서와 사회과학서들을 뒤적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갈구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얼굴을. 삶의 불확실성과 사회의 부조리함 사이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머리를. 그리고 학문에 열정을 쏟는 진정한 대학생의 모습을.



 현재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80%를 육박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대학이 무엇을 추구하는 공간인지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그뿐 아니라 최근에는 대학의 진면목까지 퇴색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의 진면목은 무엇이며 대학생은 어떠한 학생인 것일까. 대학은 ‘큰’이라는 의미의 대(大)자를 쓴다. 연세대 철학과 윤병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대(大)의 의미는 불 화(火)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대학의 존재 의미엔 사실 ‘큰 학문을 함’이라는 것 외에도 ‘불같이 학문을 함’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생 또한 학문에 불과 같은 열정을 쏟는 학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다. 지금 우리의 대학에서 대(大)학생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는 점 말이다. 끝을 모르는 스펙 경쟁 때문인지, 대부분은 대(對)학생으로 전락했다. 대(對)학생은 학문을 수단으로 대(對)할 뿐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30년 전 우리의 아버지들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숭고한 물음을 이제는 던지지 않는다. 학문이 여태껏 존중받고 장려됐던 까닭은 그것이 사유의 성숙함과 인간의 인간다움을 계발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건만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학문은 단지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大)학생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물음이다. 진정한 물음은 (우리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열정을 갖고 학문에 임할 때만 가능하다. 그 물음은 깊은 사유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수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한 물음의 깊이를 온몸으로 껴안아볼 수 있다는 것은 대학생들만의 고귀한 특권이 아닐까.



김재현 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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