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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근의 시시각각] 교육감님, 교육유민을 아시나요?

정철근
논설위원
서울 동작구의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았던 한 선배는 아이가 중학교 1학년때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다. 5년 된 아파트를 팔고 낡은 아파트 전세로 갔는데 전세금을 주고 나니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이른바 ‘교육유민(流民)’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교육유민의 설움은 심했다. 겨울철에 아파트의 배관이 터져 때아닌 수재(水災)를 입기도 했고 동작구에선 잘하던 아들이 강남 아이들에 치여 힘들어 할 때마다 후회를 했다. 다행히 아이는 지난해 대치동의 한 자율형사립고에 입학해 잘 다니고 있다. 그는 최근 자사고 폐지 논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자사고를 없애면 비강남권 학생들에겐 그나마 괜찮은 기회마저 사라지는 거 아냐. 일찍 대치동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해.”

 동작구 상도·사당동은 초·중학교 때 많은 아이가 강남으로 뿔뿔이 전학을 간다. 특목고는커녕 인문계 고등학교가 2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교선택제로 강남권 고교를 지원할 수는 있지만 배정될 확률이 강남 학생들에 비해 훨씬 낮다. 자사고는 특목고보다 들어가기가 훨씬 쉽다. 주변에 좋은 일반고가 없는 비강남권 학부모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이번에 폐지 대상에 오른 서울시 자사고는 대부분 비강남권 학교들이다. 이 학교들이 일반고로 바뀌면 그 지역 학부모 중 상당수는 강남·목동 등으로 이사 갈 가능성이 높다. 전용면적 84㎡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셋값이 5억원에 육박한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 격차가 자식의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의 악순환만 심화될 것이다.

 “제 아들도 재수해 외고를 가 좋은 대학에 갔다. 학부모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공약이라 힘들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9일 자사고 학부모들과 면담 자리에서 자사고 폐지 방침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는 자사고 폐지에 대한 반발이 거세자 서울시내 일반고 교장들을 만나 “일반고 전성시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사고를 없앤다고 해서 일반고가 살아날까. 경기도는 김상곤 전 교육감부터 진보성향 교육감이 교육정책을 이끌어왔다. 서울은 자사고가 25곳인데 비해 경기도는 2곳에 불과하다. 진보 교육감이 3대째 당선돼 일반고 살리기에 집중했던 경기도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교육부의 지난해 중·고교생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전국 최하위권이다.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 자사고 폐지를 추진하는 교육감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사고가 거의 없는 경기도는 하위권 학생들의 학력이 나아졌어야 맞다.

 경기도는 자사고 대신 혁신학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지난 경기도교육감 선거 때 보수성향 후보들은 혁신학교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자사고 학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경기도 혁신학교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혁신학교든 자사고든 최소 10년은 지켜봐야 한다. 교육감에 따라 정책이 바뀐다면 그 혼란으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위기를 맞은 게 아니다. 강남 등 일부를 제외한 지역의 일반고는 이미 황폐해져 지역 격차가 심각한 상태다.

 일반고 전성시대는 자사고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어야 열 수 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자사고인 안산동산고를 폐지하려다 철회했다. 이 학교는 교육여건이 척박한 안산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지역 명문고다. 안산동산고의 한 교사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동산고가 개교했을 때부터 명문이었나? 1회는 절반 이상이 안산에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이었다. 전 교사가 밤 12시까지 자발적으로 남아 헌신해서 변화시킨 것이 명문의 시작이었다. 자기들의 정치적 믿음이 교육자의 헌신 위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 무섭다.”

정철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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