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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 한글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1일 오전 8시, 빅토리아만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홍콩 정부 청사 앞의 진쯔징(金紫荊) 광장. 군악대 연주와 인민해방군 의장대의 절도 있는 동작에 맞춰 오성홍기가 홍콩 하늘 높이 올라갔다. 량전잉(梁振英) 행정장관을 비롯한 홍콩 지도층 인사들과 친중(親中)성향의 시민 수백명은 오성홍기를 바라보며 중국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따라 불렀다. 1949년에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5주년을 기념하는 의식이 홍콩에서도 펼쳐진 것이다.



같은 시각, 바로 인근의 행정타운인 애드미럴티와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등 곳곳에선 시민ㆍ학생들의 간선도로 점거 시위가 나흘째 이어졌다. 시위 군중은 낮엔 다소 줄었다가 밤이 되면 크게 늘어나는 양상이 며칠째 반복되고 있다. 낮에 귀가해 휴식을 취한 뒤 밤에 거리에 나가 밤을 새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밤 시위대는 10만명을 넘어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이틀간의 연휴 첫날인 1일밤에도 그에 못지 않은 숫자가 운집할 것이라고 홍콩 당국은 예상했다. 시위대가 점거한 장소는 지난달 28일 이후 계속 늘어나 바다 건너 카오륭 반도의 몽콕까지 확대됐다. 친중과 반중으로 확연히 쪼개진 홍콩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 국경절의 풍경이었다.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경절의 대표적 볼거리인 불꽃놀이 행사도 올해는 취소됐다. 시위 현장에는 “불꽃놀이를 해도 절대 가지 말고 TV로도 보지 말자, 그 시간에 집집마다 전등을 다 끄자”는 제안이 담긴 벽보가 붙기도 했다. 홍콩섬 중앙의 빅토리아 공원에서 진행된 문화행사와 축제도, 관람객보다 출연자나 주최측 인원이 더 많아 보였다. 이래저래 빛이 바랜 국경절이 되고 말았다.



시위는 평온한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홍콩 경찰은 강제 해산에 나서지 못하고 불상사를 방지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점거 시위 첫날인 28일과 이튿날 최루탄으로 강제 진압을 시도한 게 오히려 홍콩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시위 참여 숫자가 크게 불어난 게 원인이다. 애드미럴티 역앞 광장에서 만난 대학 1년생 쉬바이시(徐柏希)는 “경찰의 진압에 화가 나 이튿날부터 시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쏜 최루탄 숫자는 87발.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임에도 홍콩 시민들은 격앙했다. 홍콩에서 최루탄은 9년전에도 등장했었지만, 이는 국제행사에 맞춰 해외에서 모여든 반세계화 원정 시위대를 향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최루탄은 ‘긁어 부스럼‘이 되고 말았다.



불상사를 우려해 강경 진압에 나서지 못하는 건 베이징의 중국 중앙 정부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11월 APEC이 베이징에서 열리기로 돼있다. 25년전 천안문 사태의 비극적 결말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난 상태도 아니다. 더구나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은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분야에서의 자치권을 보장받은 곳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행정장관 입후보자를 친중인사로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철회하고 완전한 보통선거를 보장하라는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줄 리는 만무하다. “서방식 자유선거만은 안 된다”는 게 중국의 마지노선이다. 이를 허용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여파가 일어나게 된다. 중국 내부의 정치개혁 요구는 물론, 홍콩에 이은 또 다른 ‘일국양제‘의 대상지역으로 삼고 있는 대만, 그리고 소수민족 자치주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된다.



시위대 역시 여기서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휴일을 맞은 1일에는 대학생이 절대 다수이던 시위 군중 속에 직장인과 중노년의 일반 시민까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홍콩 태생이라고 밝힌 60대 후반의 잭키리는 “후진타오 집권기까지는 1997년 회귀(주권반환을 뜻하는 말) 이전 상황과 큰 차이를 못 느꼈는데, 갈수록 중국화되고 우리의 자치권은 위축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제 행정장관은 물론 입법의원까지 중국 입맛에 맞는 사람만 뽑도록 제도화되면 우리의 자유는 어디로 가나“고 반문했다. 코즈웨이베이에 서 밤을 새러 나온 20대 직장인 여성은 “마음은 있어도 회사 업무 때문에 동참하지 못했는데 연휴엔 출근 걱정이 없어 처음 나왔다”고 말했다.



시민ㆍ학생들은 국제 사회의 관심에도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한국 기자라고 밝히자 그들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꼭 해외에 전해달라”고 말했다. 코즈베이웨이 광장에는 시위대를 격려하는 각종 구호와 격문이 붙어 있는데 그 중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YOU ARE NOT ALONE”이라고 누군가 한글과 영어로 쓴 것도 눈에 띄었다.



이틀 동안 시위현장에서 시민ㆍ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홍콩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왜 중국식 방식을 강요하느냐”는 불만이 많았다. 고교 1년이라 밝힌 한 학생은 “50년간 홍콩은 자치를 누리기로 돼 있는데 왜 이번에 약속을 깨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아버지와 함께 나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쉬바이시는 “우리 손으로 지도자를 뽑지 못하면 홍콩인에게 무슨 장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홍콩도 중국의 일부”라며 고삐를 죄는 베이징 당국과 “홍콩은 어디까지나 홍콩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주민들 사이엔 좀처럼 좁혀지기 힘든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다.

홍콩=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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