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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계에 신성이 떴다! 주목해야 할 신예 작가 4인

포스터는 영화의 얼굴이다. 영화의 본편이 공개되기 전에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접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홍보 수단이다. 여기에 쓰이는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출연하는 배우들의 얼굴을 나열한 포스터도 여전히 많지만, 요즘엔 독특한 분위기로 승부하며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포스터도 많다.



[매거진M]

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상업 사진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이 영화 포스터 작업에 뛰어들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앞으로 더욱 주목해야 할 신예 작가 네 명을 소개한다. 조만간 이들이 촬영한 영화 포스터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① 목정욱 ‘강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제일 먼저 공개된 ‘거인’ 티저 포스터.




11월 개봉하는 ‘거인’(김태용 감독)으로 영화 포스터 데뷔를 치렀다. 상업 사진 작가로 활동한 지는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최근 가장 핫한 사진가로 급부상 중. ‘ELLE’ ‘GQ’ ‘W’를 포함한 국내의 여러 패션 잡지에서 화보와 인터뷰 사진 촬영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1980년생.



영화 티저 포스터는 본 포스터 공개 전 사람들의 시선을 확 잡아 끌어야 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작품에 대한 관심도와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결정적 홍보 수단인 셈이다. 목정욱이 찍은 ‘거인’ 티저 포스터는 깊은 인상을 남기기 충분하다.



그가 처음으로 촬영한 영화 포스터다. “주인공 영재(최우식)가 추락하거나 욕조에 몸을 담그는 모습이 영화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포스터 사진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고민 끝에 나온 이미지다. 영화 마케팅팀 그리고 디자인 회사 ‘빛나는’의 박시영 실장과 머리를 맞댄 결과다.” 배우 최우식이 하늘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듯한 이미지는 트램펄린 위에서 배우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포착해 사진을 뒤집은 것이다. 목정욱은 “최우식이 워낙 똘똘한 배우라 알아서 몸의 움직임을 잘 만들었다”고 귀띔했다. 본 포스터는 10월 중 공개된다.



거인’ 포스터 B컷.
한국영화, 그것도 저예산영화 티저 포스터가 흑백이라는 점, 극 중 장면이 아닌 상징적 이미지를 촬영했다는 점은 파격에 가까운 시도다. 목정욱은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영화와 포스터가 완전히 따로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예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아역 배우를 섭외해 이미지 촬영을 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가 ‘너무 멀리 간다’는 말도 들었다(웃음). 이 정도 시도가 받아들여진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거인’의 티저 포스터를 보면 즉각적으로 ‘스타일리시하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목정욱은 이를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난 모든 것이 스타일리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촌스러운 걸 싫어한다. 겉멋으로만 보이면 문제겠지만, 메시지도 전하면서 눈에 보기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본다. ‘사진이 스타일리시하다’는 표현도 좋다.”



잡지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목정욱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요즘 아무 패션 잡지나 펼쳤다 하면 그의 이름이 보일 정도다. 오래전부터 활동을 시작해 숱한 경력을 쌓은 덕분일까? 뜻밖에도 목정욱은 상업 사진가로 활약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뉴페이스’다. 그는 스스로를 “뻔하고 재미없는 사연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부모님의 바람 대로 인문계 대학에 진학했다. 당연히 전혀 흥미가 없었다. 2002년에 사진학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수업 분위기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결국 중퇴하고 런던으로 유학을 갔다. 그 전에 김현성·김태은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게 경력의 전부였다. 한국에 돌아왔을 땐 서른한 살이었다.”



남성복 브랜드 ‘준지(Junn.J)’ 팝업스토어 광고 사진.
목정욱이 제일 처음 찍은 상업 사진은 2012년 발매된 가수 김C의 앨범 보도 자료 사진이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패션 잡지 화보를 찍게 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게 목정욱의 설명이다. 그는 ‘우연’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게 다 실력이었음은 당연하다. 목정욱은 “기회만 된다면 영화 포스터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 고심해서 사진을 골라도, 월간지 화보는 어쩔 수 없이 생명력이 한 달인 것 같다. 영화 포스터는 그에 비해 생명력도 길고, 모델과는 또 다른 배우의 움직임과 표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이은선 기자



목정욱이 꼽은

최고의 영화 포스터 ‘마더’




“영화 포스터 고작 한 편 찍고 이런 얘기 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마더’(2009, 봉준호 감독) 포스터는 정말 최고다.” 그도 그럴 것이, ‘마더’의 포스터는 현장에서 홍경표 촬영감독이 찍은 배우 김혜자의 사진을 사용한 것이다. 후에 원빈을 따로 촬영해 합성한 것이 지금의 포스터다. “엄

청난 힘이 느껴지는 사진이다.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상황에 온전히 빠져 있는데 그걸 지켜보던 작가가 찍은 사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렇다면 영화 촬영장에서 스틸 작가로 일해달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 최고의 제안이지 않을까. “이번에 ‘거인’ 포스터 작업을 해보고 나니 정말 그렇게 일해보고 싶어졌다. 3개월 정도를 한 영화에 집중해야 한다면 포기해야 할 많은 기회비용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언젠가 그런 기회가 한 번쯤 찾아왔으면 한다.”





② 이승희 ‘일상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담아’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2012, 지민 감독)을 시작으로 극영화 ‘노브레싱’(2013, 조용선 감독) ‘내 연애의 기억’(8월 20일 개봉, 이권 감독) ‘우리는 형제입니다’(10월 23일 개봉, 장진 감독) 등 모두 여섯 편의 영화 포스터 사진을 찍었다. ‘마녀의 연애’(2014, tvN) ‘조선총잡이’(2014, KBS2) 등TV 드라마 포스터 사진도 찍고 있다. 시나리오 속 상황과 캐릭터를 사진 한 장에 뽑아내는 데 능하다. 1982년생.



‘두 개의 선’ 포스터의 B컷. 다큐 주인공인 이철과 지민 커플이다.


두 남녀가 침대에 엎드려 있다. 남자는 임신 테스트기를 손에 든 채, 여자는 손으로 턱을 괸 채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본다. 이제 막 임신 사실을 확인한 듯한데 결코 기쁘거나 환호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와 달리 침실 안팎에는 햇볕이 환하다. 이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선’의 포스터이자, 이승희가 처음 찍은 영화 포스터 사진이다. 갑작스레 아이를 갖게 된 비혼주의자 커플이 결혼을 고민하는 다큐의 내용을 생활 공간 안에 담았다. 이승희는 당시 자신이 살던 집에서 이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 속 남녀는 다큐의 주인공이자 연출자인 지민 감독과 그 남자친구 이철이다. “늘 디자이너가 원하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구현하는게 목표였는데, 찍다 보니 마치 나를 닮은 듯한 사진이 나왔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때 그가 말하는 ‘나’란 “일상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을 가리킨다.





올해 초 개봉한 다큐멘터리 ‘마이 플레이스’(박문칠 감독)의 포스터는 이런 정서를 인물 없이 사물만으로 표현했다. 건조대에 널린 빨래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누군가 벗어 놓은 신발 등이 가족의 의미를 묻는 다큐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 포스터 사진 역시 실제 집에서 찍었다. ‘마이 플레이스’의 배급사인 KT&G 상상마당 관계자의 집이다. “오래됐지만 운치가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주는 따뜻함을 살리기 위해 빛을 부드럽게 번지게 하는 프로미스트 필터를 사용했다. 일부러 햇살이 가장 많이 드는 시간과 장소를 골라 촬영했다. 아무래도 햇빛에 대한 페티시가 있나 보다(웃음).”



TV 드라마 ‘마녀의 연애’ 포스터.
이승희는 대학 시절, 전공과 무관하게 사진 관련 수업을 들으며 처음 사진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생 웹진에서 인물 인터뷰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일도 있구나”라고 느꼈다. 졸업 후 광고 회사 기획 파트에서 1년 반쯤 일하다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나섰다. 영화 포스터 사진에 앞서 ‘야차’(2010~2011, OCN)를 시작으로 TV 드라마의 포스터를 여럿 찍었다. TV 드라마와는 또 다른 영화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영화계에서 일하는 남편의 도움이 컸다. 남편 강국현은 ‘무뢰한’(하반기 개봉 예정, 오승욱 감독)의 촬영감독이다. 배우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던 그에게 남편은 ‘배우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도움말을 줬다. “배우들은 참 신기한 생명체다. 그들이 내 카메라 안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 무척 가슴이 뛴다.



이창동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배우에게는 정확한 지시를 주는 게 오히려 실례라는 말도 있더라.” TV 드라마에서 독립영화와 상업영화까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진을 찍고 있는 이승희지만 역시나 그의 장기와 열정을 자극하는 키워드는 ‘일상’과 ‘따뜻함’이다. “힘을 빼고 사람 이야기를 하는 따뜻한 영화의 포스터를 찍고 싶다. 보고 있으면 뭉클 해지는 포인트가 있는 그런 사진으로.”



고석희 기자 mulderfox@joongang.co.kr



이승희가 꼽은

최고의 영화 포스터 ‘파주’




이승희에게 포스터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감정이 꿈틀대는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다. 인터뷰나 화보 사진과는 달리 배우의 실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장 좋아하는 포스터로는 ‘파주’(2009, 박찬옥)를 꼽는다. 죽은 언니의 남편 중식(이선균)을 사랑하게 된 은모(서우)의 갈등을 그린 이 영화의 포스터는 오형근 작가가 촬영했다. “모호해서 오히려 더 강렬한 작품”이라는 게 이승희의 말이다. “두 배우 모두 분명히 연기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연기하는 것 같지가 않다. 눈은 힘을 빼면서 손에는 힘을 주고 있다. 마치 두 배우가 사진 속에서 꿈틀대는 것 같은 느낌이다.”





③ 표기식 ‘필름 사진 느낌 그대로’







‘셔틀콕’(4월 24일 개봉, 이유빈 감독) ‘족구왕’(8월 21일 개봉, 우문기 감독) 두 편의 영화 포스터를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뮤직비디오·패션 필름 연출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나무와 꽃 그리고 빛의 움직임을 담아낸 필름 사진부터 아이돌 앨범 재킷과 패션 화보 사진 촬영까지 두루 섭렵해왔다. 1980년생.



배우 공예지는 이 사진 덕분에 여러 소속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앙상한 나무와 흔들리는 억새. 그 앞에 세 명의 주인공이 멀뚱히 서 있는 ‘셔틀콕’의 포스터는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힘을 지녔다. 흔치 않은 색감 때문에 한 번, 아련한 분위기 때문에 또 한 번. 이는 표기식이 처음으로 찍은 영화 포스터 사진이다. 그는 ‘셔틀콕’을 “묘한 영화”로 기억한다. “다양한 감정이 혼재된 데다 언뜻언뜻 굉장히 차가운 장면들이 튀어나왔다. 느낌을 하나로 압축해 표현하긴 어려웠다. 극 중 벚꽃이 날리는 장면은 짧지만 중요하게 등장하니 이를 모티브로 활용하고, 봄에 개봉하는 영화인 만큼 따뜻하고 예쁘게 찍자고 생각했다.”



이 포스터를 본 사람들은 종종 표기식에게 촬영 장소를 묻곤 한다. 정답은 한강 둔치다. 그중에도 표기식이 개인 작업을 위해 한동안 즐겨 찾았다는 난지지구 어디쯤이다. “누가 봐도 알 것 같은 동시에 정확히 어딘지 모를 장소가 좋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표기식은 필름 카메라로, 그것도 일반 필름이 아닌 영화 필름을 써서 ‘셔틀콕’의 주인공들을 촬영했다. 영화 분위기가 디지털 카메라 특유의 쨍하고 선명한 느낌과는 잘 맞지 않는 데다가, 원하는 색감을 내기에는 필름 사진이 어울리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디지털 사진은 배우의 피부 톤과 색감 등 다양한 보정 작업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표기식이 찍은 ‘셔틀콕’ 포스터 사진은 보정을 거의 하지 않은 그대로의 컷을 썼다.



‘족구왕’ 창호(강봉성) 순간 포착.
표기식이 상업 사진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 역시 필름 사진이다. 한 패션 잡지에서 여러 사람의 여행 기록을 모은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에 그가 서울에서 제주까지 자전거로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이 소개됐다. 그 인연으로 이 잡지의 패션 화보를 진행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다. “그때도 필름 카메라로 작업했다. 보통 디지털로 찍어 현장에서 바로 확인하고 수정하는데, 그렇게 못 하니 현장에 있는 모두가 속이 타들어 가는 얼굴이었다(웃음).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드림 걸’ 앨범 재킷 사진도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그런가 하면 ‘족구왕’ 포스터는 ‘셔틀콕’ 포스터와는 딴판이다. 배우의 표정과 동작에 집중한, 그야말로 인물 중심 사진이다. 표기식이 지난 6월 서울 한남동에 연 개인 스튜디오 ‘표기식x우상희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첫 사진이기도 하다. 두 영화의 배급사인 KT&G 상상마당이 ‘셔틀콕’에 이어 또 한 번 촬영을 제안하면서 이 코믹한 포스터가 탄생했다. 표기식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주인공 중 한 명인 창호를 연기한 배우 강봉성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매만지 는 컷이다. 이는 상상마당 공식 트위터를 통해 촬영 B컷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우연히 일어난 상황을 포착하는 게 재미 있다. 창호와 미래(황미영)의 커플 컷을 찍을 때 정전기가 발생해서 배우의 머리카락이 위로 붕 뜬 사진도 좋아한다.”



샤이니 3집 앨범 재킷 사진 중 태민 단독컷.
표기식에게 지금은 “상업 사진 안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려고 하는 시기”다. 영화 포스터는 이런 그의 상태와 잘 맞아 떨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디자인과 영상 그리고 사진까지 전부 할 줄 아는 게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들은 내가 이렇게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르더라.” 그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하지만, 그의 다재다능함을 진작 알아본 이들도 많다. 얼마 전 한 패션 잡지에는 그가 사진을 찍고 아트워크와 GIF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도맡은 화보가 실리기도 했다. 영화 포스터에도 적용해볼 수 있는 작업은 아닐까.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100% 그래픽으로만 포스터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이은선 기자



표기식의 나무

‘셔틀콕’ 포스터를 촬영한 장소




부근에 이 나무가 있다. 한강 벤치에 앉아 있던 표기식의 눈에 우연히 띈 나무다. 그는 2013년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간 필름 카메라로 나무의 변화를 촬영했다. 이는 상업 사진 작업이 한창 몰릴 때 시간도, 여력도 없어 넋 놓고 있던 표기식이 다시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보니 이 한 그루만 눈에 딱 들어왔다. 처음 3개월은 변화가 거의 없어서 괜히 찍기 시작했다고 후회했는데, 가을이 돼서 주변에 억새가 자라나면서 극적인 변화들이 생겼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에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달려가 미친 듯이 찍었던 기억도 있다. 누군가는 본체만체 했을 이 나무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표기식은 나무 사진을 모아 10월에 전시를 열 예정이다. 전시 제목은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로 정했다. 제목을 고민하던 중 표기식의 친구가 기형도 시인의 글에서 발췌해서 제안한 것이다.





④ 황인철 ‘그 공간만의 정서를 살려서’



황인철은 ‘두 개의 문’을 자신이 찍은 영화 포스터 사진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업으로 꼽는다.




2012년 ‘달팽이의 별’(이승준 감독)을 시작으로 ‘백야’(2012, 이송희일 감독) ‘두 개의 문’(2012, 김일란·홍지유 감독) ‘러시안 소설’(2013, 신연식 감독) ‘노라노’(2013, 김성희 감독) 등 열두 편의 영화 포스터 사진을 찍었다. 스무 살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해 잡지 화보 및 인터뷰, 가수 화보집 촬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2010년 스퀘어 스튜디오 설립. 1980년생.



‘두 개의 문’ 포스터 B컷. 배경인 폐공장의 분위기가 드러난다.
2012년 큰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은 영화 못지 않게 포스터도 이목을 끌었다. 안전모를 쓰고 방패를 든 경찰 특공대원의 모습을 전면에 배치해 생경한 느낌을 자아냈다. 포스터 속의 특공대원은 ‘습지생태보고서’ 등을 그린만화가 최규석이다. 영화의 취지에 공감해 재능기부 형식으로 포스터 모델에 나섰다. 거친 질감이 돋보이는 이 포스터는 용산 참사 현장을 다룬 다큐의 전체적 분위기뿐 아니라 주제까지 정확히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황인철은 이 포스터를 찍기 위해 서울 가양동의 한 폐공장을 찾았다. ‘두 개의 문’의 배경이 된 남일당 건물의 어둡고 부서진 느낌을 내기에 적합한 곳이란 생각에서였다. 이미 다른 촬영을 몇 번 해봤던 곳이지만 이날은 쉽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공장 입구를 막아놨더라. 급한 마음에 문을 살짝 뜯고 들어갔다. 한창 촬영하는데 철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몰래 들어온 게 들킬까 숨죽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관리실 아저씨가 밖에서 철끈으로 문을 다시 막은 거였다. 한참 갇혀 있다가 철끈을 끊고 도망쳐 나왔다.” 가슴 철렁하는 순간을 겪으며 촬영한 덕분인지 포스터에는 이 다큐와도 맞아 떨어지는 긴박한 느낌이 잘 드러났다.



황인철의 개인 사진 작품. 개인 작업을 할 때는 강렬한 톤을 선호한다.
포스터 사진을 찍으며 그가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배경 공간이다. “영화 포스터는 한 장의 사진에 영화의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매끈하고 정갈하게 찍는 잡지 화보 사진과 다르다. 사진에 복합적 정서를 녹여내려면 공간이 중요하다. 그래서 스튜디오보다는 특정 공간을 찾아내 그곳의 느낌을 최대한 활용해 찍으려 한다.” 디자인 회사 프로파간다의 제안을 받아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로 처음 포스터를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이 참 밝고 따뜻했다. 주인공인 시청각 장애인 부부가 정말 재미있게 살고 있더라. 두 사람의 정서를 나타낼 배경으로 창경궁 대온실이 적격이다 싶었다. 서울에서 그만큼 따뜻하고 포근한 곳이 없다.”



결과적으로 두 부부가 맞잡은 손만으로도 동화의 한 장면 같은 포스터가 탄생했다. 소설가의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 ‘러시안 소설’의 포스터 촬영 때는 오래된 서재의 느낌을 찾아 연세대 언더우드관으로 향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2012, 정대건 감독)는 “오랫동안 힙합의 꿈을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 착안해 서울 천연동의 낡은 아파트에서 촬영했다. 이쯤 되면 영화의 정서에 걸맞은 공간을 찾아내는 데 귀재라 할 만하다.





“바이크를 타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공간을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시안을 보면 대번에 구체적 공간이 떠오른다.” 그는 “다른 작가들처럼 내세울 만한 예술관이 없어 걱정”이라지만 그가 찍은 포스터들에는 그만의 유연함이 엿보인다. “수익성을 떠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작업이다. 제작사, 디자이너와 함께 시안을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도 정말 재미있다. 기회만 된다면 계속 다양한 영화 포스터를 찍고 싶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황인철이 꼽은

최고의 영화 포스터 ‘피에타’




황인철은 장원석 작가가 찍은 ‘피에타’(2012, 김기덕 감독) 포스터를 “영화의 전반적 느낌을 잘 살린 좋은 포스터”라고 꼽는다. 특히 피에타라는 말의 의미와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동명 조각상을 연결시켜 연극적으로 표현한 점을 높게 샀다. “이 포스터처럼 음울하고 거칠면서도 연극적 느낌이 묻어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사실 나도 이와 비슷하게 찍는 편이다.” 제목 활자와도 잘 어우러져, 조금 샘이 나기도 했다고 돌이킨다. 하지만 그 서운함은 금세 해소됐다. 김기덕 감독의 다음 작품 ‘뫼비우스’(2013)의 포스터를 그가 찍게 된 것이다. “열의에 가득 차 나와 디자이너, 다른 촬영 스태프까지 남자 셋이 직접 몸을 맞대고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함께 엉켜 있는 포즈를 연구하기도 했다.”





이은선·고석희·김나현 기자 haroo@joongang.co.kr ※작가 이름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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