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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일본 휩쓴 우칭위안 기억" 대륙바둑 자존심 회복 노려

1940년대의 우칭위안
‘이세돌·구리 10번기(番棋)’가 만들어진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중국바둑협회 왕루난(王汝南·68) 주석은 “일본을 휩쓸었던 우칭위안(吳淸源·100)을 기억하려는 기획”이라고 했다. 10번기 이면엔 지난 100년간 일본과 한국에 밀렸던 중국 바둑계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욕구가 있었다.

 ‘10번기’는 1956년을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우칭위안 10번기’를 일컫는다. 현대 바둑의 패러다임을 창안한 중국인 우칭위안이 1940~50년대 일본 바둑계를 평정한 무대였다. 우 선생은 당대 최고의 기사 7명과 18년에 걸쳐서 10번 싸워 모두 이겼다. 상대의 치수를 강등시켰다.

 10번기의 역사는 훨씬 오래다. 승부 바둑의 대명사로 중국과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쓰였다. 중국에서는 청나라의 국수 황룡사(黃龍士)와 서성우(徐星友) 간의 ‘혈루편(血淚篇) 10국’이 유명했다.

 피눈물 흘린 10국이라니 1835년 일본의 토혈지국(吐血之局)을 연상시킨다. 토혈지국은 명인 조와(丈和·1787~1847)와 아카보시 인테쓰(赤星因徹·1810~35)의 쟁기(爭碁·결투)를 일컫는다. 패배한 아카보시는 대국 후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일본 400년 바둑 역사에서 10번기는 ‘번기’의 하나였다. 30번기도 있었고, 20번기도 있었다. 한 판으로는 승부가 운에 의해 결정될 수 있기에 열 판, 스무 판 두어 대국자의 실력 차이를 가렸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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